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9 14:45

엑스맨 - 다크 피닉스 극장전 (신작)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사상 최고의 결말을 보여준지 아직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MCU보다 역사가 훨씬 더 긴 시리즈의 마지막편으로 이런 영화가 우리 앞에 당도 했으니 그 참담함과 황당함을 이루 말할 데가 없다.

다크 피닉스를 주 소재로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같은 시리즈 내에서 브렛 라트너가 연출했던 <엑스맨 - 최후의 전쟁>과 비슷한 모양새다. 거두절미하고 둘 중 뭐가 그나마 더 낫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이라고 하겠다. 그 영화 역시 시리즈의 최종장으로써도 아쉽고, 영화 하나만 놓고 보았을 때도 여간 못만든 게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그 영화엔 능력자들끼리의 배틀물로써 어느 정도 최선을 다한 지점들이 느껴졌다고.

일단 이 영화는 다 떠나서 재미가 없다. <최후의 전쟁>이나 이 영화나 오프닝 프롤로그로 진 그레이의 어린 시절 플래시백을 통해 본편을 열어젖히는데, 일단 그것조차도 지루함. 이미 다 어떻게 될지 알고 극장 찾은 건데 그런 장면들이 의미가 있겠냐고. 심지어 뭐 재밌게 연출한 것도 아니잖아. 얼마 전에 봤던 <샤잠!> 오프닝과 거의 똑같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더라. 물론 원래 계획대로 였다면 이 영화가 그 영화보다 훨씬 더 먼저 개봉 했겠지만. 그러나 저러나

우주 조종사 구출 미션으로 영화 본편이 시작하는 것도 실로 어이가 털리는 설정이다. 더 이상 경멸 어린 시선을 받지 않는, 이른바 수퍼히어로 팀으로써의 '엑스맨'을 조명하려고 했다는 점은 높이 산다. 하지만 진짜 영화 시작하자마자 진 그레이가 일종의 리뉴얼된 피닉스 포스에 휩싸여버리면... 아직 감정 이입도 채 안 되었는데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앞서 나간다는 거지. 기존에 팜케 얀센이 연기한 캐릭터가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우린 소피 터너의 얼굴을 한 진 그레이 본 지 얼마 안 됐잖아. 딱 전작에서 처음 등장했던 건데.

진 그레이가 폭주 하면서 부터는 관객 입장에서 양가 감정이 들었어야 한다. 그녀가 무서워지는 동시에 안쓰러워지기도 해야하는 거지. 그러려면 그녀의 악행은 더욱 더 악랄하게, 그러면서도 다크 피닉스로서 각성하고 폭발하기 직전엔 스스로의 강대한 능력을 움켜쥐며 온갖 고민과 멸시에 빠져 허우적 대는 그녀 모습을 봤었어야 했다. 그래야 그녀의 분노가 쾅-하고 터질 때 안쓰러워지지. 근데 얜 본편 시작하고 부터는 내내 기분 좋다고 하질 않나, 술 마시고 허우적대질 않나... 그런 부분을 살리기 위해 오프닝 프롤로그로 어린 시절을 넣었던 것이겠지만 이러나 저러나 실패한 건 매한가지.

아니, 근데 씨바. 외계인이 등장하는 건 손에 꼽힐 정도로 어이가 털리는 설정이다. 원작에 외계인 나온다는 것도 알아. 근데 어쨌거나 이건 실사 영화잖아.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 외계존재들이 언급된 적 한 번도 없잖아. 다 지구에서 시작해 지구에서 투닥 거리며 끝나는 이야기였지. 근데 말그대로 갑자기 툭하고 하늘에서 튀어나온 외계 무리들. 원작에서의 등장은 이에 반해 자연스럽다. 일단 거긴 엑스맨 뿐만 아니라 어벤져스도 살아가는 세계관이잖아. 이미 토르부터가 우주적 존재이니, 거기서야 엑스맨 단독 만화에 외계인들 튀어나와도 무리가 없지. 근데 이 시리즈는 아니잖냐... <반지의 제왕>에서 갑자기 외계인 나오는 거랑, <아바타>에서 갑자기 지옥의 악마 소환되는 거랑 뭐가 다르냐. 시리즈의 톤과 안 맞는다고!!

