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3 17:45

지구가 끝장나는 날, 2013 대여점 (구작)


코네토 3부작의 피날레라고 할 수 있을 작품. 근데 시바 막판에 이렇게 조져놓으면 3부작 자체의 위엄이 너무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에드가 라이트의 테이스트가 진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귀가 안 맞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오프닝 과거 회상을 통해선 철없는 중년 남자들의 왕년 찾기 모험인가 싶은데 또 이게 갑자기 외계인 침공으로 빠지기도 하고, 막판엔 갑자기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가 되기도 하는 이상한 영화. 물론 그 부분들 하나하나를 면밀히 뜯어보면 모두 에드가 라이트의 취향들인 것은 맞다. 덜 떨어진 중년 남자들의 이야기라는 점도 그렇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심각하게 목숨 거는 일도 그러하며, 무엇보다 주인공 파티가 의뭉스러운 마을 사람들을 뚫고 미션 완수한다는 점에서 또 그러함.

근데 그것들이 다 잘 안 붙는다. 일단 주인공은 너무 에고가 강한 인물이며, 그러다보니 별 해괴한 짓을 다 하는데 그게 또 영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간다. 추구한 건 잭 스패로우인 것 같은데, 하는 짓만 잭 스패로우지 잭 스패로우 같은 매력은 또 없어서 보는내내 그냥 답답한 민폐 캐릭터로 전락. 

사소하고 자잘한 반전들이 있는데 그것들도 쉽게 예측 가능한 수준. 아니, 사실 반전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대놓고 만든 설정들이다. 현실적인 상황과 이야기에 비현실적인 설정을 들이미는 에드가 라이트의 스타일을 원래라면 좋아했을 텐데,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외계인 설정 그냥 죄다 빼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존나 지질하고 궁상맞은 술꾼들의 맥주 원정대 이야기로 가지, 그냥.

메시지도 불분명하다.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인가 싶다가도 또 그냥 무조건적인 획일화에 대한 반대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이 모든 게 다 부질없고 쓸데없는 거대한 농담인가 싶기도 하고.

결론은 에드가 라이트의 졸작. 아니, 어쩌면 에드가 라이트 필모그래피 중 제일 가는 컬트 영화. 그리고 난 그 컬트에 못 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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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05/03 19:12 # 답글

    네에..... 제가 그 컬트입니다(...) 허나 저는 그래도 스콧필그림vs월드는 항마력이 딸려서 못보는 컬트죠.

    저는 이 영화를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과 지나치게 선진을 추구하는 자의 충돌을 그린 블랙코미디로 봐요. 제가 꽤 재밌게 본 부분은, 과거를 훌훌 털어버렸거나, 과거에 얽매여 있는 아저씨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과거를 털고 어른스러워 보였던 아저씨들은 과거를 잊지 못하는 게리에 의해 과거로 가게 되고, 그들은 과거와 만나는 순간 극히 멍청해지거든요. 앤디 나이트는 평점심을 유지하다 끝내 원시적인(?) 힘을 각성하기도 하죠.

    극 중에서 게리는 그 극단에 서있습니다. 전혀 발전적으로 나아가질 못해요. 게리가 술집투어를 하려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집착의 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문제를 겪고 자신을 고립시키는 사람들중에 몇몇은 정신적 퇴행이라는 증상을 겪습니다. 게리킹의 과거 집착은 퇴행이라고 볼 수 있어요.) 거기서 인류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뜻을 건설중이던 외계인과 만나게 되는데, 문제는 게리와 외계인의 성향이 극단적으로 반대라는 겁니다. 발전(과 퇴행. 거기서 아치에너미 구도가 일어나요.

    사실 후반부가 매우 작위적입니다. 그건 저도 싫었어요. 허나, 그렇게 설정해서 과거에 집착하는 게리에 의해 아예 지구 자체가 중세시대로 돌아가버렸다는 전인류적 비극 코미디를 만들어 냅니다. 생각해보면 캐릭터 이름들도 다 중세시대 계급에서 따왔다는 점에서 이미 암시가 되어 있는 부분이었기도 했죠. 어떻게 보면 이름의 그것은,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련은 우리 안에 있고, 그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발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새긴 것과 같을 겁니다. 각자의 일상 속에서 멀쩡히 살아가던 아저씨들이 술집투어끝에 각자의 퇴행을 걸었던 것처럼요. [유년기의 끝]이 틀린 셈입니다.

    아아... 근데 이거... 완전히 광신도가 하나님은 있다고 부르짖는 글처럼 되어버렸군요. 팬심에 휘갈기다 보니;;
  • 로그온티어 2019/05/03 19:21 #

    근데... 저기... 배드타임즈 보셨나요? 그거 정말 재밌거든요! 꼭 보세요. 이렇게 본인이 신앙으로 느끼는 작품들에 대해 간증하고 추천하고 다니는 제 자신이 여호와의증인스럽지만 알게 뭡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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