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라이트가 연출한 <다키스트 아워>는 괴상한 오프닝 시퀀스를 갖고 있다. 첫째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이면서 오프닝 6분동안 그의 얼굴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둘째로, 얼굴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으면서 프레임 속에 등장한 다른 조연 배우 모두가 윈스턴 처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흡사 ‘홍철 없는 홍철팀’처럼, <다키스트 아워>의 오프닝은 ‘처칠 없는 처칠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유용한 전략인 게, 실존 인물로서의 윈스턴 처칠을 잘 모르는 관객들도 이 6분에 걸친 오프닝 시퀀스 탓에 윈스턴 처칠이란 인물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다. 다른 인물들의 입에서 입으로, 소문에서 소문으로 구전을 통해 전해지는 윈스턴 처칠의 뒷담화는 그에 대한 관객들의 호기심을 끓어오르게 만든다. 이른바 실존하면서도 (프레임 내에서는) 실존하지 않는 이미지의 구현인 것이다.
여기서 이어지는 조 라이트의 화룡점정. 예컨대, 영화에서 주인공을 첫 소개 하기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조 라이트는 그 중요성을 잘 아는 영민한 연출자다. 윈스턴 처칠의 첫 등장은 그의 침실에서 이뤄진다. 암막 커튼 덕에 어둠이 가득 내리앉은 침실. 그 가운데에서 침대 위 처칠이 자신의 시가에 불을 붙인다. 처칠의 첫 등장은 그렇게 연출된다. 어두운 공간 안에서 성냥불을 통해 그의 얼굴이 오롯이 떠오르는 것으로. 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의 가장 위험했던 순간에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라는 과감한 결정을 함으로써 불리했던 전세의 판도를 뒤바꿨던 사람이다. 가장 어두울 때에 가장 희망이 되었던 사람이다. 바로 그 인물을, <다키스트 아워>는 이 한 쇼트를 통해 설명한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연출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가 현장의 영화라면, 조 라이트의 <다키스트 아워>는 배후의 영화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작전명인 ‘다이나모 작전’ 연작이라고 해도 좋으니, <덩케르크>를 보신 분들은 <다키스트 아워> 역시 꼭 관람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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