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2 13:51

빅 트러블, 1986 대여점 (구작)


80년대를 풍미한 존 카펜터의 B급 컬트 영화. 어려서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배경을 적절히 현대쯤으로 옮긴 <인디아나 존스> 짝퉁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꽤 진귀한 물건이었다. 완전히 다른 매력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대놓고 오리엔탈리즘이 비벼져 있는 영화다. 서양 영화, 특히 할리우드 영화에서 타국의 문화를 다루는 근본없이 무례한 태도야 뭐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지금 기준으로 봐도 굉장히 심한 편. 일단 배경이 차이나 타운인 것까지야 오리엔탈리즘과 별 상관 없겠지만, 보다보면 중국과 일본과 심지어는 태국까지 믹스된 듯한 아시아 출신 악당 세력의 의상이나 프로덕션 디자인을 보고 있노라면 어이가 털릴 지경이다. 푸만추를 모티브로 했겠지만, 그리고 애초에 그 원형이 된 푸만추 캐릭터도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었지만 여기서는 그 끝을 달린다. 끝판왕이 영화의 태도로써도 끝판왕이라니 이것 참 의미 있다면 의미 있네. 등장하는 동양인은 모두 무술 고수라든가 그도 아니면 지혜로운 현자, 그것도 아니면 마법사로 나온다는 것도 오리엔탈리즘의 대표적인 특징. 

근데 존나 당황스러운 건, 그런 걸 별로 안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기본적 재미가 탄탄 하다는 거다. 그리고 동양인들이 비겁하고 비열한 악역 로스터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또 모르겠는데, 이 영화 속엔 악당들 말고도 중국인들의 영웅적 활약을 보여주는 묘사 역시 많다. 특히 주인공의 사이드킥 포지션처럼 보이는 캐릭터 '왕'은 영화 다 보고 나면 실질적인 주인공처럼 각인되는 캐릭터. 까놓고 말해 커트 러셀의 백인 하층민 주인공 캐릭터보다 하는 일이 훨씬 더 많음. 주인공이 워낙 얼뜨기 막가파로 나오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인 재미가 탄탄한데, 문제는 지금 기준으로 보았을 때 '병맛'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테이스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저 그런 'B급 유머' 같은 단어로 포장될 수 있었지만 '병맛'이라는 코드가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지금 기준으로 보았을 땐 의외로 빵빵 터지는 장면이 많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커트 러셀의 빙구미 덕분이긴 해. 하여간에 아무 것도 모르고 날뛰는 천둥 벌거숭이 역할 개 잘함.

예전에 오락실에서 많이 하던 고전 8비트 아케이드 게임 특유의 쌈마이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을 잘 옮기기도 했고, 지금 기준에서야 싼 티가 나보이지만 그것 자체로 맛이 있는 프로덕션 디자인 역시 훌륭. 다만 진짜 보다보면 그냥 막 찍은 것 같은 장면들도 많다. 근데 그것도 B급 유희 정신이라는 미명 하에 다 이해되는 부분이고.

영화 보고 검색해보니 이거 드웨인 존슨 주연으로 리메이크 된다네. 드웨인 존슨 싫지는 않은데 이 영화는 주인공이 빙구 같아야 맛인 영화라 커트 러셀 이상으로 잘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19/01/12 14:22 # 답글

    저 영화가 2000년대 초반에 기획됬다면 감독은 단연 스티븐 소머즈였을텐데... 그나저나 얼간이 노동계층(?)이라거나 미워할수없는 레드넥(??)으로 어울릴 것 같다라는, 점찍어둔 배우가 있으신가요?
  • CINEKOON 2019/01/12 14:29 #

    생각해보면 커트 러셀은 그런 이미지가 참 많았네요. 비교적 최근작인 <해이트풀 8>에서도 폭력적인데 미워할 수 없이 귀엽고 순수한 구석이 있었던 레드넥 캐릭터도 그랬고... 이 영화를 꼭 현재에 리메이크 해야한다면 제이슨 모모아도 귀여울 듯...
  • 잠본이 2019/01/12 17:41 #

    빙구미를 강화한 크리스 프랫 어떻습니까 (가오갤에서 커트러셀 아들로 나온거 생각하면)
  • 로그온티어 2019/01/12 17:43 #

    근데 그분은 단가가 비싸졌잖아요. 저예산으로 만들어서 안전빵 아닌 아이디어 위주로 가야하는 게 빅트러블인데...
  • CINEKOON 2019/01/12 17:45 #

    단가 문제만 빼면 크리스 프랫 정말 딱이네요. 근데 확실히 이 양반은 80년대 감성이랑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애초에 만약 인디아나 존스가 리메이크 된다면 가장 어울릴 배우가 누구일지 묻는 설문에서도 1위 했었잖아요. 몸값 비싸진 것만 빼면 정말 최고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너무 노골적인 캐스팅처럼 보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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