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30 15:07

덤보 극장전 (신작)


<신데렐라>와 <미녀와 야수>, <정글북> 등을 위시로 자사 동명의 애니메이션들을 끊임없이 실사화 중인 디즈니의 새로운 실사화 신작. 돌이켜보면 재밌는 게, 이런 종류의 영화에 바로 떠오를 만한 감독들 보다는 좀 신선하게 느껴지는 감독들을 디즈니가 많이 기용하고 있다는 점. <미녀와 야수>의 빌 콘돈은 뭐 그럭저럭 안 붙는 느낌은 아닌데, <신데렐라>의 케네스 브레너나 곧 개봉할 <알라딘>의 가이 리치를 떠올려보면 좀 뜬금없긴 하잖아?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팀 버튼의 감독 기용은 좀 뻔한 감이 있다.

일단 디즈니와 함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실사화 했던 전적이 있으니. 개인적으론 그 영화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보기 전까진 최고의 기획이라 생각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상한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데 감독이 팀 버튼이라잖아. 뭔가 떠올려지는 그림들이 있었다. 정작 본 그 작품은 팀 버튼의 제살깎아먹기 같은 경향이 있었던 것 같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비해 <덤보> 실사화를 연출한 건 좀 뜬금없는 선택처럼 보였다. 하늘을 날으는 코끼리 이야기라니, 또 너무 디즈니스럽게만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예고편에서 덤보가 광대 분장한 모습이랑 마이클 키튼이 그 특유의 탐욕스러운 눈동자를 번뜩이는 모습 보고는 어쩌면 팀 버튼다운 영화가 나올 수도 있겠다고 바꿔 생각하기도 했음. 근데 정작 본 영화는...

존나 밍숭맹숭 맹탕 같은 영화다. 아니, 애초에 애니메이터로 일할 때 디즈니가 싫어서 뛰쳐나왔던 양반인데 이 양반 데려다가 또 대놓고 전형적인 디즈니 영화 연출 맡기면 어쩌자는 거냐. 그냥 그런 생각 밖에 안 들더라. 팀 버튼 특유의 톤 다 죽었네- 하는 생각. 그래도 전작인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엔 자기 테이스트가 좀 묻어 있긴 했는데 이 영화는 어째 그런 것도 하나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냥 전형적인 가족 영화들고 나온 셈이고, 캐릭터 조형술은 뻔하고 조악한 데다가, 중간마다 그저 전개하기 위해 발생하는 이상한 사건들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 덤보 그냥 불구덩이에 몰아넣고 위기감 조성하려고 갑자기 고장나는 가스 벨브에, 또 역시 덤보를 공중에서 떨어뜨려 위기감 조성하기 위해 만든 체육관 분필 가루는..... 아, 그냥 각본 너무 쉽게 쓴다 싶었다.

배우들은 그냥 한결 같이 해오던 것만 하고 그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여기서도 대니 드 비토는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에바 그린은 그냥 팀 버튼 영화에서 해오던 것들의 열화 버전. 콜린 파렐은 여전히 무기력해보이고. 하지만 역시 화룡점정은 마이클 키튼. 이제 이런 탐욕스러운 자본가 연기 덜 했으면... 그나마 마이클 키튼과 대니 드 비토가 첫 조우하는 장면은 감독의 전작 생각이 나서 재밌더라. 요즘 학교 다니는 영화 친구들이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어, 그 둘이 고담의 박쥐협과 펭귄이었다는 걸.

CG 캐릭터 덤보는 질감이 느껴지지만 양감은 느껴지지 않아 더 아쉽다. 다만 하늘 날아오르는 몇 장면들은 좀 재밌었음. 안 그래도 지구 최강 갓끼리인데 여기에 공중 폭격 기술까지 장착 시켜놓으니 볼만하더이다. 이 외 등장하는 서커스 단원들의 역할도 등장할 때부터 너무 뻔해서 재미없었다. 마지막에 단원들끼리 파티 맺어서 레이드 한 탕 뛰겠구나 싶었는데 진짜 그렇게 그대로 함.

팀 버튼과 디즈니를 조합 시켜놓고 시너지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만 일깨워준 영화. 그나마 디즈니에겐 본전이었지만, 결국 팀 버튼에겐 난전이었다고 본다. 디즈니는 그렇다쳐도 팀 버튼이 얻은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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