문제는 외계인들의 존재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다루는 태도다. 이 시리즈는 항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였던 동시에 소수자에 대한 은유였다. 과거 흑인 인권 운동의 모습을 가져와 퀴어를 비롯해 여러 인종적 문화적 텍스트들을 한데 갖다 온 시리즈였단 거다. 그러면서 항상 했던 이야기는, '소수자도 당당한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라는 것. 근데 이 영화 속 외계인들은 <캡틴 마블>의 스크럴 같은 존재들 아니냐? 형태 변화 능력 뿐만 아니라 일종의 난민 같은 거잖아. 피닉스 포스 때문에 자기 고향 행성 크립톤 상태 되고 지구로 온 거라며. 이거 영락없는 난민 메타포잖아. 그러니까 얘네들도 일종의 소수자라는 소리다. 때문에 영화는 훨씬 더 재밌어질 거리가 많았다. 소수자 VS 소수자 구도로 갔더라면, 텍스트가 훨씬 더 풍부해졌을 거라 생각해. 근데 이 영화는 결말을 어떻게 내고 있나. 외계에서 온 소수자는 그냥 악당이다. 소수자도 소수자 나름이라는, 외부에서 온 소수자를 우리 내부의 소수자로 일망타진 하자는 해괴한 결말. 게다가 다크 피닉스의 동귀어진 자폭. 시바... 이거 그냥 시리즈의 주제의식을 한 번에 내던지는 설정 아니냐고.

매그니토는 여전히 일전의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이 새끼는 매 영화마다 악당으로 나오는데 결말부엔 반성하고 회개하는 척 하더니 다음 영화에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악당으로 컴백함. 사실 매그니토 이 새끼의 못된 버릇이 아니라 이 시리즈 각본가들의 못된 버릇이지. 미스틱은 제니퍼 로렌스가 고된 분장하는 거 질리기라도 했는지 일찍 리타이어해버리고, 그녀가 일찍 사라지니 그녀와 깊게 연관된 캐릭터라 할 수 있을 비스트 역시 설 자리를 잃는다. 여기에 찰스가 비호감 되는 건 보너스. 아니,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거 매그니토 방식 아니었냐? 프로페서 X는 목적보다 수단을 중히 여기는 인간인데, 갑자기 마지막 편에 이르러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린 아이 정신조작해도 괜찮다는 소리나 지껄이고 앉아있고. 교장부터 이러고 있으니 학교 꼴 잘도 돌아가겠다.

그나마 장점 찾자면, 액션 연출이다. 비록 이전 영화들에 비해 소규모로 진행되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날 것 같은 느낌의 액션을 잘 살렸다고 본다. 브라이언 싱어의 영화들은 항상 우아했지만, 그럼에도 액션성은 무척 아쉬웠었지. 팀 엄 무비로써의 정체성도 얕은 편이었고. 다만 이 영화에선 액션이 나쁘지 않다. 후반부 뉴욕 길거리 전투는 그야말로 개판 전투였고, 군용 호송 열차 내부에서 벌어지는 매그니토의 근접전 묘사는 흥미로움. 다만 영화가 그걸 많이 보여주지도 않고 딱 거기까지일 뿐.

제시카 차스테인은 뭐 더 할 말이 없다. 그냥 그녀 커리어 최악의 오점으로 남게 될 듯.

그래도 나름 20여년을 끌어온 시리즈인데 어째 황급히 조기종영해버리는 느낌이다. 이럴 때 제일 화가 난다. 나 지금까지 시리즈들 외전까지 다 합쳐 블루레이 다 모았는데, 막판에 이렇게 조져버리니 그 수집 자체가 전부 다 물거품 된 기분이잖아. 시작이 미약할지언정 끝은 창대했어야지, 어째 이 시리즈는 초반에 번쩍하더니 갈수록 조져가냐. 존나 서운하다, 진짜. 사이먼 킨버그 감독 확정 되었을 때부터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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