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만난 존나 괘씸한 영화. 여러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존재할 여지는 분명 있지만, 나한텐 그냥 자의식 과잉이 빚어낸 대참사로 밖에 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부터 좀 찾아 언급해보자면.
일단은 컷을 짜는 연출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촬영이 대단하다. 영화 초반 주인공의 차고 장면까지는 그 긴장감이 실로 뛰어났는데, 따지고보면 그게 다 순전히 연출과 촬영 때문이다. 시체가 덩그러니 놓여있긴 하지만 그 사실 외엔 딱히 긴장 터질만한 구석이 없는 초반부거든. 근데 음산한 연출과 촬영만으로 긴장감을 잘 만들어내더라.
그리고... 그리고... 없네.
장르를 미스테리 스릴러로 놓고 보자. 실제로 그렇게 알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많았을 테다. 당장 나도 그랬고. 어쨌거나 미스테리 스릴러로 이 영화를 놓고 보자고. 어떤 특정한 미스테리를 다루는 영화들이 재밌으려면, 그 미스테리가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관객 역시도 놀라거나 최소한 긴장해야한다. 그게 주인공에게 몰입되어 있다는 증거니까. 좋아, 그럼 그렇게 하려면 어떡해야하는데? 그 미스테리가 벗겨지는 순간마다 감춰져 있던 그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또는 어떤 '트릭' 또는 어떤 '과정'이 존재했는지를 관객에게 잘 전달 시켜줘야지. 근데 영화가 그걸 안 해, 젠장.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전쟁 장르 영화인데, 전투 장면이 재밌으려면 보통 딱 두 가지만 잘하면 된다. 그 전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지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첫째다. 현재 전황은 어떻고, 전투에 임하는 특정 진영이 어떠한 방법으로 이기고 있는지 또는 지고 있는지를 잘 전달하는 것. 그리고 둘째, 그 전쟁터 한복판에 놓인 주인공의 심리를 잘 까보이는 것. 그게 용기이든 두려움이든 어쨌거나 주인공이니 우리가 그의 감정을 알고 또 공감해야할 것 아냐. 그 두 가지가 딱 중요한 거다.
근데 이 영화는 그걸 둘 다 안 한다. 전쟁 영화는 아니지만 미스테리물로써 어떤 진실이 어떤 과정을 통해 감춰져 있었는지와 그 진실에 대면하는 인물들의 감정이 잘 전달 안 돼. 뭔 상황인지 모르겠다. 그냥 이야기 전개 자체가 인지부조화의 경지다. 인물들의 웅얼거리는 대사와 다수의 연변 사투리로 한국 영화임에도 관객들이 대사를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들었다. 그럴 수 있다. 다만 난 그 이슈를 미리 알아서였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영화를 봐서 크게 못 들은 말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소머즈처럼 다 알아들은 건 아니고, 한 80%정도는 알아들은 것 같은데? (그럼 나머지 20%은...?)
아니 근데 이거 장담하는데 대사 100% 알아 들어도 뭔 상황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걸? 그냥 영화 전체가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같은 느낌이다. 앞 씬과 뒷 씬의 이야기가 잘 안 붙어. 인물들은 왜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가장 중요한 건 그거다. 따지고보면 별 것 없었던 이야기라는 것. 그냥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의 문법대로 갔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아니 너무 간단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불필요한 내용인데 별 시덥지 않게 부풀려놔서 이해불가한 영화로 만들어놨다. 큰 철학적 난제가 있는 영화도 아니고, 우리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그런 메시지가 있는 영화도 아닌데 그냥 전개만 난삽하게 만들어 이해가 안 되는 경지.
전도유망했던 정치인이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몰락의 이야기인가 싶다가도 또 그냥 부조리극 같고. 또 부조리극 같다 싶다가도 그냥 범죄 스릴러 같고. 또 범죄 스릴러 같다가도 막판엔 갑자기 <황해>나 <신세계> 같은 영화들에서 볼 법한 설정으로 밀고 나간다. 이거 대체 정체가 뭐야.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랑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으로 다른 느낌이다. <드라이브>도 겁나 단순한 이야기를 후까시 겁나 잡아가며 하거든. 근데 그 영화는 후까시만 잡지 젠체는 별로 안 해. 스스로의 플롯이 매우 단순하다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거든. 근데 이 영화는 후까시만 더럽게 잡지 정작 다 까놓고 보면 별 것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거기서 맥이 빠진다.
덧글
로그온티어 2019/03/27 00:49 # 답글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