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4 12:44

언니 극장전 (신작)


2019년 새해를 맞아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이거라 심히 당황스럽기도 하고. 근데 어쨌거나 선택은 내가 했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옛말에 그런 말 있지 않나.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고, 덩달아 나도 이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게 만들었더라.


스포는 미세. 그냥 읽어도 무방.


이 영화의 오프닝부터 기가 빨리더라. 오프닝 시퀀스에도 입이 있다면 나에게 "난 존나 쎄!"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본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오프닝. 내용이나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 처절한 색감과 미친듯한 속도의 컷 편집 때문에. 현기증 날 뻔. 진짜 이건 본 사람들만 알 것 같다......

내용이 단순한 건 좋다. 아니, 오히려 이런 영화들은 이야기 구조가 단순해야 유리하다고 믿는 편이다. 때문에 별 내용 없다 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다만 이야기 구조나 내용은 그래도 되는데, 전개는 이러면 안 되지 않냐. 뭔 놈의 전개가 계속 반복이다. 제목 그대로 언니가 납치 비스무리한 걸 당한 동생 찾으러 다니는 내용인데 주된 전개가-, 한 놈을 찾아서 조진 뒤 동생 어디로 갔는지 묻고 -> 또 한 놈을 찾아서 조진 뒤 동생 어디로 갔는지 묻는 패턴. 그 사이사이에 관절기 베이스의 격투 장면과 촌스러운 과거 회상 플래시백 장면은 꼭 하나씩 넣어주고. 햐... 이거 대체 각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을 찾자면... 일단 영화의 돌파력 하나는 끝내준다. 중간마다 쓸데없이 긴 과거 회상으로 설명 한 다스씩을 때려넣긴 하지만 그럼에도 전개는 초월 전개. 심지어 중간엔 진심으로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지는 장면도 있었다. 나름의 미스테리랄까... 하여튼 늘어지는 것보다는 빠른 게 낫다.

더불어 액션 배우로서 이시영의 노력도 엿보인다. 애초 캐스팅의 조건이 '실질적인 액션 스턴트를 모두 배우 본인이 하고 싶다'였다는데 과연 그럴만 했다. 배우 본인도 신이 나서 여러가지 했을 게 눈에 선하더라. 비슷한 류의 <테이큰>이나 <아저씨> 같은 영화들에 비하면 액션이 아주 수준급이라 할 처지는 못 된다. 그렇지만 그나마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딱 그것이다. 이시영의 스턴트 없는 액션 그거 딱 하나.

근데 그러면 뭐해, 시바. 영화의 나머지 요소가 배우의 열연을 받쳐주질 못하는데. 촬영은 정신 사납고, 편집은 혼란스럽다. 영화 보면서 이런 걸 의식하는 것도 참 오랜만인데, 각 쇼트들의 평균 길이가 3초를 안 넘는 것 같더라. 특정 몇몇 장면들 제외하곤 화면이 3,4초마다 한 번씩 바뀐다. 급박한 전개를 의식해 이렇게 몰아가는 건 좋은데, 그럼에도 너무 정신 없지 않냐. 사실 이건 개인차가 있을 수 있는 사소한 불만 정도. 하지만 누가 봐도 이상한 지점은... 중후반부에 이시영이 자동차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있다. 분명히 이 때 사고를 낸 누군가가 와서 이시영의 머리채를 잡는 것으로 씬이 종료되는데, 다음 씬 보면 아무 설명 없이 이시영이 화장실에서 세안 중. ...... 이걸 그냥 이렇게 개봉 시켰다고? 사실 색보정이 더 충격적인 부분인데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난해하니 그냥 넘어가는 걸로.

여성 원톱 영화로써 자주적이고 거친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머지 캐릭터들은 모두 전형적인 이미지로 고착화 되어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남성 캐릭터들은 모두 폭력적인 동시에 비열한 인물들로 규정되어 있으며, 주인공을 제외한 여성 캐릭터들은 죄다 수동적인 상태로 유린 당한다. 아니면 싸가지가 없거나. 그리고 너무 성적인 묘사가 적나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영화의 주제나 내용에 부합하거나 꼭 필요하다면 넣어야 한다는 주의이긴 한데, 그 기준에서 봐도 꼭 있어야만 하는 묘사들이었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아리송.

이 영화를 궁금해한 내가 싫다. 근데 극장에서 안 봤으면 영원히 안 봤을 것 같아서 지금 본 게 차라리 다행인가 싶기도. 이건 또 웬 합리적인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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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achito volando 2019/01/04 15:13 # 답글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호기심...
  • CINEKOON 2019/01/09 13:48 #

    근데, 말은 저렇게 해놓았지만. 있어 보이는 체 듬뿍 하다가 결국 이도저도 아니었던 영화들에 비하면야 대놓고 쌈마이를 지향하는 이 영화가 나을지도요.
  • 냐호 2019/01/04 21:46 # 삭제 답글

    지난해부터 여성주연 영화 없다고 징징대는 기사가 범람한후 나오는 여성원탑 영화들은 영 시원치가 않네요
  • CINEKOON 2019/01/09 13:48 #

    <미옥>도 그랬고 이번 <언니>도 그렇고...
  • sid 2019/01/04 22:58 # 답글

    정말 영화를 좋아하시는가봐요 .. ㅎㅎ
    전 버스에 붙은 포스터만 보고 이시영 대신 권민중이나 하지원 나왔음 어땠을까 상상했었는데,
    그림이 영 아닐까요?
  • CINEKOON 2019/01/09 13:48 #

    하지원이면 어울리기야 했겠지만 기시감이 더 심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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