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8 20:29

나랏말싸미 극장전 (신작)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이슈들 때문에 여기 털리고 저기 털리고 있는 영화인데, 정말 솔직히 말하면 바로 그 역사 왜곡 논란을 떼고 봐도 그냥 재미 없는 영화라고 본다.

일단 정말로 역사 왜곡 논란을 떼고 한 번 보자. 백 번 양보해 이 영화에서 주장하는 바가 실제 정론이라고 쳐도 문제다. 그냥 재미가 없다. 비유 좀 해보자. 우리가 하이스트 장르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특정한 범죄 계획을 세우는 전문가들과 그 전문가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 배속되어 알맞고 찰지게 주고 받는 범죄 계획의 진행을 보는 데에 있을 것이다. 바로 그거다. 장르 영화나 어떤 특정한 소재를 다루는 영화들은 바로 그런 관객들의 기대치에 일정 부분 부응해야하는 것이다.

제목부터가 '나랏말싸미'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시기를 다루는 영화라 홍보 되었으니, 관객된 입장에서 그 한글 창제 과정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종대왕은 대체 무슨 연유로 새로운 문자 창제에 열을 올리게 되었는지, 정말 신미가 한글 창제의 수훈갑이었다면 그와 세종대왕의 팀 워크는 어땠는지,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어떤 과정과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한글이라는 문자에 담긴 언어 과학적 특징과 의미는 무엇인지. 다른 걸 할 때 하더라도 일단 이 정도는 좀 털어줘야 흥미를 갖고 영화 볼 거 아니겠는가.

근데 영화가 그걸 안 한다. 진짜로. 세종대왕은 무슨 국어국문학과 교수 마냥 신미와 그 일당들에게 대학 과제를 부여하고, 다음 출석 체크할 시간 되어 확인해보면 그 학생들이 또 그 과제를 다 해온다. 중간에 그 과정이 없다. 아니, 아예 없는 건 또 아닌데 그나마 넣어둔 게 대가리 굴리다 지쳐 잠시 누워 멍 때리는데 거기서 천장의 서까래 보고 아이디어 얻어 오는 거임. 한글 창제의 구체적 과정과 그 과학적 특징 따위를 보고 싶었던 건데 대부분이 죄다 희대의 운빨로 만든 특급 조별 과제 느낌이다. 

때문에 결국 영화는 한글을 둘러싼 정치와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더 관심을 갖는다. '한글 창제'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에 혹하고 있는 영화인 것이다. 물론 그건 괜찮은 작업이다. 다만 상술 했던 한글 창제의 구체적 과정이 우선시 되었어야 했을 뿐.

세종대왕이라는 희대의 성군을 다루면서 정작 풀어내기는 전형적이다. 막말로 감독이 <광해 - 왕이 된 남자> 보고 영감 얻은 느낌이더라. 한없이 무력하고 초연한 왕의 애민정신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서 기획상의 난점이 하나 더 드러난다. 세종대왕을 유능하고 리더십 있는 인물로 그렸다면 오히려 더 재밌었을 것이다. 실제 역사도 그렇고 지금까지 사극에서 나왔던 한국사의 군주들은 대개 그렇게 묘사 안 되니까. 좋고 나쁨을 떠나서, <광해>든, <왕의 남자>든, <사도>든 대부분 다 군주의 비애를 그리지 않나. 그러니까 이 타이밍에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들고 왔으면 많이 봤던 그런 거 하지 말고 퓨전 사극 풍을 섞어도 좋으니 존나 부하들 갈구면서 본인 스스로 먼치킨인 왕으로 그렸으면 얼마나 새롭고 좋냐- 이 말이다. 지금 버전의 세종대왕은 그냥 <광해> 속 이병헌이잖아... '적당히들 하시오, 적당히들!' 이거...

개연성 역시 밥 말아 먹는 부분이다. 최소한 기승전결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소헌왕후는 궁을 나간 뒤 바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미 병 얻어 누워있다.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화 속에서 꽤 건강하게 보였던 캐릭터가 바로 다음 장면에서 누워 죽기 전인 것이다. 근데 이 타이밍이 또 묘한 게, 바로 이 직전 즈음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목욕탕 장면 넣었다는 거. 바로 뒤에 붙일 캐릭터의 죽음에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 급히 넣은 멜로 드라마적 요소처럼 보인다는 것 역시 문제라면 문제다.

주연급이 이 정도인데 당연히 그 아래 조연들 역시 낭비된다. 궁궐 모래 바닥에 적는 초성퀴즈 장면이야 유머로 봐줄 수 있지만, 궁녀와 동자승의 멜로 아닌 멜로 장면은 불필요한데다 그마저도 성실히 묘사하지 않았다. 이런 게 마냥 싫다는 게 아니다.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거. 이렇게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넣을 거면 대체 왜 넣는 거냐고. 넣을 거면 확실히 넣든지. 아, 영화 속 유머 역시 죄다 불발. 묵언수행 중인 스님이 첫 등장할 때부터 '아, 이거 분명히 후반부에 말 튼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그 예상대로 되더라. 문제는 그 장면이 누가 봐도 웃기기 위해 넣은 건데 하나도 안 웃겼다는 점.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역사 왜곡 논란은 워낙 여기저기서 다 다뤘으니 굳이 나까지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근데 그런 걸 떠나 그냥 재미가 없다구... 역사 왜곡 논란 없었어도 너무 뻔하고 전형적인 영화라구... 이런 식이면 세종대왕이 직접 와서 봐도 지랄하고 자빠졌네-라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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