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6 12:35

드래곤 길들이기 3 극장전 (신작)


시리즈 영화의 가장 바람직한 길은 1편보다 2편이 낫고, 그 2편보다 3편이 나은 경우일 거다. 넘버링이 계속 될수록 퀄리티가 상승하는 거지. 상승까진 못하더라도 유지 정도만 한다면야 그것도 괜찮을 거고. 근데 막말로, 이전 작들이 구렸는데 마지막 한 방을 훌륭하게 때려서 시리즈 전체의 퀄리티가 상승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시리즈들도 있다. MCU의 <토르> 시리즈라던가, 아니면 <로건>으로 훌륭하게 끝을 맺은 휴 잭맨의 3부작이라던가. 그야말로 사두용미의 모범적인 예. 그럼 반대로, 시리즈 영화가 걸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길은 무엇일까.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시리즈가 지속 될수록 퀄리티가 계속 하강하는 경우겠지. 불행하게도 이번엔 이 시리즈가 그 불명예를 받게 되었다.


스포일러 길들이기!


2010년에 나왔던 <드래곤 길들이기>를 좋아한다. <슈렉2>와 <쿵푸팬더> 이후 드림웍스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 영화엔 놀랍도록 안정적인 3D 효과가 있었고, 하늘을 나는 활강의 재미를 각인시켜주는 연출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캐릭터와 액션이 있었다. 거기에 기존 상업 애니메이션에선 쉽게 볼 수 없었던 아주 용감한 선택까지.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는 의외로 희생과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들이며, 메이저 상업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주인공이 장애인으로 설정 된다. 드래곤측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투슬리스는 꼬리 날개 한 쪽이 없어 그 혼자서는 자유롭게 날지 못한다. 재밌는 건 그 꼬리 날개 한 쪽을 잃게 만든 것이 영화의 악당이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인 히컵이란 점이다. 다만 인간측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히컵 역시 영화 말미엔 자기 희생을 하고 다리 한 쪽을 잃게 된다. 이게 이 영화의 재밌는 점이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하는 선택과 그 희생.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완전하게 보완하는 관계. 투슬리스는 히컵이 없으면 날 수 없고, 히컵 역시도 투슬리스 없이는 의족을 통해 걸어야 한다. 1편이 좋았던 건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근데 2편에서 규모 욕심에 기본적인 재미를 날리더니, 3편에서는 더한다. 심지어 2편 같은 거대 스케일의 전투도 없다. 일단 메인 악역이 너무 허접하다. 드래곤 사냥꾼으로 그리멜이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기괴하긴 하지만 별다른 카리스마가 없음. 게다가 악역으로서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소양인 목적 의식이 너무 없다. 등장하자마자 이 세상의 모든 나이트 퓨어리를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는데,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르지 않나. 어릴 때 나이트 퓨어리에 의해 어떤 트라우마가 생기거나 했던 것도 아닌 것 같다. 자기 말에 따르면 처음 만났던 나이트 퓨어리를 그냥 죽였다나 어쨌다나. 그걸 자랑처럼 하고 앉아있는데 자랑할 수는 있지만 그걸 보며 딱히 공감할 구석이 없으니 그게 문제란 거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이트 퓨어리와 라이트 퓨어리의 짝짓기인데, 진심 더럽게 재미없음. 게다가 갑툭튀한 히든 월드는 또 뭐야. 시리즈 영화에서 제일 싫어하는 전개가 마이클 베이의 로봇 병정 놀이 마냥 기존에 없던 설정 막 덧대 나가는 건데 그걸 하고 앉아있더라. 아니, 그리고 이건 자막 문제이긴 한데. 히든 월드는 그냥 숨겨진 세상 정도로 번역해주면 안 되냐. 그 뜻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누구나 다 알 정도의 영단어라면 그냥 한국어로 해도 되잖아, 썅.

그래도 결말은 좋지 않았냐고 많이들 하던데, 난 솔직히 그것도 별로.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시리즈를 오래도록 이끌어왔던 주인공이 죽거나 상대와 이별하며 끝나는 엔딩들이 좋았다. 희소했거든. 대표적인 게 <토이 스토리 3> 같은 거. 근데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그 사이에 그런 영화들이 너무 많이 나왔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의 포스터에서 '영원히 기억될 그들의 마지막 모험이 시작된다!'라는 멘트를 볼 적부터 이미 느끼게 되었지. 라이트 퓨어리 때문에 얘네 둘이 헤어지겠구나. 히컵이 투슬리스를 보내는 엔딩이겠구나. 그러다보니 막상 엔딩의 그 장면 나올 때는 그냥 무덤덤 하더라.

갑자기 그거 생각나네. 나 어릴 적에 거북이 한 마리를 키웠었는데, 불교신자이신 고모가 오셔서 보시더니 이런 건 인간이 키우는 게 아니라 자연에 방생하는 거라고 하셨었지. 사실 난 그러기 싫었는데 고모 말 때문에 그 거북이 데리고 시 외곽 저수지 가서 가족들이랑 같이 보내줬던 기억이 난다. 저수지의 어둔 물 깊은 곳으로 천천히 사라지던 그 거북이의 엉덩이를 아직도 기억한다. 아, 잘 지내고 있니. 거북이는 장수한다던데 지금도 살아있니. 아니면 자연 생태계의 냉혹함에 이미 희생된 거니.

영화에 대한 감상을 썼어야 했는데 다 쓰고 보니 대부분이 1편 찬양 + 과거 기억 회상 뿐이네. 그만큼 시리즈의 마지막으로써 이 영화가 구렸다는 증거가 되겠다. 어차피 방생하고 헤어졌는데 막판에 수염 기르고 에필로그는 왜 넣은 건지. 하여간 참 구질구질하다, 구질구질해.

덧글

  • ㅁㅁㅁㅁ 2019/02/06 23:26 # 삭제 답글

    TV 시리즈에서는 드래곤들을 좁디좁은 버크 부락에
    다 쑤셔박자는 미친 짓 안하고 각자의 서식지에서
    잘 지내도록 보호하고 적당히 거리두고 했는데
    정작 영화에서는 삽질 삽질 삽질...


    어떻게 TV시리즈만도 못하게 내려앉을 수
    있는 건지... 껄끄러운 악당 처리하는 비기,
    "의족 파지"만 일관성있더군요.
  • CINEKOON 2019/02/18 14:36 #

    버크 부락에 따 쑤셔박자는 미친 짓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미친짓 맞죠
  • IOTA옹 2019/02/26 11:25 # 답글

    저는 그저 이제 극장에서 영화볼수 있을만큼 큰 첫째 아들과 보고온 첫 영화란것에 의의를...
  • CINEKOON 2019/02/26 12:38 #

    아, 아들과 극장에서 보는 첫 영화란 어떤 것일까 궁금해지네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