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래도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들 중에선 가장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가 싶은데. 근데 사실 뭐 코미디라고 해서 엄청 웃긴 건 아니고, 그냥 이전 영화들에 비하면 그 톤이 코미디에 가깝다는 상대적인 이유. 그래도 여기 여왕이 하는 짓은 좀 웃기더라.
결국은 또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여왕 뒤에 숨어서 사실상 국정을 좌지우지 했던 여자가, 갑툭튀로 궁 안에 들어온 자신의 친척에 의해 파멸하는 이야기. 근데 참 웃기지. 궁에 들어온 신참 아비게일의 출세욕과 권력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뿐인데 이 사단이 난 거라니. 역시 사람에게 첫 인상은 참 중요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게 또 다가 아니란 거다.
전쟁과 국내 정치 등을 다루는 영화이긴 하지만 결국엔 한 여성을 둔 두 여성의 싸움인지라 전반적으로 멜로 드라마적 감성이 짙게 깔려 있다. 그 위에 블랙 코미디가 또 한 사발이고. 그러다보니 그 싸움 중간에 서서 심판 아닌 심판을 보는 앤 여왕의 캐릭터가 중요한데, 올리비아 콜먼이 연기를 너무 잘해놔서 이게 심히 볼만 함.
기계적이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결국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해주는 것이다. 사라가 해주지 못했던 것을, 아비게일은 독사 같이 해준다. 하긴, 아비게일이 그걸 알아채고 토끼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앤 여왕의 취향에 맞장구 쳐줬을 뿐. 사라가 토끼에 관심도 주지 않았던 걸 아비게일이 어떻게 알았겠냐고.
감독으로서 란티모스가 훌룡한 점은, 관객이 감정 이입할 대상을 옮겨가는데 그게 참 자연스럽다는 거다. 영화 초반 관객 입장에선 엠마 스톤의 아비게일을 응원하게 된다. 궁 안에 들어서자마자 부엌 일을 하는 하녀들에게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 인물인데 어떻게 응원 안 할 수가 있겠나. 때문에 아비게일이 똘똘하게 굴어 앤 여왕의 총애를 얻을 때마다 조금 과하다 싶을지언정 그럼에도 응원하게 된다. 근데 재밌는 게, 아비게일이 사라에게 독을 먹이면서부터 이 균형추가 조금씩 사라에게 옮겨 간다. 응원하기엔 아비게일이 너무 독사 같았던 게지.
그렇게 또 편을 바꿔 사라를 응원하고 있는데... 영화 막판엔 또 그마저도 앤 여왕에게로 옮겨감. 아, 진정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선 독사 같은 사람과 한 방을 쓰게 된 처지라니. 애석하고도 또 애석하다.




덧글
로그온티어 2019/02/23 20:20 # 답글
너무 들이대지 않고 인간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면, '이 사람이 왜 이러는 건가'라는 생각과 의심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의심이 생기는 순간 관계는 틀어집니다. 그래서 처음엔 '그저 도움을 바랄 뿐이다'란 개연성을 두는 거죠. 허나 얼굴을 자주 들이밀다보면 마음이 안 생길 수가 없게 됩니다. 그걸 이용하는 것이기도 하죠. 그리고 1~2번은 싸우고, 더 멀어지기 전에 담날 꼭 만나야 합니다. 상대가 트라우마로 인해 의심이 많다면 이 작업이 한 1년은 걸립니다.
...뭐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 덧글을 Technically, missing을 들으며 읽지 마세요.
CINEKOON 2019/02/26 1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