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산하 대테러 특수부대 요원 출신인 남자가 가톨릭 사제 되어 나쁜놈들 다 때려잡는 이야기. 근데 때려잡을 나쁜놈들이 날고 기는 지역구 카르텔 년놈들이라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어느 정도의 팀 업 역시 이뤄진다.
첫 에피소드 볼 때까지만 해도 어떤 톤의 드라마인지 몰라서 조금 헤맸었는데, 전체적으로 그냥 병맛. 아니, 사실 본격적인 병맛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키치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때문에 설득력 없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장면들이 종종 있다. 제아무리 무능력한 강력반이라지만 신참 주제에 크롭티로 출근하고 선배들에게 랩으로 하는 자기소개라니.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신부라지만 엄연한 사제인데 민간인들 다 줘패고 다닌다는 설정이라든지. 하여간 말 안 되는 요소들이 많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이 톤 조절에 달려있다는 거다. 존나 현실적인 톤에서는 당연히 그게 안 먹히지. <비밀의 숲>에서 배두나가 핫팬츠 입고 범죄자들 죽빵 때려봐라. 안 와닿지. 근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게 말이 된다. 애초 톤이 너무 키치해서, 그냥 이것저것 다 용인되는 모양새.
내가 수퍼히어로 장르는 좋아하는 이유는 화려한 초능력 남발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대개 자경단이기 때문이다. 성격파탄자에 반 법치주의적 시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게, 가끔 법보다 주먹으로 때려주고 싶은 사람이나 상황이 있는 법이거든.
이 드라마를 재밌게 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자경단의 본질적인 카타르시스를 다루기 때문에. 종종 뻔하고 개연성 없는데다 유치해지지만, 그게 솔직한 것 같아 더 좋았다. 이게 이렇게 내 취향에 맞을지는 나도 몰랐고 나를 아는 다른 사람들도 몰랐을 것.
아닌게 아니라 실제로 수퍼히어로 장르 패러디가 좀 많다. 대표적인 건 역시 배트맨. 배트맨의 고담시가 그랬던 것처럼 이 드라마의 주 배경지도 가상의 지역구다. 심지어 이름이 '구담'구임. 주인공이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점, 무수한 뚝배기를 깬 주먹 실력자라는 점은 당연한 거고. 배트맨에게 배트케이브가 있다면, 이 드라마의 김해일 신부에겐 나름의 비밀 기지로 컨테이너 박스가 있다. 배트맨이나 김해일이나 둘 다 이륜차 좋아하는 것도 똑같고. 화룡점정은 사제복. 암만 생각해도 이거 그냥 배트맨의 검은 망토 오마주하려고 넣은 것 같단 말이지... 따지고보면 꼭 주인공이 사제였어야할 이유도 없었다. 왠지 그 검은 망토 하나 넣고 싶어서 사제로 설정한 것처럼 느껴지네. 물론 아니겠지만.
많진 않지만 가이 리치 스타일의 액션 연출이 좀 있고, 주성치 스타일의 코미디가 많다. 초반엔 전위적인 샷 디자인이나 커버리지 샷의 도움을 받지 않는 롱테이크 연출 같은 것들이 좀 많았는데 뒤로 갈수록 그런 게 좀 줄어들긴 하지만. 아마 코미디의 농도를 높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으로는, 설정을 군데군데 기워 붙여넣은 것 같다는 점. 쏭삭이 태국 왕실 경호대 에이스였다는 설정 같은 건 아무래도 뒤에 붙은 설정인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면 드라마 중반에 쏭삭 황철범 부하들한테 엄청 쳐맞잖아. 근데 거기선 그냥 맞고 있고. 나중엔 갑자기 각성해서 무에타이로 다 접어버리고. 이게 말이 안 된다. 아니면 복선 마냥 폭력을 꾹꾹 참고 있다- 정도의 내적 갈등을 좀 보여줬더라면 모를까. 하여간 이것뿐만 아니라 이런 게 좀 많음.
앞에서 배트맨 이야기를 좀 했는데, 그것 외에도 별 패러디와 오마주가 많은 드라마다. 높으신 분들의 어두운 일면을 다뤘다는 점에선 <내부자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고, 뺀질이 재벌 3세가 나오는 장면에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베테랑>이 떠오름. 심지어 '어이가 없네'라는 대사도 한 번 나오고. 이 외에도 막판엔 <마녀>나 <아저씨> 느낌도 있다. 제일 웃긴 건 메타 발언도 천지임. 김성균이 <극한직업> 드립치자 <기묘한 가족>으로 받는 김남길의 배우 개그라던지, 하필 김성균 나오는 드라마에서 <범죄와의 전쟁> 패러디라던지.
사실 영화 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졸업 이후에도 소소하게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지라 스텝이나 배우 직업군에 인연이 닿는 경우가 많은데. 이 드라마도 그 때문에 본 거였다. 인연이 있는 배우가 출연하게 되어서. 처음엔 좀 걱정했는데, 연기 너무 잘해줘서 내가 다 기쁘고 황송했다. 앞으로 탄탄대로이길 바란다.
하여간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이거 보느라 바빴다. 그래도 재밌는 드라마였으니 시간 아깝지 않고 그걸로 되었다. 시즌 피날레가 이렇게 아쉬운 드라마는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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