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8 15:17

쿠르스크 극장전 (신작)


잠수함 타고 훈련 나갔다가 선내 폭발로 바다 속에 갇힌 생존자들. 그리고 그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육지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실화라곤 하지만 이 시놉시스 보고 굳이 다른 나라를 떠올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사회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아니, 사회는 곧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개인과 개인이 함께 점심 메뉴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정치적인 것인데, 하물며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제는 오죽할까.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야 구해야할 생존자들이 원자로로 굴러가는 핵잠수함 선원들이라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일단 기밀이니까. 그 기밀에 타국의 군대나 구조대가 접근하는 문제인데 예민할 수 밖에 없지. 더불어 대두되는 문제는 바로 국가적 자존심. 이것도 아예 이해 못할 부분인 것은 아니다. 자존심 강대국 러시아인데 다른 나라한테 쩔쩔매며 원조 받는 모습 보이고 싶겠어? 당연히 국제적 망신으로 생각하지. 

하지만 사회는 곧 시스템이란 말, 이것은 그 사회 안에서 먹고 살며 생활하는 사람들 역시도 그 시스템을 믿고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시스템이란 건, 사회라는 건 애초에 모든 시민들의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최소한의 도덕성과 윤리성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침몰한 쿠르스크호의 생존자들도 그걸 믿었다. 내가 가라앉으면 물 밖의 누군가가 발 벗고 나서서 나를 구해줄 것이라는 그 믿음. 그게 시스템에게 보내는 신뢰인 것이다. 하지만 높으신 나랏님들에게는 그런 개인의 신뢰 따위야 알 게 뭐람. 당장 우리 나라가 쪽팔리게 생겼는데.

영화는 우리 모두가 믿었던 그 시스템이 사실은 어떻게 굴러가고 있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주기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것은 관리되지 않았고, 사건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지지 않았으며, 사건의 진상을 알 권리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빨라야할 것이 너무 늦었다. 조심스레 접근 하느라 늦는 것은 괜찮지만, 이것저것 대보고 대의명분 따지다가 늦었다. 그게 제일 분통 터지는 일이다.

감독의 전작들 중 하나인 <더 헌트>를 힘들게 본 나로서는 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하지만 막상 보니 그 정도의 답답 고구마 전개는 아니더라. 오히려 지나친 양념없이 담백하게 보여주는 영화라서 더 좋았음. 중간에 대단한 롱테이크 장면도 있고, 전체적으로 영화의 만듦새가 인상 깊다. 그리고 무엇보다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놀랐음. 주인공은 최근 어디선가 본 인상이라 찾아봤더니 <래드 스패로>에서 주인공인 조카를 조지고 부시다가 결국엔 얕은 연정까지 품었던 그 남자였네. 중간에 또 등장하는 남자는 타란티노의 <바스터즈>에 나와 희대의 마피아 게임을 벌였던 그 남자였고. 콜린 퍼스와 레아 세이두의 연기도 좋지만 역시 비중이 그리 크진 않다. 그럼에도 배우들 보는 맛은 꽤 있는 영화.

러시아 배경 영화고 등장 인물 대부분 역시 러시아인인데 영어로 제작된 영화라는 게 함정. 그거 딱 하나가 걸리지만 그 역시도 아주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닌지라.

바다에 갇힌 아들들을 구하지 '않은' 그 나라의 죄. 근데 그 죄가 멀리 있지 않더라.

뱀발 - 아, 중간에 화면비 전환이 두 번 있다. 도입부와 결말부는 1.66:1로 전개되고, 그 사이 중반부는 통으로 2.35:1 시네마스코프. 변환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생각해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봤다.

실제 사건에 기초한 이야기인데, 실제 사건에서는 잠수함 안에서 벌어진 선내 폭발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도 이뤄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영화 속에서 묘사된 것처럼 함내 최후의 생존자들이 몇 명이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버티고 있었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아마 감독이 화면비 전환을 고안해내지 않았을까. 2.35:1인 시네마스코프 비율은 누가 뭐래도 영화를 상징하는, 가장 영화적인 룩을 내는 화면비이고, 그 반대로 1.66:1은 영화보다 더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TV 매체의 화면비 규격과 흡사하며, 더불어 다큐멘터리들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것. 그래서 아마, 실제 사건에서 우리가 알 수 있었던 도입부와 결말부에는 상대적으로 비 영화적인 화면비를 통해 비교적 사실에 기초한 부분이다- 라는 걸 이야기하는 것 같았고, 중반부 시네마스코프로 촬영된 모든 부분들은 영화적인 극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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