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성악설 이야기다. 물론 출신 성분이야 어떻든 결국 중요한 건 인간이 스스로 내리는 결정이다-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성선설과 성악설 모두 후천적인 성장 환경보다는 선천적인 기질을 중요시하는 이론이긴 한데, 둘 중 무엇이든 어쨌거나 클락 켄트는 그런 초월적 힘을 갖고도 남들에게 봉사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나. 애초 칼 엘이 태생적으로 선하다는 설정일 수도 있지만, 하여튼 스몰빌이 아닌 소련 떨어졌을 때 이야기는 또 달랐잖아. 공산주의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소련이 선일텐데? 물론 이 영화 속 ‘브라이트번’이 정말 태어날 때부터 악한 존재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도 있겠다. 열두살 생일 이전까지는 비교적 평범한 것처럼 보였다가 그 시점을 전후로 우주선 비스무리한 것에서부터 나오는 세뇌 광선에 흑화된 것처럼 묘사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그 아이를 이 지구로 보낸 미지의 존재들이 나쁜 무력 숭상 후레자식 놈들이란 것으로 귀결되는 것일테니 어쨌거나 다 떼어놓고 보면 그냥 나쁜놈 맞지.
이렇듯 성악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모가 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하여 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DC 세계관의 클락 켄트 역시 다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양부모는 끊임없이 그를 제어하려고 했으니. 이 영화 덕분에 <맨 오브 스틸> 같은 기존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다시 보이는 효과도 분명 있다. <맨 오브 스틸> 볼 때만 해도 주인공에게 힘을 통제하라고 일갈하던 양아버지의 모습이 좀 과하다고 느껴졌었거든.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었는데 그런 일종의 ‘제어’가 없었더라면 그 동네의 먼치킨 역시 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안 되었으리란 보장이 또 없고.
특정 장르의 역사가 길어지면 종종 돌연변이 같은 변종들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트와일라잇>과 <웜 바디스>가 그랬다. 전자는 뱀파이어 영화와 로맨스물의 만남이었고, 후자는 좀비 영화와 로맨스물의 만남이었지. 둘 다 원작이 되는 베스트셀러 소설들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갑툭튀한 변종 장르인 건 변함 없었다. 물론 둘 다 거지 같긴 했지만. 하여튼 그래서, 수퍼히어로 장르가 판치는 지금 시국에 수퍼히어로 장르와 호러를 섞은 건 꽤 괜찮은 선택이다. 이미 앞선 선배 작품들이 꽤 그럴듯한 시도들을 많이 하기도 했었고. 그리고 꼭 수퍼히어로 장르가 아니여도 호러 장르 역시 따지고보면 초특급 능력자들 위주로 돌아가는 장르잖아? 제이슨은 슬래셔 영화계의 수퍼맨이었고, 프레디 크루거는 닥터 스트레인지였으며, 처키는 샤잠이었다. 때문에 두 장르의 상성 자체는 나쁘지 않게 느껴짐.
근데 씨바 각본이 존나 게으르다. 성악설 수퍼맨이라는 신선한 설정 하나만 믿고 거지같이 싸질러 놓은 이 각본 좀 보소. 주인공 부부가 불임 때문에 고생하는 거 알겠으니까 적당히 좀 하라고. 그 정보 주려고 영화 시작 첫 쇼트에 불임 관련 서적들을 노골적으로 전시 하지를 않나, 그걸로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 주인공 부부가 직접 입으로 ‘이번엔 아이가 꼭 생길 거야’라고 늘어 놓지를 않나… 좋게 말해 디테일이 없는 각본이고 나쁘게 말해 대충 쓴 각본인 거다. ’세뇌 광선을 통한 흑화’라는 설정 때문에 꼬마 아이 캐릭터의 입체감도 많이 떨어진다. 좀 뻔하더라도 이 평범했던 소년이 어떻게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었나-를 그렸더라면 좀 덜 했을텐데, ‘그런 거 없음! 얜 그냥 그럴 운명이었던 거임!’ 정도로 퉁치는 지금 각본에서야 그런 거 기대하는 게 무리.
하지만 가장 심각한 건 호러 영화로써의 테크닉이다. 겁이 많아 호러 영화 잘 못 보지만, 그래도 점프 스케어가 호러 영화의 근본이라는 건 잘 알아. 그러니까 쓸 수 있어. 근데 이렇게 무분별하게 쓰면 어떡하냐. 초능력을 가진 살인귀라는 설정 갖다가 이렇게 게으른 연출 하기도 어렵겠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영화 내에서 나름 무서우라고 만든 장면들의 대부분이 죄다 점프 스케어다. 카메라가 이쪽으로 팬 했다가 저쪽으로 다시 팬하면 없어지는 주인공 트릭을 너무 많이 갖다 쓴다. 천천히 소름 올라오게 하는 연출도 없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깜짝 쑈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빡치는 건 결말. 아… 이렇게 성질 나게 하기도 어렵겠다. 너네 무슨 크라임 신디케이트 모으냐? 선동가형 유튜버의 일갈로 끝내는 이 엔딩 대체 뭐냐고. 뭐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 없이 그냥 코즈믹 호러처럼 싸질러놓기만 하면 뭐하냐고. 최근 거지 같은 영화들을 너무 많이 본지라 이 영화가 마냥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영화 구실은 하는 영화니까.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영화가 좋은 영화로 둔갑하는 건 또 아니지않나. 가뜩이나 호러 영화 보는 거 힘들어하는데 영화도 거지 같으니 그냥 이거 저거 다 합해서 빡치기만 하는 영화였음.
덧글
로그온티어 2019/05/26 19:12 # 답글
CINEKOON 2019/07/15 14: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