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8 20:45

사랑의 블랙홀, 1993 대여점 (구작)


유행을 넘어 이젠 그냥 하나의 일상적인 장르들 하나로 자리 매김 해버린 타임 루프물. 계열에서 훌륭한 최근작으론 <소스 코드> <엣지 오브 투모로우> 있을 것이다. 근데 여기서 재밌는 하나. <소스 코드> <엣지 오브 투모로우> 모두 굉장히 훌륭한 SF 액션 영화이지만, 영화들에서 액션 보다 오히려 눈이 가는 바로 멜로 드라마적 요소라는 사실이다. <소스 코드> 그렇지만 특히 <엣지 오브 투모로우>. 언제나 영화가 알츠하이머 상황의 로맨스를 은유하는 액션 영화라고 생각 했거든. 하여튼 하고 싶은 말이 무어냐면, 타임 루프라는 애초 지극히 슬픈 멜로 드라마적 요소라는 것이다. 나는 상대를 향한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가는데, 정작 상대에게는 사이의 진도가 내내 제자리 걸음이라는 비극적인 사실!


우리가 그걸 뒤늦게 깨닫는 동안 이미 1990년도의 누군가는 타임 루프의 그러한 슬픈 속성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결국 나온 바로 영화 되시겠다. 타임 루프물 계의 고전이자 단순 로맨틱 코미디로만 따져도 더럽게 재밌는 영화. 그리고 머레이 특유의 무기력함과 평범성이 빛을 발해 찰떡처럼 통통 대는 수작. 진짜 오랜만에 다시 보는 거였는데 그래도 재밌더라.


그럼에도 좀 아쉬운 건, 타임 루프 걸린 이유 자체가 좀 올드 하다는 거다. 시니컬하고 차가운 성격 고쳐주려고 시작된 타임 루프라니. 이 영화 속 세계에 정말 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아마 지독히도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신일 거다. 그리고 또 쓸데없이 부지런하고. 세상에 염세적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 삶에 일일이 다 관여해 교훈주고 앉아있냐. 여러모로 대단하다, 대단해.

영화 속에선 겨우 몇 십 번에 걸쳐 이루어졌을 뿐이지만 아마 주인공은 최소 몇 백 번 아니, 최소 몇 천 번은 그 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형벌인 셈인데,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다. 그냥 그 하루에 평생 갇혀있어서 괴로운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진척되지 않아 더 괴로운 걸까? 상술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문제를 끌어오자면, 아무래도 그건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관계라는 게 지속되고 발전되어야 하는 건데, 이 영화 속 주인공이 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게 불가능한 거잖아.

남의 차 타고 막 나가다가 철창 신세도 져보고, 소소하게 은행 돈도 구멍내는 등 평소엔 하지 못하는 일탈들도 많이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해지는 남자의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리고 그 과정도 흥미로웠고. 사실 이게 말이 타임 루프지, 그냥 우리네 삶도 다 그런 거니까. 굳이 하루가 평생 반복되는 비일상적인 설정이 아니어도, 이미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당장 나만 해도 느지막히 일어나 집 밖으로 안 나선채 매일 침대 위를 누비며 똑같은 생활 하는데. 그래서 좋았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주인공처럼 살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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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05/19 00:36 # 답글

    지독히도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신이라.
    정답! ....모건 프리먼?
  • CINEKOON 2019/05/26 17:15 #

    하긴, 모건 프리먼은 교훈 주기 덕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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