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3 14:14

사바하 극장전 (신작)


개봉일날 봤었다. 그리고 한탄을 했지. 나름 기대작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나왔구나- 하고. 개연성도 없어뵈고, 무엇보다 주인공이라는 작자가 정작 하는 일은 1도 없는 데다가 쓸데없어 보이는 게 너무 많았다. 때문에 결코 첫인상은 좋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자꾸 머릿속에 남아 있더라. 거의 열흘동안 내 머릿속에 뱀 마냥 똬리를 틀고 앉아있던 영화. 한 번 더 보는 게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평가를 내리는데에 도움이 되겠다만, 일단은 그럴 짬이 별로 없어서. 


열려라, 스포천국!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이정재의 박목사를 철저히 관찰자 입장으로 남겨두려 했다 언급 했던데, 그걸 인지하고 봐도 주인공치고 하는 게 너무 없다. 물론 제대로 하는 거 하나 있기는 함. 설명과 중계. 근데 그거 둘 다 제대로 하려면 영화의 모든 결정적 순간들을 이 주인공이 목격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거든.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하는 건 더럽게 없으면서 여기저기 잘도 쏘다니는 주인공을 갖고 있는 영화다. 막말로 후반부 사슴동산 본부 두 번이나 몰래 들어간 건...... 나름 CCTV도 있는 곳이던데 그냥 담 넘어 건너온 건지 뭔지 아무 묘사가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한 두 개 정도 쇼트 배분해서 설명해줄 수 있었잖아. 정작 설명 필요한 곳에서는 과감히 생략해버리는 그 패기.

하지만 가장 아쉬운 건 그 딴 게 아니다. 일단 먼저 언급할 것은 분위기. 초반부 사슴동산 분점에서 박목사가 탱화를 발견하고 놀라는 지점에서 나도 모르게 흥분 했었다. 이런 장르의 영화가 한국에서 많이 나온 것도 아니거니와, 이렇게 한국적이고 불교적인 '탱화'란 요소를 마음껏 쓰며 분위기를 만들다니-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져서. 근데 딱 거기까지더라. 포스터에서부터 압도적인 포스를 풍기던 탱화를 비롯한 각종 소품의 분위기들은 딱 거기까지였다. 초반부에 분위기 겁나 살벌하게 만들고 뒤에가선 그 분위기가 또 다 사라짐. 심지어 초반부도 좋기만 한 게 아니다. 다 떠나서 대체 왜 코미디 톤을 만들어 넣었는지 모르겠네. 적당히 유머 섞인 대사나 슬랩스틱은 한 두 번 정도 용인해줄 수 있다. 극의 분위기 전환과 관객 소통에 유의미한 요소니까. 근데 이 영화는 아예 초반부 음악을 코미디로 깔고, 배우들도 코미디 연기를 하고 앉아있다. 아, 난 이 영화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지. 게다가 구선생님이라니...

그 다음 아쉬운 건 캐스팅이다. 전략적으로 너무 못했다. 그렇다고 이정재나 박정민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역시 정진영과 유지태의 활용도가 그런 거겠지. 정진영이라는 이름있는 배우를 캐스팅해서 기대치를 올려놓곤, 결국 없느니만 못한 쩌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도 이건 그렇다쳐. 하지만 유지태는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어떻게 보면 반전이 도사리고 있는 인물인데, 이런 비밀스런 캐릭터의 캐스팅이 유지태면 애초에 관객 뒷통수 칠 생각이 없다는 거잖나. 물론 이것도 인터뷰에서 감독이 반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지만... 세상 모든 관객들이 모두 그 인터뷰를 보고 영화관을 찾는 건 아니잖아.

하여튼 이런 것들 외에도 아쉬운 점이 좀 많아서 꽤나 실망스러운 영화로 남을 뻔했지만... 상술했듯 계속 이 영화가 머리에 남는 건 드디어 이 오컬트라는 장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감독이 한국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 사실 오컬트 보다도 미스테리 추적 장르에 더 가까운 영화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교적 요소와 기독교적 요소, 여기에 민간신양적 요소를 적절히 짬뽕한 뒤 판타지를 발라버리는 솜씨가 꽤 대단하다. 애당초 한 번에 이해되는 영화가 아닌 것이다. 여러 번 보면 볼수록 조금씩 평가와 느낌이 달라질 만한 영화. 그래서 일단 첫 평가는 이 정도로만 해두어야할 것 같다. 나중에 언젠가 다시 보게 된다면, 그 때 재평가가 다시 이루어질지도.

