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5 18:01

블랙 호크 다운, 2002 대여점 (구작)


다른 장르들 못지 않게, 전쟁 영화도 꽤 많은 걸작들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현대전 + 시가전 조합으로는 매번 언급되는 리들리 스콧의 바로 그 영화. 사실 개인적으로 전쟁 영화 좋아하는 편인데, 의외로 이 영화에 대해서만은 별 감정이 크지 않았다.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도 감흥이 그리 크지 않았고. 다만 그런 생각은 들더라. 리들리 스콧은 장르 영화가 내린 축복이구나. 이만큼의 디테일과 이 정도의 자신감. 코즈믹 호러의 창세기로써 거의 장르를 새롭게 개국한 것이나 다름 없었던 <에이리언>과, SF의 전설이 된 <블레이드 러너>. 그리고 이후 냉병기 전투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글래디에이터>와 <킹덤 오브 헤븐>까지. 하여간 이 영감탱이는 지칠 줄도 모르고, 새롭게 도전하는 장르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보인다.


스포는 조금.


소말리아 민병대의 핵심 인사로서 대사로만 소개되는 아이디드 장군이 영화 초반부터 언급되지만, 까놓고 말해 영화는 그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애초 공작원들의 첩보 활동에 방점이 찍힌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말쑥한 끝판왕으로서 설정되는 것뿐. 영화는 이후 계속해 전투 전투 전투다.

거의 현대 시가전을 다룬 영화들의 레퍼런스가 된 영화인데, 그에 걸맞게 현장감이 대단함. 핸드 헬드 촬영을 통해 극에 사실감을 부여 하면서도 전쟁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과 전황 중계 둘 다 놓치지 않는다. 헬기가 주된 오브제로 나오는 영화답게 직부감 등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전체적인 전투의 맥락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더불어 배우들의 얼굴을 깊게 각인시키는 클로즈업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 싶다. 사실 전투 장면의 파괴력으로도 유명한 영화지만,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각 인물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용맹함, 슬픔, 전우들에게 느끼는 감정 등이 중요해지는 영화잖아.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클로즈업은 꽤 효과적이다.

전쟁 영화이니 만큼 남초 현상이 두드러질 수 밖에 없는 영화인데, 때문에 당시 할리우드를 주름 잡았던 남배우들을 도매급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에릭 바나는 당시 절정기였다고 생각하는데 그 때문인지 제일 쿨하게 나옴. 조시 하트넷은 이렇게 부드럽고 착한 이미지였나 다시 볼 정도로 건실하게 나온다. 잠깐의 출연이지만 당시 떠오르는 스타였던 올랜도 블룸의 극 중 모습은 여러모로 의미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월드 워 Z>의 그 젊은 박사놈을 떠올리게 만드는 출연. 이완 브램너도 나왔고, 윌리엄 피츠너도 멋지게 나옴. 아, 오랜만에 다시 보는 거였는데 이 영화에 톰 하디 나오더라! 이게 바로 예전 영화를 다시 보는 기쁨인가.

하지만 가장 재밌고 공감가는 캐릭터는 역시 이완 맥그리거의 그림스다. 행정병인데 재수 없게 차출되어 현장 뛰게 된 경우. 이게 어찌 공감 안 될 수가 있고 이게 어찌 기구하지 않을쏘냐. 예전에 이 영화 처음 볼 때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업햄 꼴 날까봐 지레 겁 먹으며 봤었는데 나름 밥값을 하는 인물이었음. 우리의 오비완 케노비가 그럴리 없잖아 마지막에 살아 돌아와 좋았다.

이 영화에서 내가 아쉬운 건, 시가전의 아기자기한 맛이 없다는 것이다. 엄폐물들을 적절히 활용해가며 하는 액션들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그냥 숨고 총질하는 게 전부라. 좀 더 인물들이 많이 움직였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 해본다. 그냥 개인적인 아쉬움.

영화 거의 후반부까지만 해도 실제 전장에서 구르는 병사들과, 의자에 앉아 무전을 통해 지휘하는 작전본부의 장군들 모습이 부지런히 교차편집 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처럼 보인다. 장군급 고위 인사들을 약간 까내리려는 것처럼. 하지만 결말부에 이르면, 약간 구색 맞춘 듯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들 역시도 명예를 하는 군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마무리.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야말로 모든 군인들에게 거수경례하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말리아 민병대는 어디서 그렇게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모르겠네. 추락한 헬기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그들의 위세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스타쉽 트루퍼스>의 벌레 새끼들이 떠오르더라. 아- 소말리아 민병대와 외계의 벌레들을 이어 붙이게 만드는, 이게 바로 할리우드 영화의 프로파간다인가.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