2018/12/31 22:21

2018 영화 결산 줄세우기

2018년에 한국에서 공개 되었던 영화들 중 나의 개인적 TOP 10과 WORST 5. 
극장 개봉작 뿐만 아니라 제작과 공개 시점이 2018년인 넷플릭스 공개작들도 포함한다. 세어보니 올해 공개작 중 관람한 영화가 딱 110편.

일단 TOP 10 부터.



10. <더 포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더 포스트>는 훌륭한 직업 영화인 동시에 전기 영화고, 또 여성 영화다. 그리고 '희망'과 '희망의 전파'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만 같았던 결말부 윤전기 장면은 실로 대단했다. 스필버그는 <레디 플레이어 원> 후반 작업 중에 본 영화의 각본을 받아 읽었는데, 정말 힘든 상황이었던지라 곧바로 다음 영화 제작에 들어갈 만한 여력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꼭 만들었어야 했다고 한다. 미친 것 같지만 또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어쩌면 그 말이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장인을 제대로 설명하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프레임의 밀도를 남성들로 채우며, 그 사이 한가운데에 놓인 주인공 캐서린 그레이엄을 보여줌으로써 그녀가 느끼는 압박감이나 초라함이 잘 느껴졌던 영화. 연출을 잘하면 평범하고 뻔한 이야기도 우아해질 수 있다는 진리를 한 번 더 깨우쳐 준 영화. 마지막 남은 고전주의 연출가로서 스티븐 스필버그를 다시금 존경하게 만드는 영화. <더 포스트>는 실로 연출의 교과서다.

좋았던 장면 : 전화 통화를 통해 중대한 결정을 내리던 캐서린 크레이엄의 클로즈업 쇼트. 멋지고 짧은 명령조의 대사가 아니라,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해보려던 그 말더듬이 좋았다.





이례적인 경우다. TV만 틀면 볼 수 있는 막장 드라마 식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보고 울다니.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장르적인 재미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오히려 전형적인 영화라는 그 낙인을 부인하지 않는 영화다. 보는내내 재밌었고, 진심으로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두 시간이었다.

후반부 마작 장면이 재미있는데, 주먹 한 번 오가지 않지만 그 자체로 대단한 액션 장면이었다. 서로의 의표를 찌르는 대사 한 방에 마작 한 차례. 가히 올해의 말싸움, 올해의 도박 장면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가장 좋았던 장면으로는, 결혼식 장면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배우의 표정을 존중하는 클로즈업은 실로 오랜만에 본 것 같았다. 결혼식 장면을 보며 생각했지, 아- 우리는 이런 장면을 보기 위해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것이었지. 장르 자체에 내린 큰 축복.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그 자체로 만족할만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아참, 양자경이 진짜 멋지게 나오는 영화이기도 하다.

좋았던 장면 : 결혼식 장면.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존재 이유가 되는 장면.



08. <독전> (이해영)


의외의 선택 같아 보이지만, 작년 TOP 10 중 하나로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 나쁜놈들의 세상>을 지목 했던 이유와 마찬가지의 이유에서다. <독전>은 촬영과 조명으로 만든 섹시함이 있다. 그리고 다소 뻔하고 작위적이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새로운 것을 고민해보자는 선언 같은 것도 느껴진다. 이해영 감독으로서는 장르 영화 첫 데뷔인 셈인데, 그 선전포고 같은 악전고투가 좋았다. 

정말이지 가끔은, 내용 전개나 캐릭터의 매력 다 떠나서 그야말로 멋진 이미지에 혹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적어도 <독전>은 내게 있어 그걸 잘 해낸 영화였다. 용산역에 마약 조직의 비밀 기지가 있는 게 말이 되냐 안 되냐를 떠나서 가끔은 정말, 그냥 멋있으면 장땡인 것이다.

좋았던 장면 : 오프닝 노르웨이 장면. 과시적이긴 해도 첫 시작부터 영화가 스타일에 몰빵이더라.