핑백

  • DID U MISS ME ? : 2019년 대문짝 2019-03-03 14:15:03 #

    ... 2019의 주요 타겟 주먹왕2 / 부활의 샤말란 / 총몽 / 레고영화2 / 사바하 / 마블대장 / 스파크맨 / 뉴 뮤턴트 / 지옥소년R /엔드 게임 / 존윅3 / 괴수의 왕 / 봉&송 / 피카츄 / 완구썰4 / 다크 피닉스 / MI ... more

  • DID U MISS ME ? : 돈 2019-03-25 22:50:26 #

    ... >에서의 류준열은 분명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엔 없다. 그냥 조용히 묻어간다는 느낌. 유지태의 활용법은 <꾼>이나 <사바하>에 비하면 좀 나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올드보이>의 캐릭터 복사본 같이 느껴진다. 이 정도면 주인공한테 뒷통수 맞고 패배하는 지능형 ... more

  • DID U MISS ME ? : 사자 2019-08-06 00:51:03 #

    ... 아니었다. 아니, 처음엔 작았을지 몰라도 점차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리고 그 눈덩이가 2019년이 되어 우리에게 당도하였으니. 얼마 전 이미 공개된 <사바하>와 이번에 개봉한 <사자>, 그리고 곧 찾아올 <변신>까지. 오컬트 장르 영화의 황무지였던 한국 영화계에 이런 바람이 불 수 있었 ... more

  • DID U MISS ME ? : 봉오동 전투 2019-08-13 00:37:05 #

    ... 야겠다. 홍범도 장군으로 카메오 출연한 최민식. 그가 스크린에 등장하자마자 생각했다. 아... 이런 것이 스타 배우의 위엄이구나. 얼마 전 극장에서 <사바하>를 보곤 그 영화 속 특정 캐릭터의 특정 캐스팅에 대해서 놀린 적이 있다. 반전의 핵심이 되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캐스팅만큼은 평범하게 갔어야 했다고. ... more

  • DID U MISS ME ? : 2019년 영화 결산 2019-12-30 14:25:50 #

    ... / 뺑반 / 레고무비 2 / 알리타 - 배틀 엔젤 / 높이 나는 새 / 증인 / 메리 포핀스 리턴즈 /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 가버나움 / 콜드 체이싱 / 사바하 / 빠삐용 / 항거 - 유관순 이야기 / 자전차왕 엄복동 / 캡틴 마블 / 어쩌다 로맨스 / 라스트 미션 / 트리플 프런티어 / 악질경찰 / 돈 / 우상 / ... more

  • DID U MISS ME ? : 블러드샷 2020-05-25 23:56:29 #

    ... 짝이 없어 어이가 털림. 생김새에 비해 존나 순진한 주인공을 등쳐먹는 반전형 엘리트 캐릭터가 하나 나오는데 그게 캐스팅이 또 가이 피어스야. 시발 이건 뭐 <사바하>의 유지태 캐스팅이랑 마찬가지인 경우잖아. 존나 뻔한 반전이긴 했어도 최소한 의심할 구석은 최소화해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근데 가이 피어스는 누가 봐 ... more

덧글

  • 우물쭈물하지않으리 2019/03/03 17:15 # 답글

    정진영 왜나온거지? 엔딩 크레딧 올라가며 든 생각이에여 ㅋㅋㅋ 전 정진영이 다 알고 방해하는 경찰을 위장한 신도 롤 인줄 알았어요 ㅋㅋㅋㅋㅋ 그나저나...제가 요즘 가장 잼나게 보는 영화후기 블로그 입니다!!! 번성하십쇼
  • CINEKOON 2019/03/04 18:20 #

    알고보니 신도인 경찰 캐릭터라... 뻔하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어쩜 더 논리적이고 분량이 살아나는데요? 정말 그렇게라도 했으면 어땠을지... 아니면 감독이 박목사를 중심으로한 속편 계획을 가지고 있다 했으니, 이후 종교 연구소의 박목사와 더불어 상부상조하며 수사 진행을 하는 경찰쪽 인물로 그려질지도요. 마치 고든 국장처럼...? 그나저나 재밌게 봐주신다니 감지덕지하네요.
  • 로그온티어 2019/03/03 19:10 # 답글

    하하 그럴 짬이 없다뇨. 충분하지만 그럴 가치를 못느꼈을 뿐이겠죠. 이미 업계종사자까지 하고 계신 애영가이신데!
  • CINEKOON 2019/03/04 18:19 #

    업계종사자라는 표현은 제게 좀 과분한 것 같구요... 그냥 영화에 한 다리 걸치고 있는 사람...쯤?
  • . 2019/03/04 18:12 # 삭제 답글

    극중 유지태 대사에서 나옵니다
    갈땐 담넘어가지 마시라고 정문 열어드리겠다고 정문으로 나가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 CINEKOON 2019/03/04 18:18 #

    그거야 저도 들었고, 굳이 그가 그런 대사를 하지 않았다해도 당연히 담 넘어갔겠다고 생각하지만... 영화는 시각적 매체인만큼 한 번쯤은 직접 보여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어요.
  • ㅇㅇ 2019/03/05 00:27 # 삭제 답글

    기독교적 오컬트 얘기 영화 같은데 후기를 슬쩍 보면 사바하란 제목도 그렇고 탱화도 그렇고 양두구육 같아서 맘에 들지 않던 영화입니다 뭐 그렇게 따지면 곡성도 마찬가지겠지만요
  • CINEKOON 2019/03/06 12:49 #

    본격 오컬트를 기대한 분들은 정말 양두구육이라 느낄 수도 있겠네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