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4 23:15

자전차왕 엄복동 극장전 (신작)


여러 밝힌 같지만, 누가봐도 완성도가 처참할 것만 같은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는 악취미가 있다. 뭐랄까... 놀리면서 보는 재미? '에이, 영화 나도 만들겠다!' 연발하며 보는 즐거움? 그리고 보통 이런 류의 영화들은 상영관 내에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혼자서 비웃으며 보기에 적합하거든. 이렇게 써놓고 보니 진짜 악취미네. 하여튼 나의 악취미 레이더에 걸려든 새로운 타게트가 바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되시겠다. 


영화 외적으로 넷상에선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 사실이지만, 일단은 엄복동 자전거 도둑 논란은 빼고 이야기하련다. 그런 논란 자체를 부정하는 아니지만, 이건 어쨌거나 영화이니까. 그리고 그런 논란을 제외하고도 워낙 많으니깐.


민족적 스포츠 스타였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독립운동가들과는 일절 관련이 없었던 엄복동을 일종의 독립 투사처럼 묘사했다는 역사 왜곡 논란도 있는데, 사실 이건 중요한 부분이다. 역사 왜곡 자체의 논란도 논란이지만 사실 영화는 그런 묘사를 빼고 했어야 영화적으로도 재밌을 있는 영화였거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삼아 만든 스포츠 영화이기만 했다면 훨씬 재밌을 있었다고 생각한다. <YMCA 야구단> 그랬던 것처럼. 시대적 배경이 주는 기본적 힘이 있고, 거기에다 한일전을 다루기만 한다면야 사실 애국심 억지로 짜내 강요하지 않아도 애국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그냥 엄복동의 스포츠 스타적인 면모만 부각시켰어도 영화가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영화는 끝내 엄복동을 독립투사로서 신화화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크게 줄기로 진행되는데, 첫째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엄복동이 자전차 선수로서 상장하는 것이고 둘째는 독립투사들의 항일 운동기다. 근데 앞서 말했듯 개가 붙는다. 하나만 해도 모자랄 판국에 전혀 다른 이야기 개를 억지로 붙이려하니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마냥 덜컹 거린다. 


생각보다 초반 빌드업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드러나는데, 물론 영화의 초반부가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망작이라 치부될 정도로 최악은 아니란 거다. 뻔하고 전형적인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스포츠 영화로써의 길만 묵묵히 걸어갔다면 나름대로 평타는 있었을텐데.


실존 인물이 어쨌든 간에 영화 주인공인 엄복동은 그야말로 단순한 인물이다. 그냥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헤헤- 거리며 순수함을 노골적으로 어필하는데, 정작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꼴리는대로만 진행. 자전차 사고 싶으면 자전차 사게 되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게 되고, 자전차 선수하고 싶으면 선수하게 되고... 참으로 편리한 인생이다.


주인공 엄복동 뿐만 아니라 주위 인물들도 모두 개판. 이범수의 캐릭터는 뜬금없는 타이밍에 뜬금없는 표정으로 뜬금없게 등장하는 뜬금없는 재주를 갖고 있다. 영화가 꼴에 하고픈 많아서 중간에 초창기 <분노의 질주> 마냥 불법 레이싱 경주 장면 같은 것도 있는데, 대체 이범수는 거기서 나온 ... 더불어 이시언이 연기한 캐릭터는 치의 오차도 없이 결국 개그 감초 캐릭터. 근데 번도 웃긴 개그. 강소라의 캐릭터는 <암살> 포스트 전지현이 되고 싶었던 건가- 정도에서 그치고, 뜬금없이 기관총 난사하는 고창석의 캐릭터는 안쓰럽다. 아니, 근데 진짜로 웃긴 겤ㅋㅋㅋㅋㅋㅋ 고창석은 강소라와 기습작전 모의해놓고 정작 본인은 스스로가 그토록 싫어했던 자전차 경주 보다가 작전에 지각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런 의도된 개그라면 개그다. 그건 그거고... 그나저나 엄복동 남동생은 나온 걸까. 심지어 남동생이 죽은 아무도 모름.


악역들도 개판인데, 얼마  <증인>에서의 좋은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박근형은 여기서 강한 인상을 까먹는 이상한 일본어 연기를. 여기에 끝판왕 자전차 선수로 등장한 정석원은... <쉰들러 리스트> 랄프 파인즈가 잠깐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저 캐릭터적인 유사성 때문이고, 그냥 혼자 너무 만화적이다. 그나마 영화에서 살아남은 김희원 정도. 악역을 너무 많이 해서 질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딴 없더라. 그냥 존재 자체가 멋짐.


영화에서 가장 웃긴 역시 결말부다. 사람 힘으로 자전차를 그리 높게 던지는 것도 실로 어이가 털리는 명장면인데, 이후 전개되는 양상은... 엄복동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민초들과 그들이 부르는 애국가 완창. 정도면 진짜 너무한 아니냐? 거기서 뜬금없이 애국가가 나와. 심지어 대단한 , 엄복동의 표정이다. 엄밀히 따지면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뛰어나온 아니냐? 그럼 그들이 일제의 총칼에 죽어나갈 다들 피하라고 소리를 지르던가, 아니면 최소한 미안한 표정 정도는 지어줘야 주인공이지. 여기 주인공이란 작자는 자기 지켜주려고 나온 사람들이 맞아 죽어나가도 그냥 지그시 바라보고만 있음. ......


이걸 <항거 - 유관순 이야기> 같은 연이어 재미있다. 영화는 감정을 강요하지 않으며 이성적으로 접근했었는데, 영화는 그런 전략 하나 없이 그냥 강요+강요+강요. 강요에 결국 눈물로써 굴복했다면 모르겠는데 별로 슬프지도 않았다는 ... 이거면 이거대로 대단한 영화라 할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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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19/03/05 04:32 # 답글

    극도의 신파는 개그와 통한다는 진리를 실증해보인 영화인 것입니까!
  • 타마 2019/03/05 09:00 # 답글

    아... 망했어요...
  • 뇌빠는사람 2019/03/05 16:25 # 답글

    아 이러니까 너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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