07.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길예르모 델 토로)


합리적인 미장센과 낭만성을 지닌 델 토로의 걸작. 영화적으로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보다 더 낫다곤 못한다. 하지만 장르적으로 좀 더 내 취향에 부합했던 영화. 그리고 감독의 취향이 영화를 어떻게 결정짓는지 제대로 보여주었던 영화. 괴물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결국 괴물과 섹스하는 여자 이야기까지 만들었겠나 싶기도 하고.

이 영화 속 악당은 '미래'에 어울리는 자동차를 타고 달린다. 그 초록색 차가 너무 멋지다는 부하 직원의 말에 그는 초록색이 아니라 청록색이라고 답한다. 초록색과 청록색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색이지만 그에게는 그 사소한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그는 인종차별주의자고 성차별주의자며, 종차별주의자다. 그에 맞서는 주인공의 연대는 각각 농아, 게이, 흑인 여성, 외국인 그리고 아예 다른 종()이며, 그들은 달력 뒷면의 '과거'를 상징한다. 맞다. 서로 다른 것들은 불균질해보일지는 몰라도 손을 잡고 연대하는 순간 향수 어린 치유의 힘을 갖는다. 최근 <블랙 팬서>와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에게 직언을 하는 그런 영화. 하지만 다 떠나서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엔딩 씬을 갖고 있던 영화. 델 토로 감독이 현장에서 얼마나 신이 났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델 토로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감독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잘 붙여놓는 사람"이라고. 이 영화는 그 말에 대한 증거다.

좋았던 장면 :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그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웠던 엔딩 씬.



06.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


사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좋은 영화이긴 했지만 뭔가 불균질한 것처럼 느껴졌거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불균질함이 첫사랑 때의 감정과 비슷하기도 하고. 원래 우리의 첫사랑이란 게 불순물 투성이 아닌가.

담백하고 예쁜 촬영에서 풍기는 여름 내음이 좋고,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이 대단하다. 아미 해머는 뭔가 재수없는 백인 이미지로만 많이 소비 되었던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이 또 있을 줄이야. 하지만 아미 해머 이야기 백 번 해봐야,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발견한 티모시 샬라메의 그것에 비하면 한참 모자른 것이 사실. 

엔딩 장면을 보면서는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굳이 나의 추억까지 들추며 체화하지 않아도, 그저 엘리오의 슬픈 표정을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시간들이었다. 

좋았던 장면 : 'Visions of Gideon'이 흐르던 엔딩 장면. 극장 불이 켜지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보통 '귀엽고 착해서 좋아-' 정도로만 설명 되는 영화인데,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연출이며 각본이며 조목조목 따져보았을 때 그 자체로 대단한 영화거든.

팝업북을 그대로 재현한 장면의 시각적 아이디어가 황홀하고, 패딩턴이 청소 아르바이트를 뛰는 몽타주 시퀀스의 리듬은 쾌활하다. 하지만 가장 좋은 부분은, 이 영화의 유머 감각. 가끔 미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웃긴 장면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게 후반부 기차 추격 시퀀스에서 돌출되는 요가 개그. 가볍게 솔솔 뿌려놓은 떡밥을 회수 하는 실력은 가히 최고라 할 만하다.

근래 본 영화들 중 보는내내 이렇게 행복하기만 했던 영화가 또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기뻤던 영화. 진짜 이 영화에겐 애정 뿐이다.

좋았던 장면 : 패딩턴이 죄수복 다 물들여 버리는 장면. 아, 이런 따뜻한 타이밍 너무 좋다.



04. <빅 식> (마이클 쇼월터)


생각보다 국내 흥행이 안 되어 너무 안타까운 영화. 이 영화 진짜 좋고 재밌는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몰라줄까 아쉬운 영화.

