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4 13:08

존 허트, 이상적이었던. 일기라기엔 너무 낙서


같잖고 거만한 소리지만, 봉준호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그닥 부럽지 않다. <괴물> 천만 관객을 돌파한 역시 그렇다. 내가 그를 부러워하는 것은 다른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옥자> 통해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와 협업한 . 그리고 둘째는 <설국열차> 우리 시대의 명배우였던 허트와 함께한 .


허트는 1940 런던에서 태어나 스무살이 되던 1960, 왕립연극학교에 입학하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업계의 불황 때문에 그의 무명 시절은 길기만 했는데, 그러던 우리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 통해서야 비로소 그의 얼굴을 자세히 있는 기횔 갖게 된다. 바로 영화 역사상 첫번째로 에이리언에 의해 희생된 것이 허트였기 때문이다. 에이리언은 그의 가슴팍을 찢고 태어났다. 영화 역사에 남을 우주 괴수의 강렬한 데뷔. 짧고 굵은 장면에 허트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에서 주인공 해리에게 맞는 마법 지팡이를 골라주었던 사람. 또는 <설국열차>에서 꼬리칸의 영적 지도자로 나왔던 사람. 요즈음의 우리는 허트를 그렇게 기억할 테지만, 어쨌거나 시작점엔 <에이리언> 있었다.


숱한 영화들 속에서, 허트는 정말이지 많이 죽었다. 죽고 죽었다. 가슴팍에서 외계 괴물이 튀어나와 죽었고(<에이리언>), 양아들을 감싸다가 죽었으며(<헬보이>), 몰락한 독재자로 처형 당했다(<브이 벤데타>). 때로는 고통에 이겨 죽음을 택하기도 했고(<엘리펀트 >), 암살 당하기도 했으며(<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교체되기 위해 죽기도 했다(<설국열차>).


그런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죽은 것은 다름 아닌 2017 1월이었다. 당시 나는 유럽 여행 중이었고, 숙소에서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부고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때문에 하루 종일을 멍한채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 허트가 죽었다'라는 말은 특이하다. 죽고 죽었던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까. 그렇게 그는 2017년에 마지막으로 죽었다. 뜬금없지만 바로 때문에 봉준호가 부럽다. 허트가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건 그와 작업했던 감독들, 그리고 봉준호만이 있는 기분이겠지. 이제 더는 없는 기분이겠지. <설국열차> 크랭크인을 위해 한국 스텝들이 돼지머리 고사를 지낼 , 불태워지는 축문을 보며 그에 감동해 허트가 눈물을 흘렸다는 유명한 일화. 사람은 태생이 아니라 그가 선택에 의해 규정된다고 <헬보이>에서 말씀하셨지요. 당신은 내게 이상의 이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덧글

  • 지나가다 2019/06/25 11:47 # 삭제 답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서커스(존 허트)는 심장마비로 죽은 게 아닌가요?
  • CINEKOON 2019/06/25 12:05 #

    다시 떠올려보니 요양원에서 죽은 것 같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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