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수 영화의 괴수들은 인간 내면의 욕망과 두려움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더 말할 것도 없이 고지라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지, 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만들어진 영화.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시의성이 큰 영화였을 것이다.
들어갈 건 다 들어 있다. 거대 괴수의 난동과 그를 막기 위한 각계부처 사람들의 허둥지둥한 작태. 그리고 군사 작전. 여기에 또 덧붙이자면 윤리성 때문에 고뇌하는 한 과학자의 모습까지. 장르의 규칙은 거진 다 여기서 세워졌다. 아, 쓸데없는 인간들의 드라마는 덤.
고지라가 항상 대규모의 자연재해를 동반하는 묘사가 재미있다. 이후 시리즈가 이어지며 정립된 부분도 있지만, 어쨌거나 고지라는 피아식별을 하지 않는 무질서한 자연재해 그 자체이니. 영화 초반 바다에서 난동 부리는 장면에선 심해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묘사되고, 이후 한 어촌 마을을 쓸어버릴 땐 태풍을 동반해 싸그리 날려버린다.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모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긴 하지만 거기서도 대규모 화재를 일으켜 일종의 광역기를 시전하니.
지금 기준으로보아 기술적 완성도가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겠다. 하지만 재미있는 미니어처 촬영이 많고 그게 또 볼만하다. 도쿄에서 난동을 피우던 고지라가 지나가던 열차를 밟아 박살내는 장면에선 2014년에 나왔던 리메이크에서 호놀룰루 공항의 모노레일을 짓밟던 고질라가 떠올라 키득 거리기도.
할리우드 리메이크판에서 와타나베 켄이 연기한 세리자와 박사는 이 1954년작에서 고지라를 죽이는 데에 성공한 일종의 영웅 과학자 세리자와 박사에 대한 오마주. 근데 이 영화에서 좀 불쌍하게 나옴. 괜히 자기 발명품 자랑했다가 거의 목숨 내놓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니 참으로 어이없다하겠다.
안노 히데아키가 만든 <신 고질라>와의 유사점 역시 많다. 할리우드 리메이크판이 '괴수들의 깽판'에 좀 더 집중했다면, <신 고질라>는 이 영화 속 각계부처 사람들의 무능력함을 좀 더 배가시키고 나온 버전이니까. 하여간 같은 텍스트여도 이렇게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니, 과연 60여년을 버텨온 컨텐츠답다.
진짜 오랜만에 다시 보는 건데 시무라 다케시 나오는 줄 모르고 있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들에서 많이 봤던 양반이 여기서 고생물학자 연기하고 계셨네. 이제서야 알아봐 죄송합니다.
뱀발 - 메인 테마 존나 좋음.
덧글
잠본이 2019/06/03 23:53 # 답글
2편에선 또 미묘하게 여기 세리자와를 반전시킨 역할이 되어버리더란 말이죠...
이 사악한 덕질왕 도허티놈
CINEKOON 2019/07/15 14: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