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놈들이 뭉쳐 더 나쁜놈을 잡는다는 이야기가 신선하게 안 느껴진지도 꽤 오래 전 일이다. 이 컨셉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던 그러나 망했던 <수어사이드 스쿼드>까지 굳이 가지 않아도 말이다. 이미 국내외적으로 '차악이 악을 잡는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까. 이 계열 한국 영화의 끝판왕으로는 나홍진의 <추격자>가 있고. 때문에 그 캐치프라이즈 자체에는 별다른 매력이 없는데, 그러다보니 떠오르는 건 다름아니라 김지운 감독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다. 캐릭터성이 확실한 세 남자의 물리고 물리는 대결이란 점에서. 영어 제목도 좀 비슷한 뉘앙스이던데?
마동석이 참 특이한 건, 딱히 미화하지 않았는데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미화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영화 속에서 행해왔던 폭력들은 잔인했지만, 상대가 좀비이거나 연쇄 살인마들이었기 때문에 그게 좀 묻힌 감이 있었다. <이웃사람>만 봐도, 마동석 조폭이니 분명 좋은 놈은 아닌데, 그저 그가 때리는 대상이 연쇄 살인마라 일종의 영웅처럼 보이는 거잖아. 그거에 비하면, 이번 <악인전>에서의 그는 크게 미화되지 않았다. 근데 정작 관객들이 미화를 해버린다는 거지. 내가 그랬다. 거대 조폭 조직의 두목이고 뺨 싸다구 몇 번 후리는 걸로 사람도 골로 보내는데, 그게 나빠 보이지가 않는 거지. 하긴, 어차피 마동석의 주된 매력은 갭 모에에서 오는 거니까... 그나저나 뺨 싸다구로 사람 죽일 수도 있구나- 라는 걸 깨달은 장면이기도 했다
김성규의 캐스팅은 좀 걱정이었다. <범죄도시>로 이미 굵직한 범죄자 연기를 보여준 이후이니. 일종의 스테레오 캐스팅인 거잖나.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잘 해냈다고 본다. <세븐>의 존 도우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 외에도 각종 미디어물에서 많이 접했던 연쇄 살인마의 이미지가 여기저기 섥혀있기는 한데, 영화가 설명적인 것도 아니고 배우가 못한 것도 아니라서 예상 외로 괜찮았다.
이러다보니 문제는 김무열이 연기한 악바리 경찰한테 몰리게 된다. 일단 '나쁜놈들의 리그'치고는 별로 나빠보이지 않는다는 게 1차적 문제. 쌍욕만 해댄다고 해서 나쁜놈은 아닌 거다. 더불어 캐릭터 자체가 별 재미 없고, 존재감도 없다. 마동석은 어쨌거나 자신의 조직을 소유하고 있으니 바운더리가 비교적 넓고 김성규는 애초 이 이야기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니 상관 없지만, 그에 비해 김무열은 존재감이 너무 없다. 경찰에 몸담고 있으니 여러 이야기 뽑아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정작 영화가 그걸 안 한 걸 보면 그냥 이 캐릭터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김규리는 뭐야, 썸타는 거야 뭐야.
영화가 후반들어 갑자기 착해진다는 것도 문제다. <악마를 보았다>처럼 끝까지 갔다면 좋았을테지만 정작 영화는 법의 이름으로 악마에게 심판을 내린다. 거기에 갑자기 마동석은 또 법의 편에 서게 됨. 물론 교도소 내에서 리턴 매치 벌일려고 그런 거지만 나쁜놈들 대잔치라는 슬로건을 건 영화치고는 너무 결말이 소박하고 뻔하더라.
재미 없지는 않았다. 보는내내 재미있기는 했다. 근데 별 생각이 그냥 안 들더라. 이런 게 바로 말초적인 재미인가 싶어지네. 결국 내겐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영화였음.
덧글
로그온티어 2019/05/25 19:18 # 답글
제 인생에서 본 한국영화 중에 제일 말초적인 영화는 그거였어요.
베베꼬인 맛은 악마를 보았다인데, 직선적인 영화는 신의 하... 아! 아수라도 있었구나!
아수라의 독기와 똘기 품은 정우성 분이 빡이 상당히 돌은 마동석 분과 대결 하는 게 보고 싶어지네요. 여기서 능글하지만 서늘한 짝패의 이범수 분도 나오고... 어우야;; 내가 사람 죽이면 안되냐? 라고 말하며 최민식 분도 나오면...... 아, 조선일보 수장(?)으로 명계남 분도 나오셔야죠!
CINEKOON 2019/05/26 17:14 #
로그온티어 2019/05/26 19:04 #
콜타르맛양갱 2019/05/26 14:02 # 답글
CINEKOON 2019/05/26 1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