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편을 정말로 좋아한다. 크리스 밀러 & 필 로드 콤비의 반쯤 정신 나간 유머와 여러모로 탁월한 연출 센스, 그리고 레고만으로 이룩해낸 특A급 비주얼이 함께 했던 작품이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엔 에밋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캐릭터들 중 하나인 에밋. 지독히도 평범해서 세상을 구하게 되는 에밋. 여기에 풀 애니메이션인 줄 알았던 영화가 막판에 실사 영화로 넘어가며 뒷통수쳤던 감동까지. 레고 무비는 정말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그에 비해 일단 2편은 불리한 위치에 있다. 사실 전편이 유머도 좋고 비주얼도 훌륭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마음에 남을 수 있었던 건 그 반전 때문이었거든. 알고 보니 이 모든 게 보수적인 아버지의 레고 디오라마에서 창의적인 아들이 벌였던 모험이었다는 것. 근데 1편을 본 사람들은 이미 이 반전에 대해서 알 거 아냐. 그렇다고 2편이 그걸 싹 다 무시하고 갈 수도 없는 거고.
때문에 2편은 처음부터 그 사실을 숨기려고 애쓰지 않는다. 애초에 이번 영화의 대립구도는 오빠vs여동생인 거 전편이 다 까발린 상태라 뭐 굳이 숨길 게 있나. 어쨌거나 전편만한 반전의 묘미는 없지만 그만큼 솔직하게 재밌는 걸로 밀어붙이는 영화다.
상술했듯 이전 작품이 설명서 신봉자 아버지 vs 창조적 관점의 아들 구도였다면, 이번엔 오빠 vs 여동생의 구도로 간다. 재밌는 게, 레고든 아니면 다른 장난감이든 정말로 남아와 여아가 노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 않나. 이 영화는 그걸 썩 잘 캐치해냈다. 극 중 오빠가 만든 세계라 할 수 있을 아포칼립스버그는 그 자체로 '매드맥스'의 한 극단이지만, 반면 여동생이 만든 시스타 은하계는 모든 게 비비드한 원색 위주의 컬러풀한 파라다이스다. 그 둘의 차이에서 오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해야하나.
더 재밌는 건 오빠와 여동생의 관계를 결국 오빠가 파탄낸다는 것이다. 이건 젠더를 떠나서 좀 더 나이를 일찍 먹은 손위 사람이라 그렇다고 생각되는데, 이 오빠의 오너캐라고 할 수 있을 에밋이 그러한 변화를 잘 대변하고 있다. 전편에선 모든 것을 짓고 만들 수 있는 '마스터 빌더'로서 각성했던 인물이, 이번 속편에선 모든 걸 파괴하고 부수는 '마스터 크러셔'로 변모한다. 그것도 미래에서 온 자신 스스로를 따라. 정말로 멋진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을 수록 가족에게, 특히 형제 자매에게 애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어려워진다. 심지어는 관계가 파탄날 정도로 심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영화의 이 설정이 그러한 부분들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았다.
그리고 말미에 에밋이 하는 선택으로 인해 미래의 터프했던 자신이 사라지고, 온전히 현재 있는 그대로의 에밋만이 남게 된다는 것도 좋다. 애초 메타 유머로 쏠쏠하게 먹고 산 시리즈이니 <백 투 더 퓨처>의 드로리안과 <닥터 후>의 타디스 부숴먹고 시간여행장치 마개조하는 그런 게 용인되는 수준을 넘어 사랑스럽더라.
근데 시밬ㅋㅋㅋㅋㅋ 아무리 전편의 주제가가 좋았다지만 그럼에도 수록곡 등 음악에 대한 기대는 1도 안 했었는데 이거 퀄리티가 왜 이렇게 다 좋냐.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세 곡을 포함해 모든 곳이 버릴 것 하나가 없다. 죄다 좋음. 특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패러디하는 뮤지컬 장면에서의 노래와 그 연출 센스는 정말이지 최고.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이 멋지다고 웅변하던 영화가, 어느새 비록 모든 것이 멋질 순 없지만 우리 함께라면 조금이라도 더 멋져질 수 있다고 나긋하게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극 중 오빠처럼, 영화도 그만큼 성장한 것만 같았다. 엉엉 울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눈물이 났다.
뱀발 - 여동생 역할이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브루클린 프린스라는 게 충공깽.
덧글
타누키 2019/02/12 17:54 # 답글
CINEKOON 2019/02/18 14: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