코미디 장르로써 이 영화가 갖는 무덤덤함이 재밌었다. 주인공 캐릭터도 매력 있고, 무엇보다 방금 헤어진 여자친구의 가족들과 엮이게 된다는 설정이 강력해 좋았음. 따지고 보면 산드라 블록이 주연 했던 <당신이 잠든 사이에>와 비슷한 이야기인 건데 그럼에도 아직까진 신선하게 느껴지더라.

근데 실화인 게 더 충공깽.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겠지만, 홀리 헌터의 경력 최고 연기가 여기 있다고 난 생각한다. 정말 짧게 지나가지만, 그게 너무 웃겨서 견딜 수가 없었다.

좋았던 장면 : 영화의 엔딩이 너무 착하고 예뻤다.



03. <서치> (아니쉬 차간티)


이 영화는 그 특이한 형식 때문에 많이 회자되는 영화인데, 사실 그것 외적으로도 충분히 뛰어난 영화라는 게 내 생각이다. 지나치게 화려한 포장지 때문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단순 스릴러 장르로만 보았을 때도 스릴이면 스릴, 떡밥회수면 떡밥회수. 뭐 하나 빠지지 않는 훌륭한 장르 영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특이한 형식을 아주 빼놓고 말할 수는 없겠지. 아주 잘 구현했고, 잘 연출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컨셉으로 비롯되는 유머나 공감 요소가 또 끝내줘서. 초반부 픽사의 <업>이 떠올랐던 그 오프닝 장면은 센스 넘치면서도 따뜻했다. 시간을 새길 수 있는 매체의 축복이란 이런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좋았던 장면 : 시간을 새긴 영화의 오프닝.



02.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 (밥 퍼시케티 & 피터 램지 & 로드니 로스맨)


아직까지도 내게 최고의 수퍼히어로 영화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2>지만, 그냥 영화로써는 몰라도 스파이더맨이란 캐릭터를 가장 잘 다룬 매체는 이번에 나온 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평행 우주 설정을 끌어와 이전에는 감시 항상도 할 수 없었던 광경들을 몽땅 목도하게 만들었던 영화. 세상에, 어떤 사람이 영화관에서 피터 파커의 죽음을 보게 될 거라 상상 했겠나. 근데 그 죽음이 썩 마음에 들었다. 죽기 직전까지도 타인을 생각하고 구하려 했던 그 모습. 과연 피터 파커구나 하는 생각이 앞서더라.

비주얼은 독보적이고, 그걸 뒷받침하는 연출은 깔끔하다 못해 우수하다. 후반부 마일즈 모랄레스의 믿음의 도약 장면은 그 시퀀스 하나로 비디오 아트였고, 영화의 유머로도 배가 불렀다. 이런 애니메이션을 계속해서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좋았던 장면 : 기념품 가게 점원 스탠리. 그냥 유머 장면으로 좋았던 것이 아니라,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 카메오 씬 이후 가장 기억과 마음에 남을 만한 대사를 남겨준 장면이었다.



01.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티븐 스필버그)


누가 뭐라 해도 난 스필버그 키드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그의 영화로 살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 시대 마지막 고전주의자로써의 연출적 면모를 뽐내는 그의 모습도 좋지만, 이 영화를 통해 '난 아직 젊다'라는 것을 다시금 보여주고 증명하는 것 같아 기뻤다. 

과거 내 삶의 일부였던 아이콘들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그 외적으로도 비주얼이 현란하되 중심을 잃지 않았다. 원작의 그 풍모를 그대로 벤치마킹해 오마쥬한 메카 고지라와 아이언 자이언트의 대결 장면에선 오줌을 지릴 뻔 했다.

그리고 그런 스펙터클 속에 함몰되지 않고 피어난 한 방울의 감동. 이 영화 속 제임스 할리데이의 모습은 마치, 스필버그가 나를 대하는 모습 같았다. "그동안 내 게임을 해주어 고맙구나"라는 말은 내게, "그동안 내 영화들을 봐주어 고맙구나"라는 말로 들렸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영화를 보고 만화를 읽고 게임을 하던 그 시간들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속삭여주는 것 같았다. 그에게 너무 감사했다. 그가 영생 하기를 빈다.

