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2 14:39

말모이 극장전 (신작)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우리말을 전면 금지했던 일제 시대, 그 안에서 남몰래 우리말들을 수집하고 공부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거, 영화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선 구미가 안 당길 수 없었을 거다. 일단 소재 자체가 주는 힘이 있고, 시대상에서 비롯된 갈등이나 위험요소를 만들기도 쉬워 보이잖아. 게다가 적당한 신파와 국뽕을 갈아넣을 수 있는 소재. 아,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너무 좋지. 놓칠 수 없는 소재지. 근데 그렇게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우리말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롯데에서 만들었다는 게 개그.

상술했듯 소재가 소재인지라 후반부 어느 지점부터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로 국뽕과 신파 요소가 정리되어 있다. 근데 영화가 아슬아슬하게 넘치진 않더라. 눈물을 엉엉 흘리며 울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관객에게 눈물을 강요하는 듯한 강제적 느낌은 적어서 여타의 신파 영화들에 비해선 담백 하다는 느낌. 물론 비교적 그렇다는 것이다. 때문에 신파 자체에 알레르기가 있는 관객들이라면 혀를 내두를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신파가 강하지는 않았다는 게 내 생각. 나도 무조건적으로 신파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잘하면 돼, 잘하면. 이 영화는 그걸 아주 잘 해냈다고 볼 순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흘러 넘치진 않았다. 국뽕도 그렇고. 그 정도면 되었다.

다만 영화가 뻔하게 눈에 보이는 길로 밖에 갈 수가 없는 구조인데, 런닝타임이 너무 길다. 보니까 두 시간 살짝 넘는 것 같던데, 그냥 곁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들 다 쳐내고 1시간 40분 정도로 줄여 개봉 했으면 어땠을까. 최소한 십 분, 욕심 내서 십 오분만 덜어내었어도 영화의 리듬감이 더 살았을 듯. 영화에 신파가 있긴 하지만 비교적으로 담백한 편이라 나쁘지는 않다고 했었는데, 다르게 이야기하면 눈물을 강요하는 강한 신파 영화들이 갖고 있는 한 방이 없다는 말도 된다. 한 방이 없는데 이야기만 주절주절 길게 늘이고 있으니 오히려 더 지루할 수 밖에. 신파란 걸 알고 욕하면서도 차라리 한 번 크게 빵 하고 때리면 최소한 얻어맞기라도 할 텐데, 이 영화는 잽만 날리면서 스텝은 또 겁나 긴 느낌이다.

처음엔 작은 소품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100억대 영화더라. 보기 전에는 뭐 이리 돈 많이 썼나 싶었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돈 어디다 썼는지 다 알겠음. 확실히 이건 요즘 느끼는 건데, 차라리 사극이 근현대사물보다 더 찍기 편할 것 같다. 사극은 민속촌이라도 쓸 수 있지, 근현대사는 죄다 만들거나 지어야 하잖아.

글도 모르는 까막눈에다 자기 잇속 챙기기에만 바빴던 남자가 나라를 위해 모든 걸 걸고 투쟁하는 이들을 만나면서 변화한다는 스토리에서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정도 만큼만 딱 하는 영화다. 근데 순희가 귀여워서 좀 더 재밌다고 해줄 수 있을 듯.

뱀발 - 요즘 김홍파 배우를 몇 번 보는 거야, 대체.

핑백

  • DID U MISS ME ? : 항거 - 유관순 이야기 2019-03-04 23:12:40 #

    ... 사 이름으로 롯데가 올라가고 있는 그 염병할 아이러니 때문에. 웃으면 안 되는 장면인데 그거 때문에 씁쓸하게 웃기더라. 생각해보니 롯데 이 양반들은 <말모이>도 제작했었네. <말모이>나 <항거> 같은 영화들을 롯데에서 만들었다는 게 제일 웃기고 말 안 됨. 이런 영화들 볼 때마다 느끼는 ... more

덧글

  • 디제이웍스 2019/01/14 16:53 # 답글

    저도 영화를 보면서 조금만 이야기를 덜어내먄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차라리 TV에서 2-3부작 특별 단막극으로 만들었어도 그 리듬감이 많이 살아났을 것 같아요ㅎ
  • CINEKOON 2019/01/28 13:53 #

    단막극이랑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의 소재이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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