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7 13:15

어스 극장전 (신작)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영화 만들기의 어려움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기술적 + 제작적 측면에서도 그렇겠지만, 특히 각본과 연출적인 면에서 어려움은 두드러진다. 잘라 말해 이런 거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개연성 챙기고 논리적 헛점을 줄여가며 굴러 가야하고, 거기에 이야기를 굴리는 등장 인물들의 감정은 감정대로 관객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며, 이야기의 이면에 있는 주제와 메시지 역시 제대로 쿵짝 쿵짝 맞춰 돌아가야 한다. 주제와 메시지 내팽개치고 이야기만 착실하게 굴리는 영화들은 가볍다고 무시받기 일쑤이며, 이야기의 개연성과 논리성은 집어던지고 오로지 주제와 메시지로만 승부보는 영화들은 지나치게 어렵고 따분하다는 평을 듣기 십상이다. 그리고 영화 만들기의 어려움을, 조던 감독의 <어스> 보여준다.


솔직히 까고 말하자면, <어스> 존나 흥미로운 실패작이라고 생각한다. 경우는 이야기 굴리다가 주제와 메시지에 굴러가던 이야기가 함몰되어 망한 경우. <겟아웃>에서 보여주었던 상징주의 연출의 함량을 높인 것도 좋고, '도플갱어' 또는 '복제인간'이라는 다소 흔해빠진 소재로 다층적인 메시지를 전달해보려 시도했다는 점도 훌륭하게 친다. 하지만 애초 메시지와 주제라는 것은 이야기가 스스로 있고, 영화의 설정이 모든 관객을 납득시킬 있을 때에나 던져볼 있는 것이다. 근데 <어스> 부분에서 소홀했다. 아니, 소홀했다기 보다는 자만했던 같다.


<겟아웃> 그랬던 것처럼 '미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두고 상징들을 잡은 . 좋다 이거야. 정체성의 혼란이나 전복 같은 주제들도 좋다 이거야. 근데 시발 설정이 말이 되잖아. 일단 대체 과거의 어떤 집단이 복제인간 프로젝트를 시도했는지와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이 되어 있다. 그래, 이건 그럴 있다 치자. 근데 복제인간들이 원본 인간들과 영혼을 공유하고 있다는 설정은 대체 뭐냐. 아니, 막말로 내가 미국인 원본 인간인데 살다보니 한국으로 이민가게 되어서 거기 있던 한국 여자랑 결혼해 아이 낳으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럼 복제인간은 어떻게 한국 여자의 복제인간을 만나야하는 거냐고. 그리고 내가 낳은 아이와 복제인간 둘이 낳은 아이가 어떻게 똑같을 있냐고. 이게 시발 빌어먹을 판타지지, 대체 뭐란 말인가.


토끼 잡아먹는 알겠는데 토끼는 세기에 걸쳐 대체 어떤 방식으로 사육되고 있는 것인지, 복제인간들이 대학 MT 과복 맞추듯이 맞춰 입은 시뻘건 옷과 똑같이 생긴 가위는 어디서 구한 것인지 이딴 디테일들이 하나도 없다. 물론 장르 영화에서 굳이 설명 안해 좋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설정들은 아니지. 최소한 관객이 납득할 있도록 아주 최소한의 노력은 했어야 하는 아니냐고.


영화가 세운 설정의 빈약함에 대해서 깠는데, 연출은 사실 훌륭하다. 귀신이나 좀비가 아닌, 그저 보통의 인간 가족 명이 손을 잡고 있을 뿐인데 거기에서 느껴지는 괴랄한 공포감. 이어지는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의 침입과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추격전. 부분들의 연출이 되어 있고 후반부 무너져가는 개연성과 설득력에도 간신히 영화가 버티는 이유는 바로 때문이다. 연출을 잘하면 된다는 아주 간단명료한 해답. 


반전 자체는 장르 팬이 아니어도 손쉽게 짐작 가능한 부분인지라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넣은 설정 같지는 않고. 정체성의 전복 등의 주제를 위해 넣은 느낌. 그럼에도 반전 덕에 뒷맛이 오래 남는 영화가 있었다. 


조던 필이 호러 장르계의 차기 넘버 원이 있을진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그가 장르계에서 자신만의 텃밭을 일구게 것은 명확해 보인다. 텃밭이 넓든 좁든, 높아질 것만은 자명하고. 하여간 영화는 창의적인 개소리 같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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