좋았던 장면 :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오마쥬는 누가 와도 이 이상 못할 것이다.



올해를 빛내준, 나의 감독들을 마지막으로 모시며-


올해는 정말 스필버그의 해였다.



최고가 있으면 최악도 있는 법. 뱀발로, 올해 최악의 BOTTOM 05.


05. <인랑> (김지운)


누구도 이 영화가 망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강동원과 한효주, 정우성 등을 위시한 호화 캐스팅에 대규모로 들어간 예산. 그리고 원작 일본 애니메이션의 유명세. 여기에 김지운이라는 견고한 브랜드 네임까지. 하지만 영화는 끝내 몰락하고야 말았다. 보는 내내 실소가 절로 나오던 영화. 김지운이 만든 200억짜리 동인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풀지 못한 미스테리. 도대체 왜, 초코라떼와 커피 직부감 단독 쇼트는 왜 넣은 것일까. 아직까지도 궁금하다.



04. <창궐> (김성훈)


<창궐>은 진짜 예의 없는 영화다. 애초 장르에 대한 별 애정도 관심도 없으면서 그딴 거 다 쌈싸먹고 그냥 만든 영화. 시발, 최소한 막판에 민본주의 설파할 셈이었다면 주인공을 원탑 액션 히어로로 만들지 말았어야지.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03. <게임 오버> (카일 뉴아첵)


대체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제정신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의문. 내용 자체는 <다이하드> 우라까이로 나름 괜찮게 뽑을 수 있던 영화인데, 그냥 못 만든 것도 아니고 이해 불가능한 전개로 자빠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태어나서 본 영화들 중 가장 많이, 가장 오랜 시간동안 남성기를 과시한 영화이기도......



02. <챔피언> (김용완)


<창궐>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장르에 대한 별 애정도 없으면서 만든 영화. 그냥 스포츠 장르란 그릇에 마동석이란 물 붓고 신파란 양념 풀어 끓인 영화더라. 여기에 조연배우 권율의 형편없는 연기는 덤. 보는내내 시간이 아까웠던 영화. 설명 더 길게 쓰면 그 시간도 아까울 것 같아 그만 줄인다.



01. <맘 & 대드> (브라이언 테일러)


이 영화 보며 유일하게 재밌었던 장면이 바로 저 장면이다. 그나마도 니콜라스 케이지의 저 병신같은 표정과 동작이 웃겨서. 나머지는 그냥 보면서 염병한단 생각만 들었음.




한 해가 갔으니 춤이나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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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8/12/30 22:32 # 답글

    오... 저랑 높은 퍼센티지로 호평하고 불호하는 부분이 비슷하군요. 하지만 미세하게 다르네요...
  • CINEKOON 2019/01/01 13:22 #

    이쯤되면 로그온티어님 리스트도 궁금해지는데요?
  • 로그온티어 2019/01/01 13:31 #

    리스트를 꼽은 지 오래됬네요... 그러고보니. 할까. 근데 베스트를 매겨버리면 오히려 영화 특성이 잘 안 살더라고요. 베스트라는 언어적 이미지에 영화가 마냥 훌륭하게만 보여버려서, 영화가 어떤 단점이 있는지, 혹은 어떤 구미에 맞는 지 잘 드러나지 않게 되는데, 제가 그런 베스트에 당해서(?) 제 성향에 맞는 영화는 무시하고, 제 성향에 맞지 않은 영화를 보고 실망하는 경험을 많이 했었기에, 그걸 되도록이면 안하려고는 하는데...

    근데 또 사람 마음이 또 베스트를 꼽고 그걸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지죠. 그게 심오헤서 그냥 장문 덧글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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