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1 22:30

사이드 바이 사이드, 2012 대여점 (구작)


뻔한 소리지만 예술의 역사는 기술의 역사다. 예술은 언제나 기술과 궤를 함께 했다. 그리고 중에서도 영화만큼 기술 의존도가 높은 예술이 없다. 일단 영화는 근본적으로 '카메라'라는 기계가 있어야 성립하기 때문에. 점에 있어서는 예술로써의 '사진' 동일한 지점이기도 하지만 하여튼 영화가 훨씬 비싸고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야 하는 예술이니까.


키아누 리브스의 친절한 가이드로 진행되는 다큐멘터리로 셀룰로이드 필름의 독주 무대였던 영화 시장에 디지털 촬영 기술이 어떻게 난입했는지, 그리고 디지털 촬영 기술은 어떻게 필름의 독주 무대를 찬탈했는지, 여기에 마지막 남은 필름주의자들과 어느새 다수가 되어버린 디지털주의자들의 말빨 무쌍난무가 펼쳐진다. 재밌는 로얄럼블의 선수들 명단이 존나 쩐다는 . 마틴 스콜세지, 로버트 로드리게즈, 크리스토퍼 놀란, 데이비드 핀쳐, 제임스 카메론, 베리 레빈슨, 조지 루카스, 스티븐 소더버그 등등.


인터뷰 모음집으로써 재밌는 . 필름주의자들은 디지털주의자들을 까고, 그에 질세라 디지털주의자들 역시 필름주의자들을 깐다. 편집도 묘하게 붙여놨다. 데이비드 핀쳐가 디지털의 장점을 설파한 직후 갑자기 크리스토퍼 놀란이 인터뷰에 등장해 디지털을 깐다. 그런 식의 묘미. 근데 죄다 거장들인데 정작 인터뷰는 따로 따로 했다보니 딱히 누구 지정하고 욕하는 아니지만 뭔가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재밌는 것은 감독 촬영감독들의 캐릭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누구보다 강하게 이야기한다. 제임스 카메론은 귀여운 성질을 부리면서 비유법으로 상대를 이해시키려 하고, 조지 루카스는 어째 피해 의식 쩌는 느낌. 데이비드 핀쳐는 성질 버리고 인터뷰 내내 'Fuck' 연발하는가 하면, 로드리게즈는 신나서 자기 영화 이야기한다. 와중에 중도를 지키며 적절히 웃어넘기는 마틴 스콜세지의 노련미가 발군. 하여튼 양반은 말본새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 귀여운 달변가 양반.


어느 분야의 어느 변화나 그렇겠지만, 필름 일색이던 영화판에 디지털 매체가 들어오면서 모두가 반감을 가졌다. 필름만이 진정한 '시네마'이고, 디지털로 찍은 것은 결국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는 편협한 시선. 편협하다고 쓰긴 했지만, 어느 편으로는 이해가 아예 가는 아니라 뜨끔하기도 하다. 이후에 디지털이 시장을 제패해 필름은 시대의 유물 취급 받는 모습 나옴. 하여간 역사는 돌고 돈다. 


필름과 디지털은 차이가 명확하면서도 미묘하다. 관용도의 차이도 있겠고, 해상도나 비용적인 측면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이런 어느 정도 알았던 사실인데, 정작 제일 재밌는 아주 사소하고 현실적인 부분들에서의 차이였음.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필름 시절엔 촬영감독의 권한이 매우 컸다고 한다. 시절 현장에서 유일하게 뷰파인더를 있는 촬영감독 뿐이었으니. 생각해보니 엄청 당연하네, 시절 필름 쓰는데 모니터로 플레이백하는 완전 불가능이니. 때문에 필름용 프린트가 나와서야 촬영감독 외의 사람들이 촬영본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장에선 온전히 촬영감독을 믿고 가야했고, 그로써 촬영감독의 권위가 컸던 . 근데 요즘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크고 작은 모니터들로 마다 플레이백 하며 확인하는 당연해졌잖아. 상대적으로 촬영감독의 권력이 줄어들 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재밌다. 기술의 발전이 작업에 임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권력 관계 역시 전복 시킬 있다는 .


영화 역사는 기껏해야 100년이다. 공식적으론 1895년에 처음 발명되었으니 정확히 따지자면야 100 넘었지만, 어쨌거나 다른 예술들에 비하면야 터무니없이 짧지. 근데 100 분야에서도 이런 갈등이 수십번이었다.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기술과 트렌드가 옮겨갈 때마다 다들 싸웠었잖아. 물론 필름과 디지털의 대결은 그것들에 반해 본질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겠지만 하여튼 줄기에서 보자면야 필연적인 갈등인 .


근데 떠나서 필름으로 영화 찍기가 쉬운가. 당장 한국에선 불가능한데. 현상하려면 이웃나라 일본까지 태워서 필름 보내야한다고... 조금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 학교에서 필름을 만지고 배웠던 마지막 세대인지라 그것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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