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4 22:58

기생충 극장전 (신작)


봉준호를 좋아했''. <살인의 추억> - <괴물> - <마더> 이어지는 시기는 봉준호라는 감독 개인에게 뿐만이 아니라, 한국 영화 역사에 길이 남겨질 어떠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엔 지금도 변함없고. 다만, 이후 나왔던 <설국열차> <옥자>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영화들이 나쁜 영화들인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봉준호가 만들었던 영화들에 비하면 뭔가가 부족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걸 종종 '봉준호의 우물'이라고 표현한다. 


허물어져가는 옛날 시골 동네인데, 동네 구석에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우물. 언제 만들어졌는지, 깊이는 어떠한지 전혀 없는. 고개를 꺾어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칠흑처럼 어두워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는 그런. 봉준호의 영화들엔 항상 그런 우물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봉준호의 영화들은 보고나서도 마음 어딘가가 항상 찝찝했다. 주인공들은 이겼어도 이긴 것이 아니며, 사회와 시스템은 짐짓 변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예전과 다를 하나 없는. 봉준호의 영화들은 항상 그래왔다. 근데 <설국열차>? 충분히 볼만한 영화였던 것은 맞으나,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다름아닌 희망이었다. 봉준호는 열린 결말의 일종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어쨌거나 그게 희망처럼 보였다. 희망 자체가 싫다는 아니다. 다만 봉준호의 영화들에서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 이후 <옥자> 역시 나에게는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고, 때문에 봉준호의 일곱번째 작품인 <기생충> 보기 다소 간의 걱정이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봉준호인데 영화야 나왔겠지. 게다가 칸에서 황금종려상까지 타왔는데. 문제는 봉준호 특유의 우물이 영화에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우물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역시나 영화는 빠졌다. 거의 거칠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쭉쭉 앞으로 뻗어 나간다. 지금까지 나왔던 봉준호 영화들의 유머 감각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기생충> 영화 전반부는 봉준호를 다시 정도로 재미있는 코미디다. 대사의 센스가 좋고, 배우들의 연기가 그걸 뒷받침한다. 때문에 봉준호의 본격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근데 역시나, 해고 당했던 전직 가정부가 바로 바로 현관 모니터에 등장하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리고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지옥 문이 열리는 순간, 거기서부터는 누가 뭐래도 그냥 봉준호의 영화 맞더라.


같은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 한국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다. 계급 간의 갈등과 빈부격차를 류승완은 <베테랑>이라는 활극의 형태로 다뤘으며, 이창동은 <버닝>으로 미스테리하게 풀어나갔다. 봉준호의 방식은 사이의 접점이라고 있을 같다. 이창동이나 박찬욱의 상징주의를 녹여내되 류승완의 대중성을 잊지 않은 느낌.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서는 동시에 스마트폰을 통하여 해당 영화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을 검색하는 요즈음의 영화 관람 풍토. 크리스토퍼 놀란의 복잡한 영화들부터 마블이 주도하고 있는 수퍼히어로 대중 영화에 이르기까지 풍토가 이미 한국엔 정착되어 있지 않나. 근데 영화엔 그런 필요가 없다. 굳이 검색하거나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상징 자체가 워낙 명확하고 명징해서 이해하기 쉽다. 물론 아주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좋을 '수석' 같은 소품도 존재한다. 허나 그걸 떼어놓고 봐도 계단이나 저택과 반지하로 표현되는 상징들은 너무 깔끔하잖아.


결국은 을들의 이전투구다. 반지하의 누군가는 또다른 피고용인의 자리를 물려받아 과외 선생님의 자리를 차지한다. 여기까지는 나름대로 합법적인 일단 주인공은 위조가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노동력 교체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주체할 수가 없어진다. 반지하의 또다른 누군가는 또다른 피고용인을 몰아붙여 운전기사의 자리를 차지하고, 같은 반지하의 또다른 누군가는 또다른 피고용인을 쥐어뜯어 가정부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후는 더하다. 일종의 기생충처럼 묘사되는 ''들은 자기들끼리의 칼부림으로 바쁘지만, 종국에는 '' 향해 존경을 외치고 미안함을 외친다. 그리고 이들은 애초에 계획이 없다. 계획도 없고 계획할 생각도 없다. 계획이 없으면 무너질 계획이 없으니 그걸로 거다-라는 궤변. 그런 을들의 생각은 사회 시스템을 더욱 고착화시킨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을들의 잘못이라는 아니다. 결말까지 보고나면, 을들의 무계획성이 결국 이해가 가거든. 계획해봤자 계획한대로 되니까 아예 계획을 하게 것이 바로 을들이라는 서글픈 현실.


주제도 명확한데 장르적 외양 역시 뛰어나다. 상술한 지하실 장면이 시작되는 부분은 숨이 턱하고 막히는 느낌이었다. 근데 그러다가 코미디로 선회. 하여간 봉준호 특유의 괴랄함이 여기에도 덕지덕지다. 부잣집 둘째의 트라우마가 시각화되는 장면은 역시나 호러. 거기서의 지하실 주민 묘사는 웹툰 <이끼> 떠오르더라. 누가 만화광 아니랄까봐. 


이번 결말은 누가 뭐래도 닫힌 결말이라 주장하고 싶다. 일순간 관객들을 안도하게 만들지만, 바로 직후 관객 스스로가 급하강하게 만들어버리는 연출. 거기서 느껴지는 절망감. 류승완의 <베테랑> 그랬었다. 경찰들이 합법적인 과정의 공권력으로 안하무인 재벌 3 범법자를 때려 잡는다. 거기서 느껴지는 통쾌함. 근데 극장 문을 나오면서 우리는 안다. 저게 맞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저건 영화 속에서만 존재할 있다는 바로 사실을. 그래서 씁쓸해지는 바로 순간들. 봉준호의 <기생충> 역시 비슷하면서도 얼얼하게 그걸 보여주고 있다 생각한다. 


반지하 백수 가족의 구성원이 이런 말을 한다. 방의 불을 켜면 모여있던 바퀴벌레들이 사사삭하고 흩어져 사라진다고. 말을 그들이 사사삭 흩어져 사라져버리는 장면은 그래서 슬펐다.


만든 작품인 것은 맞지만 여전히 <살인의 추억> <괴물> 봉준호의 최고작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이던 우물, 우물을 영화 속에서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봉준호의 우물이 돌아왔다. 그래서 내게는 영화가 <마더> 이후의 진정한 봉준호 영화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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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06/05 15:09 # 답글

    명징하다 쓰다니 이런 트렌디한 사람.
  • CINEKOON 2019/07/15 14:42 #

    빨간안경 구해다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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