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을 넘어 이젠 그냥 하나의 일상적인 장르들 중 하나로 자리 매김 해버린 타임 루프물. 이 계열에서 훌륭한 최근작으론 <소스 코드>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있을 것이다. 근데 여기서 재밌는 것 하나. <소스 코드>와 <엣지 오브 투모로우> 모두 굉장히 훌륭한 SF 액션 영화이지만, 그 영화들에서 액션 보다 오히려 눈이 가는 건 바로 멜로 드라마적 요소라는 사실이다. <소스 코드>도 그렇지만 특히 <엣지 오브 투모로우>. 난 언제나 이 영화가 알츠하이머 상황의 로맨스를 은유하는 액션 영화라고 생각 했거든. 하여튼 하고 싶은 말이 무어냐면, 타임 루프라는 게 애초 지극히 슬픈 멜로 드라마적 요소라는 것이다. 나는 상대를 향한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가는데, 정작 그 상대에게는 둘 사이의 진도가 내내 제자리 걸음이라는 그 비극적인 사실!
우리가 그걸 뒤늦게 깨닫는 동안 이미 1990년도의 누군가는 타임 루프의 그러한 슬픈 속성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결국 나온 게 바로 이 영화 되시겠다. 타임 루프물 계의 고전이자 단순 로맨틱 코미디로만 따져도 더럽게 재밌는 영화. 그리고 빌 머레이 특유의 무기력함과 평범성이 빛을 발해 찰떡처럼 통통 대는 수작. 진짜 오랜만에 다시 보는 거였는데 그래도 재밌더라.
그럼에도 좀 아쉬운 건, 타임 루프 걸린 이유 자체가 좀 올드 하다는 거다. 시니컬하고 차가운 성격 고쳐주려고 시작된 타임 루프라니. 이 영화 속 세계에 정말 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아마 지독히도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신일 거다. 그리고 또 쓸데없이 부지런하고. 세상에 염세적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 삶에 일일이 다 관여해 교훈주고 앉아있냐. 여러모로 대단하다, 대단해.
영화 속에선 겨우 몇 십 번에 걸쳐 이루어졌을 뿐이지만 아마 주인공은 최소 몇 백 번 아니, 최소 몇 천 번은 그 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형벌인 셈인데,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다. 그냥 그 하루에 평생 갇혀있어서 괴로운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진척되지 않아 더 괴로운 걸까? 상술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문제를 끌어오자면, 아무래도 그건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관계라는 게 지속되고 발전되어야 하는 건데, 이 영화 속 주인공이 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게 불가능한 거잖아.
남의 차 타고 막 나가다가 철창 신세도 져보고, 소소하게 은행 돈도 구멍내는 등 평소엔 하지 못하는 일탈들도 많이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해지는 남자의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리고 그 과정도 흥미로웠고. 사실 이게 말이 타임 루프지, 그냥 우리네 삶도 다 그런 거니까. 굳이 하루가 평생 반복되는 비일상적인 설정이 아니어도, 이미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당장 나만 해도 느지막히 일어나 집 밖으로 안 나선채 매일 침대 위를 누비며 똑같은 생활 하는데. 그래서 좋았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주인공처럼 살아보고 싶어졌다.
덧글
로그온티어 2019/05/19 00:36 # 답글
정답! ....모건 프리먼?
CINEKOON 2019/05/26 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