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9 20:29

극한직업 극장전 (신작)


이병헌의 <극한직업> 이전에 우디 앨런의 <스몰 타임 크룩스>가 있었다. <스몰 타임 크룩스>의 주인공들은 은행을 털기 위해 은행 근처 건물의 상가를 임대받아 쿠키 장사를 했다. 낮에는 쿠키 장사, 밤에는 은행 금고까지 도달할 땅굴을 팠다. 근데 쿠키 장사가 너무 잘 되버리는 이야기였지. 때문에 이미 물 건너에서 한 번 쓰고 버린 이야기인데 그걸 또 굳이 주워 영화로 만들었냐는 이야기를 혹여라도 들을 수 있다. 다만 나로서는 항상 이야기하듯이, 우라까이라도 잘만 하면 대환영인데다 어떤 부분에서는 <스몰 타임 크룩스> 보다 <극한직업>이 훨씬 나은 측면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주인공들의 직업 차이. <스몰 타임 크룩스>의 주인공들은 모두 은행털이범, 즉 범죄자였다. 범죄자들 입장에서야 돈이 목적이니 은행을 털려다가도 쿠키 장사로 수지 맞으면 굳이 범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은행 털 이유가 없어지는 거지. 하지만 <극한직업>의 주인공들은 다르다. 그들은 모두 마약반 형사들이 아닌가. 치킨집을 개업한 목적도 주변 은행을 털기 위해서가 아니라 범죄자들을 잡아넣기 위한 거잖아. 때문에 치킨 장사가 제 아무리 잘 되어도 이야기는 계속 굴러간다. 이런 기초적인 설정 같은 부분에서는 <극한직업>이 좀 더 좋다.

전작인 <바람 바람 바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썼지만, 이병헌 감독의 시나리오는 확실히 말맛이 있다. 각 인물들에 꽉 맞게 조율된 찰진 대사들과, 그 대사에 가장 알맞는 표정 및 제스처를 배우들이 잘 해낸다. 이건 기초적인 디렉팅이 굉장히 잘 되어 있다는 증거다. 그런 부분에서 영화는 양념치킨 마냥 맛이 확실하다.

전체적으로 이후 이야기들이 모두 예상되는 뻔한 전개인데다가, 결말부에 펑하고 터져나오는 대규모 액션 시퀀스 역시도 전형적이다. 다만 전형적이란 게 꼭 나쁘단 건 아니잖아? 새로운 맛은 없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응당 기대하게 되는 피날레를 잘 쏘아올렸다고 생각한다. 어줍잖은 신파 기운이나 고리타분한 훈계조의 메시지도 없다. 그래서 더 좋다. 예컨대 기본기가 잘 잡힌 장르 영화란 이런 것이다. 

앙상블이 중요한 영화답게 배우들을 면면히 따져보게 되는데, 초반엔 뭔가 어긋나보이던 조합과 시너지가 후반으로 갈수록 잘 다져진다는 느낌. 이 느낌 역시 극중 내용과 정확히 맞아 떨어져 이것 역시도 애초 설계했던 연출이 아닌가 되짚어 보게 되더라. 이런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주연배우로서 류승룡이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고, 그 외에도 이하늬나 이동휘가 역할을 잘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역시 수훈갑은 진선규겠지. 마씨 성을 가진 수퍼솔져가 조선족 범죄자들 쥐어패는 어떤 영화에서와는 전혀 반대의 모습인데, 보는내내 그 전작들이 연상되는 경우가 없더라. 진짜 깨끗한 이미지 변신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 

으레 이런 코미디 영화들에서는 악역만큼은 진지하게 가려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신하균과 오정세 콤비가 그걸 완전 반대로 가면서 더 좋아진 인상. 특히 신하균은 새침하게 구는 거 귀여웠음.

보는내내 즐거운 마음으로 보았고, 나오면서도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등의 대사를 떠올리는 정도였는데 그럼 말 다 한 거 아니냐. 이쪽 장르 영화에서 이 정도면 아주 푸짐하고 실속있게 잘 차려준 치킨 세트와 다를 바 없다. 아- 치킨 먹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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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01/30 00:09 # 답글

    광고커리어만 승승장구하고 영화는 잘 안풀려갔던 배우 류승룡이 이대로 배우생활 괜찮을까, 광고계속 전념할까, 고민하다가 끝내 영화배우를 택하고 결국 성공하는 메타영화로 봤습니다(?) 왠지 [더 레슬러]가 떠오르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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