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5 12:47

그린 북 극장전 (신작)


서로 다른 처지의 두 남자가 우정을 계기로 변화해간다는 이야기는 사실 많이 뻔하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 1%의 우정>도 있고, 좀만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도 있었잖아. 말이 이 두 편이지, 더 따지고 보면 훨씬 더 많음. 게다가 두 영화 모두 흑인과 백인이 한 명씩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는 공통점까지. <그린 북>은 여러모로 뻔한 영화다. 심지어 전체적인 그림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랑도 비슷하거든.

이 영화는 그런 뻔함을 유머와 캐릭터로 뚫어 제낀다. 누가 화장실 유머와 정통 코미디의 대가인 패럴리 형제 아니랄까봐, 영화에 유머가 꽤 많이 들어 있다. 물론 영화는 두 형제 모두 연출한 게 아니라 형인 피터 패럴리 혼자만의 작품이긴 하지만. 하여간에 영화의 유머가 좋다. '유머'라는 점이 포인트. 막무가내로 웃기는 '개그'가 아니라, 인간적인 감동과 느낌이 잘 살아있는 '유머'라는 게 주된 점이라는 거. 

'물 밖에 나온 물고기'라는 관용어구가 있다. 이야기를 만듦에 있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 인물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 이 영화도 그렇게 갈 수 있었다. 백인 문화와 흑인 문화를 나누고, 서민 문화와 상류 사회 문화를 나눠서 각자의 영역 외의 문화를 접했을 때 캐릭터들의 반응을 통해 개그를 만들고 이야기를 꾸릴 수 있었다. 물론 영화가 어느 정도 그런 길을 걷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조금씩 다르게 가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이 영화엔 상대의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며 당황하다 공감하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상대의 문화가 어떨 것이라고 미리 자신이 단정 지어버리는 설정이 꽤 많이 등장한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의 백인 중산층 주인공은 음악가인 흑인 상류층 주인공에게 후라이드 치킨을 당연하다는 듯이 권한다. 당신네들 이것에 환장하지 않냐면서. 

영화는 그런 편협함에 대해 잘 이야기하고 있고, 캐릭터들이 그 메시지를 아주 수월하게 밀어준다. 결말부 주인공들이 또다른 경찰에 의해 정지 당했을 때, 나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른 폭력이 이들을 맞이하겠구나- 하고. 근데 그것도 결국은 내 편협한 생각이더라. 설사 내 예상이 맞았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시도. 그게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하고, 이 영화가 그걸 잘 전해주는 것 같아 기뻤다.

배우들의 매력이 그야말로 폭발해버리는 영화다. 마허샬라 알리는 그야말로 품격 넘치는 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목소리에 거의 녹아내리겠던데. 비고 몬텐슨은 <반지의 제왕> 시절 간지가 폭발하는 외모와 분위기가 많이 죽었으나, 그 자체로 유머러스하고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막말로 비고 몬텐슨이 연기한 주인공 집에 놀러가고 싶어짐. 그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니냐.

영화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뻔한 길을 그대로 간다는 것 정도. 하지만 요즘 같이 형편 없는 영화들이 많은 시국에 그런 것도 욕심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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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01/15 14:54 # 답글

    목소리에 녹는다는 표현이 정확하십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 땐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문라이트부터 으응? 싶더니 뉴유니버스에서 띠용했죠(또 그놈의...) 듣고 힐링될 정도로 좋은 흑인배우 목소리 중에 하나로 또 추가될 것 같습니다. 모건 프리먼 이후로.

    아무도 목소리 언급 안 하시길래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는데, 역시 나만 녹은 게 아니었구나.
  • CINEKOON 2019/01/28 13:54 #

    최고의 대사는 역시 그 애니메이션에서의 "...HEY." 겠죠?
  • 로그온티어 2019/01/28 22:36 #

    아뇨...! 전부 다 최곱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요. hey도 있지만, 마일즈창문에서 장난치자 헤헤헤하면서 웃는 것을 시작으로, 하수도 찾게 된 배경 설명하는 거랑, 너 내 조카 맞구나도 있고, 너 일부러 흘리는 거 (그라피티할 때 잘못 조절하면 번지는 거) 아니지? 막판직전에 손 떼면서 이건 아냐라고 말하고, 끝내는 계속 가라는 것 까지 전부 좋습니다.

    문라이트에서는 주인공에게 하는 명대사가 있는데 제가 기억력이 심상찮아서(?) 잘 기억이 안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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