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4 14:02

아버지의 계정으로, 2018 대여점 (구작)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하루종일 일을 하다가 시계바늘이 늦은 열한 시를 가리킬 무렵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비도 오겠다, 일도 끝 마쳤겠다. 여기에 귀갓길 버스 안에서 들었던 슬픈 노래 가락들이 계속 귓가에 왱왱 거려 결심했다. 오늘은 우는 날이라고. 울자- 하고. 볼 때마다 우는 <아이 엠 샘>을 한 번 더 볼까, 아니면 감동에 북받쳐서 울게끔 <트루먼 쇼>를 한 번 더 봐야하나. 그러다가 또 들어선 넷플릭스. 근데 <아버지의 계정으로>라는 특이한 제목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거다. 인도 영화네. 근데 시놉시스 읽어보니 느낌이 꽤 좋아. 아내의 죽음 이후 아들과 소원해진 아버지가 둘 사이를 개선하고자 SNS를 시작해 아들에게 채팅을 거는 내용. 근데 그냥 본인 계정으로 접속하면 아들이 받아주지 않을 것을 아니까, 예쁜 여성의 사진으로 신분을 위조해 채팅을 건다는 내용. 그래, 오늘은 이거다. 오늘은 기분좋은 눈물을 흘려보자! 하고 호기롭게 본 영화... 왜 이렇게 썰이 길어

앞서 결론부터 말하면, 울긴 울었는데 엉엉 운 정도는 아니고. 그것도 예상했던대로 후반부에 펑-하고 터지는 건 또 아니다. 타이밍이 좀 앞서 있다고 해야하나. 하긴, 이건 나만의 타이밍이니까. 

결국 가족 영화를 베이스로 한 소동극이다. 적당히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에 대처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왁자지껄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딱 그 정도의 맛이 있다. 애초 아버지와 아들 간의 세대 갈등을 다루는 만큼, 그와 유사한 다른 대비 효과를 많이 둔다. 뉴 델리와 올드 델리의 지역적 차이라든지, 음악을 하는 아들의 가장 젊은 음악이 오래된 구시가지와 유적지에서 만들어진다든지, 아니면 또 막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개선은 신식 열차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든지...

음악영화로써 꽤 기능하는 영화이기도 한데, 음악들이 생각보다 다 좋다. 음악들이 전체적으로 비슷하다-라는 느낌 역시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들을만하고 어깨를 들썩일만. 어느 장르 어느 장면에서라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싶어하는 인도 사람들의 취향이 음악영화로써 묘하게 변주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 막판엔 인도 영화 특유의 감성으로 마침표를 찍는 영화. 그래, 이 정도는 믹스를 좀 해줘야 인도 영화로써의 정체성이 또 드러나는 거겠지.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추천할만한 수준의 영화는 아니지만, 또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 그리고 넷플릭스 아니면 우리가 언제 또 인도 영화를 보겠나. 연간 최고 영화 제작 편수를 자랑하는 나라이고, 다른 제 3세계 국가들에 비하면 비교적 접하기도 쉬운 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인도 영화 잘 안 보고 선입견도 좀 있잖아. 넷플릭스로 그거 한 두번은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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