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잭 니콜슨의 'You can`t handle the truth!' 짤로 유명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냥 봐도 존나 명작. 더불어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의 찬란했던 시절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 여기에 그냥 봐도 겁나 날카로워보이는 인상의 케빈 베이컨과, 그냥 봐도 겁나 잘 구르게 생긴 인상의 키퍼 서덜랜드를 보는 맛도 추가요.
법정 드라마 또는 법정 스릴러에서 주인공을 맡고 있는 캐릭터들은 크게 보통 두 종류로 나눠지는 것 같다. 대놓고 성실한 타입과 적당히 속물인 타입. 근데 아무래도 후자가 더 재밌기 마련이거든. 때문에 속물 주인공을 설정해둔 경우엔 십중팔구 결말부에서 캐릭터의 변화가 생긴다. 남 등쳐먹고 살거나 적당히 타협해 살아가던 주인공이, 사건의 본질을 맞이하면서 끝내는 모든 걸 걸고 승부보는 전개로 바뀌거든. 이 영화도 그렇다.
주인공인 캐피 중위는 유능한 변호사지만 역시 적당히 속물이다. 좀 더 좋게 말하면 현실적인 타입이라고 할까. 언제나 자신만만해하지만, 그 이면엔 생전 훌륭한 인권 변호사로 유명했던 아버지의 그늘이 있었다. 물론 본인은 아버지 콤플렉스랑 자기를 엮지 좀 말라고 내내 말하지만... 하여튼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결국 캐피가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벗어나며 온다. 자신을 보조하던 친구에게 '너라면 어떡할 것 같냐'고 캐피가 물었을 때, 친구의 답은 간결하고도 명확했다. '나라면 안 해. 그리고 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그 분도 안 하셨을 거야. 하지만 넌 나도 아니고, 너희 아버지도 아니잖아.' 난 솔직히 '너희 아버지라면 하셨을 거야' 정도의 멘트를 생각했었는데, 그건 결국 상대방을 적당히 달랜 뒤 앞세우려는 일종의 회유책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는 결국 캐피를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완전히 끌어낸다. 아, 존나 좋은 친구고 존나 잘 쓴 각본이다. 누가 썼나 했더니 아론 소킨이네. 이 졸라어썸한 양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두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또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착실하게 수행하는 인물들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보통 이런 류의 영화에서 악역들은 싸이코 범죄자거나 돈 믿고 빽 믿은채 설치는 재벌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거든. 근데 이 영화는 그 악역마저도 신념이 올곧고 강단있다. 설사 모두가 공감하고 수긍할만한 신념은 아닐지라도. 최동훈 감독이 그런 말 한 적 있는 것 같은데. 안타고니스트도 그의 입장에서는 프로타고니스트일 뿐이라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잭 니콜슨이 연기한 제섭 대령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동기와 행동 양식을 갖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그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하여간 각본도 좋은데 연출도 졸라 잘함. 몇 주에 걸쳐 재판 준비를 하는 변호인단의 모습은 보통 몽타주로 샤샤샥- 그려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 역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창 밖에서 창 쪽으로 달리 인 하며 디졸브 시키는 몽타주는 대단히 영리했다. 연출 진짜 좋더라. 롭 라이너 이 양반은 요즘 또 뭐하고 있나.
각본도 좋고, 연출도 좋고. 하여간 다 좋은 영화인데 연기까지 좋아서 재수 없어.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의 젊은 시절은 그 자체로 빛나더라. 지금도 대단한 배우들이긴 하지만 그 땐 정말 어리더라고... 하지만 최종 승자는 결국 잭 니콜슨. 이른바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에 매혹되다가 막판엔 잭 니콜슨에게 탄복하는 영화 되시겠다. 생각해보니 이 분도 37년생이면 지금 여든이 훌쩍 넘어가는 나이인데. 그야말로 리빙 레전드. 같은 시대 끄트머리를 살아가고 있음에 가끔 감사해질 때가 있는 배우다.
종합적으로 어느 하나 모난 곳 크게 없는, 여러모로 정방형의 완성도를 지닌 영화. 법정물로써의 장르 순도가 아주 높은 편이라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를 두고 좋지 않다 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다.
리빙 레젼드의 사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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