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9 18:17

유랑지구 극장전 (신작)


애초 지구에 추진기를 갖다붙여 우주선 마냥 우주 여행 하겠다는 게 말이 되냐. 지구를 멸망 위기에 놓는 영화들은 많이 봤어도, 그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지구를 통째로 옮기자 주장했던 영화는 난생 처음이다. 거대 이주선 만들어서 노아의 방주 마냥 인간들 채워넣고 지구 떠나는 설정들이 대부분이잖아. 근데 지구를 아예 옮기자니. 

물론 말이 되는 설정은 아니다. 근데 듣기만 해도 굉장히 낭만적인 설정 아닌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거야 어차피 영화니까 당연한 거고. 유목 민족 겔 마냥 지구 자체로 우주를 유영하는 그 낭만적인 이미지. 더불어 아주 먼 미래의 세대들을 위해 바로 지금 현재를 견뎌내야하는 현 세대들의 이야기. 낭만적인 설정에, 낭만적인 이야기다.

말그대로 이미지 자체의 낭만성이 꽤 좋다. 지구의 하늘을 가득 채운 목성의 이미지라든가, 거대한 목성 옆을 차분히 지나가는 동그란 지구의 이미지라든가. 영화의 전체적인 프로덕션 디자인들이 뻔하고 전형적인 건 아쉽지만, 이런 이미지들 만큼은 참신하고 좋다.

거대 자본을 들여 만든 중국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가장 걱정하는 건 역시 중화사상일텐데, 영화는 최대한 그걸 배제한 인상이다. 그래서 더 무서움. 원래라면 위대한 중국과 그 나라의 위대한 중국인들이 전 세상을 구하는 위대한 이야기가 되어야 맞는 것일텐데, 이 영화는 최대한 다양한 국가와 최대한 다양한 인종들을 언급한다. 일본이나 한국이야 뭐 이웃 나라니 나올 수 있다 싶었는데, 미국도 나오고 러시아도 나오고 심지어 잠깐이지만 인도와 인도네시아도 나옴. 잠깐이지만 프랑스나 이스라엘도 언급되고. 물론 결과론적으론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뭉쳐 세상을 구하는 게 맞긴 한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건 중국 영화니까. 그 정도는 어느 정도 감안해줄 수 있는 정도다. 

근데 그게 왜 좋으면서도 무섭냐면, 이거야말로 전 세계 시장을 타겟팅 했다는 소리가 되는 거거든.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그저 중국 내수용 영화로 끝내겠다는 게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화를 팔아보겠다는 그 무시무시한 포부. 철지난 소리겠지만 확실히 할리우드 다음은 중국이다.

CG 기술력만 좋은 영화로 끝날 줄 알았는데 영화는 의외로 질적으로도 나쁘지 않다. 중간 중간 들어오는 감동 코드가 매끄럽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정도면 딱 재난 장르 영화에서 필요한 정도였다고 본다. 더불어 그렇게나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도 캐릭터 낭비가 별로 없고, 그 잠깐 잠깐 나오는 캐릭터들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삽입된 감동 코드 같은 것들도 많다. 이 정도면 괜찮다. 특히 어떤 캐릭터가 담배갑에서 부모의 짧막한 편지를 발견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진짜 신파로 빠질 거였다면 애초 그 부모를 영화 초반 소개 했던가, 아니면 갑자기 과거 회상으로 갔던가 했을 것이다. 근데 그딴 거 없고 그냥 거기서 딱 끝냄. 뭐, 사람에 따라 과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로선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중간중간 <설국열차>나 <인터스텔라>, <그래비티>가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나같아도 이런 영화 만들기 전에 레퍼런스로 삼을만한 영화들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때문에 별로 거슬리진 않았고. 다만 스탠리 큐브릭의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떠오르는 부분에선 좀 크게 웃음. 하여간 눈이 시뻘건 인공지능 놈들은 믿을게 못 된다.

무엇보다 우리 세대를 걸고 다음 세대를 지켜내는 게 희망이라 말하는 영화인 것 같아 좋았다. 좀 과시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부러웠다. 어쩌면 이 영화가, 중국 블록버스터의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뱀발 - 오랜만에 만난 오맹달, 반가웠습니다.

덧글

  • nenga 2019/04/20 14:42 # 답글

    이 영화는 아직 못봤지만, 오경이 최근에 상당히 거물이 된 느낌이 드는군요.
  • CINEKOON 2019/04/20 16:17 #

    잘생겼던걸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