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잖고 거만한 소리지만, 봉준호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그닥 부럽지 않다. <괴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 역시 그렇다. 내가 그를 부러워하는 것은 다른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옥자>를 통해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와 협업한 것. 그리고 둘째는 <설국열차>로 우리 시대의 명배우였던 존 허트와 함께한 것.
존 허트는 1940년 런던에서 태어나 스무살이 되던 1960년, 왕립연극학교에 입학하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업계의 불황 때문에 그의 무명 시절은 길기만 했는데, 그러던 중 우리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횔 갖게 된다. 바로 영화 역사상 첫번째로 에이리언에 의해 희생된 것이 존 허트였기 때문이다. 에이리언은 그의 가슴팍을 찢고 태어났다. 영화 역사에 남을 우주 괴수의 강렬한 데뷔. 그 짧고 굵은 장면에 존 허트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주인공 해리에게 딱 맞는 마법 지팡이를 골라주었던 사람. 또는 <설국열차>에서 꼬리칸의 영적 지도자로 나왔던 사람. 요즈음의 우리는 존 허트를 그렇게 기억할 테지만, 어쨌거나 그 시작점엔 <에이리언>이 있었다.
숱한 영화들 속에서, 존 허트는 정말이지 많이 죽었다. 죽고 또 죽었다. 가슴팍에서 외계 괴물이 튀어나와 죽었고(<에이리언>), 양아들을 감싸다가 죽었으며(<헬보이>), 몰락한 독재자로 처형 당했다(<브이 포 벤데타>). 때로는 고통에 못 이겨 죽음을 택하기도 했고(<엘리펀트 맨>), 암살 당하기도 했으며(<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교체되기 위해 죽기도 했다(<설국열차>).
그런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죽은 것은 다름 아닌 2017년 1월이었다. 당시 나는 유럽 여행 중이었고, 숙소에서 일어난지 채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부고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 날 난 하루 종일을 멍한채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존 허트가 죽었다'라는 말은 특이하다. 죽고 죽었던 사람이 또 죽었다고 하니까. 그렇게 그는 2017년에 마지막으로 죽었다. 뜬금없지만 바로 그 때문에 봉준호가 부럽다. 존 허트가 내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건 그와 작업했던 감독들, 그리고 봉준호만이 알 수 있는 기분이겠지. 이제 더는 알 수 없는 기분이겠지. <설국열차> 크랭크인을 위해 한국 스텝들이 돼지머리 고사를 지낼 때, 불태워지는 축문을 보며 그에 감동해 존 허트가 눈물을 흘렸다는 그 유명한 일화. 사람은 태생이 아니라 그가 한 선택에 의해 규정된다고 <헬보이>에서 말씀하셨지요. 당신은 내게 그 이상의 이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덧글
지나가다 2019/06/25 11:47 # 삭제 답글
CINEKOON 2019/06/25 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