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8 17:32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1998 대여점 (구작)


정말로 좋은 텍스트는 시대를 타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디스플레이의 인터페이스와 그 시스템은, 2019년 현재 시점에서 보았을 때 지극히 촌스럽고 고전적이다. 하지만 '자유 vs 안보'라는 영원불멸의 주제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국가 조직으로부터 쫓기는 주인공의 이야기만은 시대를 초월한다. 아, 여기에 액션 스릴러 명장으로서 절정에 올랐던 토니 스콧의 연출력도 시대 초월 진기명기임.


스포일러는 딱히 없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것인가 vs 개인의 자유를 위해 모두의 안전을 포기할 것인가. 텍스트로는 조지 오웰의 <1984>가 당장 떠오르고, 영화로써도 굉장히 많은 영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최근작만 따져도 이 영화의 직계 후예라 할 수 있을 <이글 아이>가 있었고,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수퍼히어로 블록버스터물임에도 그 텍스트를 적용한 예였다. 좀 더 변주한 버전으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있고. 이건 뭐, 더 했으면 더 했지. 아직 벌이지도 않은 범죄에 대해서 단죄 당하는 내용인데.

그리고 대부분의 그러한 영화들이 취하는 스탠스는 보통, 후자이기 마련이다. 모두의 안전과 안녕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는 말자는 것. 물론 그에 있어 확답을 주는 영화들은 없다. 딜레마는 주지.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결말에 이르러서 개인의 자유를 선택한다. 당연한 거야, 대부분이 다 미국 영화인데. 소련은? 지금 없는 나라잖아 북한은?

그 중에서도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는 극강의 공포를 보여주어 그 결말의 손을 더 열렬히 들게 만드는 영화다. 가장 내밀한 개인의 공간이라 할 수 있을 집, 그것도 더 나아가 침대 위에서도 감시 당할 수 있다는 공포. 심지어 모든 신용카드가 정지되고 사회적 신용이 급락해 경제적인 위기로도 직결될 수 있다는 충격. 그건 다 그렇다쳐도, 윌 스미스가 연기한 딘처럼 공중전화를 통해 추적당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충공깽이다. 지금 봐도 '저게 가능해?'란 물음과 공포가 따라오는데, 90년대 당시엔 어땠을까. 

그럼에도 요즘엔 이런 류의 묘사를 아득히 뛰어넘어 초월한 장르 영화들이 너무 많다. 때문에 이미 어느 정도의 내성이 생긴 상황. 하지만 이 영원불멸의 주제와 충공깽스러운 국가 권력 묘사만이 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다. 이 영화엔 영화를 보는내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을 안 주는 토니 스콧의 탁월한 연출력이 있다.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 스펙터클하고 오밀조밀한 추격과 스릴을 선사 하면서도, 극 중 주인공의 심리에 관객을 공감시키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보는내내 빡치더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나 무고한 존재였는데 학창 시절 친구 잘못 만나 이딴 무간지옥에 빠지다니! 뻔하지만 가족을 그리워 하는 부분이나, 도대체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인지 자체가 안 되서 발을 동동 구르는 부분 등이 모두 확 와닿는다. 모름지기 액션 영화는 이래야한다. 폭탄만 빵빵 터뜨린다고 능사가 아니다. 

존 보이트는 고위 권력층 백인 악당의 역할을 제대로 했고, 윌 스미스는 전성기 시절이었다보니 날아다닌다. 가끔 귀엽게 느껴지기도. 진 핵크만도 좋은데, 이건 아무래도 코폴라의 <도청>을 의식한 캐스팅이겠지? 그나저나 요즘 진 핵크만 나오는 영화 많이 보네.

아, 잭 블랙도 나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모습으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니 집중해서 봐야한다. 그 외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간지 저격수이자 최근엔 <데스 큐어>에도 나왔던 빌리 페퍼가 능력 좋은 악당으로 나온다. 이 양반은 어딜가나 능력치가 좋구만.

98년도 개봉작이니까 현 시점으로 계산하면 어느덧 20여년 전 영화네, 벌써. 근데 요즘 액션 영화들 수준이 이것만큼 못 되는데 그렇다면 그건 그거대로 또 문제 아니냐.


덧글

  • 로그온티어 2019/01/08 18:33 # 답글

    아아... 이 영화 나올때가 제가 초1이었죠. 당시 부모님이 영화를 좋아해서 봤지만 저는 (어릴 때라) 이해못했던 게 기억나네요. 이 리뷰 보고 생각해보니, 이 영화를 케이블에서도 종종 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본 적이 없네요;; 그나저나 토니스콧 영화였군요! 전 이 영화가 약간 심오한 내용이 담겨져 있어서 리들리 스콧 영화라고 생각했었고 영화 이야기할 떄도 그렇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불킥할 거리가 늘었군요...

    PS. (속닥) 햄식이 나오는 [배드타임즈] 보세요
  • CINEKOON 2019/01/08 18:36 #

    앗! 로그온티어님 저랑 동년배(?)이시군요! 98년도에 초1이셨다면...
  • CINEKOON 2019/01/08 18:36 #

    그나저나 그 드류 고다드 신작은 국내 개봉 물 건너간 건가요? 하...
  • 로그온티어 2019/01/08 18:47 #

    1. ...나이 숫자 세다가 이제야 깨달았네요. 제가 잘못 적었어요; '영화 나올 때'가 아니라 '비디오로 나올 때' 대여로 봤어요. 오래전 기억이라 헷갈렸네요; 그래도 1살 차이네요, 전 99년이니 (...)

    2. 네, 저 그래서 네이버 영화로 봤습니다.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볼만 했어요. 다만 영화 때깔이랑 연출 방식이 맘에 들어서 극장에 걸려도 나쁠 거 없는데 라는 아쉬움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꼭 보세요. 가치가 많습니다.
  • CINEKOON 2019/01/08 20:01 #

    아하, 2차 매체로만 공개인 것이군여......
  • 잠본이 2019/01/09 00:26 # 답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잭블랙이라니 나름 희귀한 경험이 되겠군요(...)
  • CINEKOON 2019/01/09 13:47 #

    사실 따지고 보면 피터 잭슨의 <킹콩>에서도 볼 수 있었던 모습이긴 하지요. 그 외에 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잠본이 2019/01/10 23:05 #

    그렇긴 한데 낑꽁에선 이미 있었던 캐릭터를 빌려온 것도 있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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