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4 19:09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일의 아름다움 일기라기엔 너무 낙서


"지금 윤하 앨범 남았나요?"


내가 고등학생 , 윤하가 사인회를 위해 전주에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시내에 있는 음반사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당시 사인회 이벤트의 참여조건은 사인회를 주최하는 해당 음반사에서 앨범을 구매해야 사인회 참여 티켓을 주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 버스도 타지 않은채 음반사로 달렸다.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전주 시내에 있는 음반사까지는 보통 버스로 20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지만, 운동화를 신고 거리를 10분만에 주파했었다. 그리고 결국 앨범을 샀고, 사인회에도 갔다. 재밌는 , 이미 앨범이 내게 있었다는 것이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제일 친했던 친구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해 두리번 거리며 에픽하이 콘서트장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전주엔 지하철이 없기 때문에, 전주촌놈 명이서 서울 지하철은 어떻게 이용하는 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었지.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찾았던 콘서트장 스탠딩석에서, 우리는 타블로와 아이컨택을 있었다. 그래서 이후 에픽하이의 9 앨범이 생일인 10 23일에 발매 되었을 , 나는 그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은 같아 기뻤다. 그들을 좋아했던 나의 마음을 그들이 알아주었다고, 마음이 보상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무언가가 좋아서 달려든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에 참여하기 위해 모의고사 전날에 서울행 버스를 적도 있었고, 스페인까지 가서 부러 <스타워즈> 촬영지에도 들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했던 무모함들이 많다.


스무살이 나는 영화과에 합격해 기분이 좋았다. 기분 그대로 호기롭게 떠난 오리엔테이션. 장기자랑과 각종 게임들, 그리고 이어지는 야밤의 술자리들. 여기에 선배들의 단골질문이 끼얹어진다. “ 어떤 영화 좋아해?” 열댓명의 동기들과 동그랗게 둘러앉아 질문을 받았다. 연병장 앉아 번호 마냥 명씩 영화 제목을 대고 옆사람을 본다. 때만해도 <다크 나이트> <쥬라기 공원> 좋아한다 말할 생각이었다. 근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다. 나랑 비슷한 수준인 알았던 동기들이 하나둘씩 괴상한 감독들을 읊어대고 있잖아. “저는 펠리니요.” / “ 김기영의 <하녀> 가장 좋아합니다.” / “최고는 미조구치 겐지죠.” 나는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다. 들어도 봤고, 영화도 찾아 봤으나 도무지 좋아지지 않던 그들의 영화. 그런데 그것들을 좋아한다고 대접 받는다. 옆에 앉은 학번 선배의 차례. “ 일전에 말씀드린대로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 제일 좋아합니다.” -, 나도 영화. 하지만 여전히 좋아하진 않는 영화. 그치만 그렇기에 그것은 내가 선택할 있는 가장 나은 옵션 같아 보였다. 비로소 차례. “저도… <달콤한 인생>…”


나는 아직도 나의 취향을 숨겼던 날의 대답이 조금은 후회스럽다. 돌이키고 싶은 정도까진 아니지만, 정도로 용기가 없었나- 하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의 아름다움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무뎌졌을지언정 연예뉴스란에윤하라는 글자가 뜨면 번쯤은 눌러보게 되고, 에픽하이 멤버들의 싸인이 인쇄된 10 때의 콘서트 엽서를 가지고 있으며, 괴수 영화가 나오면 극장으로 향하고, 그러므로 스필버그는 언제까지나 나의 바이블이다. 때문에 많고 많은 것들 중에 그런 좋아하냐- 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감독이랍시고 괴수영화 만든뒤 언론시사회에서 사실 자기는 별로 괴수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따위로 그걸 사랑하는 사람들을 욕보이는 했으면 좋겠으며, 남이사 아이돌을 좋아하든 말든 그걸로 훈계질 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해본적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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