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0 18:45

글래스 극장전 (신작)


일단 기획력으로 먹고 들어가는 게 좀 있다. MCU나 DCFU나, 요즈음의 수퍼히어로 영화들은 연단위 라인업이 미리미리 다 공개 되잖아. 내년 몇 월에는 어떤 영화가 개봉하고, 또 그로부터 두 달 뒤에는 어떤 영화가 개봉합니다- 뭐 이런 식. 근데 샤말란의 이 수퍼히어로 연작은 그야말로 희대의 갑툭튀였다. 아니, <언브레이커블> 슬슬 잊혀질 무렵에 <23 아이덴티티> 결말부로 뒷통수 후리더니 2년 만에 완결작으로 돌아올 줄이야. 역시 사람일, 영화일은 모를 일이다.

<23 아이덴티티>와의 연결성과 접점 역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글래스>는 <언브레이커블>의 확장판처럼 보인다. <언브레이커블>이 선보였던 수퍼히어로에 대한 담론을 더욱 더 깊고 넓게 확장시키는 느낌이랄까. 강점과 약점이 분명한 수퍼히어로와, 힘으로 조지고 부수는 수퍼 빌런 & 뇌똑똑이 수퍼 빌런의 대결 구도. 하지만 이 대결 구도의 쾌감을 장르적으로만 소모하려는 영화는 또 아닌데, 오히려 수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일종의 메타 영화처럼 기능 하더라. 막말로 어느 수퍼히어로 영화들 앞에 갖다붙여놔도 제 기능을 할 범용성 높은 프리퀄 기획이다. 그 중 제일 잘 맞는 궁합은 역시 브라이언 싱어가 태동시킨 <엑스맨>일 것.  씨바, 수퍼히어로와 수퍼 빌런들의 개싸움을 보여주는 영화일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 장르의 근원적 토대를 제공하는 메타 영화일 줄이야.

전작들 덕에 캐릭터 빌드업은 다 되어 있는 상태인데, 그럼에도 중반부 페이스가 이렇게 처진다는 건 큰 문제다. 강철신체 감시자와 다중인격의 괴물, 그리고 휠체어를 탄 지능캐가 처음 만나는 핑크빛 정신병원 장면이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사실상 가장 중요하고 흥미가 동해야할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사라 폴슨이 연기한 스페이플 박사의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냥 얘네들끼리 치고 박고 깨무는 거 보고 싶은데 별 설득력 없는 개소리나 씨부리면서 말도 제일 많은 게 이 박사란 여자. 암만 생각해봐도 여긴 너무 처지더라.

액션 장면은 괜찮은 편. 물론 대부분의 이 장르 팬들이라면 오사카 빌딩에서 박터지게 용호상박하는 스펙터클을 더 원했겠지만, 역시 샤말란은 그런 데에 별 관심이 없다. 정신병원 앞마당에서 소소하게 치르는 싸움이 이 영화의 최종결전일 뿐. 하지만 그 소소한 스펙터클의 육박감이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현실적인데다 인물들 간의 개성이 뚜렷해서 보는 맛은 확실히 있더라.

하지만 다 떠나서 사무엘 L 잭슨이 연기한 미스터 글래스의 대활약이 돋보이는 영화다. 1편격인 <언브레이커블>의 제목은 데이빗 던을 상징하는 문구였고, 2편격인 <23 아이덴티티>, 그리고 원제인 '스플릿'은 모두 케빈을 상징하는 문구들이었지. 근데 왜 하필 세번째 이야기이자 완결편인 이 영화까지 와서야 다시금 엘라이자가 주목받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보기 전에 있었는데. 결국 미스터 글래스는 이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입한 캐릭터였다고 느껴진다.그리고 향후 이어질 세계관에 직접적인 씨앗을 뿌렸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 제목의 권위가 와닿는 부분. 물론 이 뒤의 이야기가 영화화되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게 중요한 장르의 웅변 같아 보이는 영화였다. 수퍼히어로 장르에도 신이 있다면, 그 신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는 것만 같았다. 다만 후반부에 뜬금없이 등장한 정체불명의 조직은 너무 작위적이고 갑작스러움. 더불어 이상한 조합으로 마지막에 손 잡고 끝나는 것도 괴상하고.

하여간 존나 이상한 영화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그저 그런 영화인데, 이상하게 몇 번씩 곱씹고 앉아있게 되는 영화. 모르지, 또 언젠가 3부작을 모두 연이어 다시 볼 기회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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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그온티어 2019/01/20 20:11 # 답글

    본래 4시간 분량의 야심작(...)이었다고 합니다. 세계관 확장도 꿈꾸고 있었고요. (정체불명 단체 나온 건 아마 원본의 맥락 때문이었을지도.) 그렇다가 뺄셈을 한 셈인데, 제 경험상 그랬을 때 진짜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이것도 소중하고 저것도 소중해서 제대로 된 뺄셈이 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하나의 뼈대를 잡고 빼야 하는데... 빼야하는 것 중에 아이디어가 괜찮은 게 꼭 있어요. 그럴 땐 저거 버리기 싫은데, 진짜 싫은데라며 수시간 고민하다 남겨놓죠. 그리고 이 맥락도 소중해, 저 맥락도 소중해라며 곁다리를 살리는 불상사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다 '저건 불필요해'라면서 연결고리 하나 뺍니다. 근데 그 연결고리가 내 딴에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된 건데 남의 시선에서는 아니었던 거에요. 같이 만들고 있는 사람들 끼리는 수십번 돌려보며 스타일과 맥락을 다 알고있기에 그 연결고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눈치채질 못했기에 이 오류가 그냥 넘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하고 있지만 관객(유저)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전개가 터지는 거죠.

    가끔 작품 나오면 그런 작품들 있죠.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게 갑툭튀하고... 연결이 제대로 안되고... 그런 작품이 되는 이유가 딱 이겁니다 (...) 뺄셈을 제대로 안 한 거에요. 그런 작품이 확장판 나오면, 그제서야 관객도 이해가능한 작품이 되지만... 그땐 이미 늦었죠. 왠지 예상은 했는데... 일단 봐야 알겠습니다만, 평점도 보고, 시네쿤님 리뷰도 읽고보니 그 생각이 나서 불안이 스멀스멀 하네요 ㅋㅋㅋㅋ
  • CINEKOON 2019/01/28 13:56 #

    창작자로서 정말 빡! 이해되는 부분이예요. 하다보면 아, 아까 그거 빼기로 했지만 너무 아까워... 하면서 다시 들이밀기 마련이죠...
  • 로그온티어 2019/01/28 22:39 #

    저만 그런게 또 아니었군요! 그리고 추가할 게 있는데... 나중에 망한 작품들 보면 사람 돈 주고 (or 하는 것에) 왜 이렇게 만들었나 화가 나면서도 제가 저지른 일(?)들 떠올라서 괜히 시무룩해지고, 자기 반성하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제 덧글이 분석아닌 잡담에 길어진 이유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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