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3 22:35

컨택트, 2017 대여점 (구작)


주인공이 딸을 키우며 선물 받았던 기쁨, 그리고 딸을 불치병으로 잃으며 부여 받았던 고통. 영화는 그걸 먼저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외계인들의 지구 내방. 생김새도 괴상한 우주선을 이순신 마냥 열두척이나 끌고 지구 곳곳에 정박시킨 그들의 속내를 알아내고자 정부는 언어학자인 주인공을 초빙하고, 우리의 주인공은 과학자와 군인 동료들과 함께 외계인과의 소통에 앞장선다는 이야기.


엄밀히 따져본다면, 영화의 오프닝은 가짜 패다. 영화의 후반부에 펼쳐질 반전 아닌 반전을 고려해보았을 , 오프닝이 장면인 것은 말이 되는 순서지. 하지만 주인공이 딸에게 붙여주었던 이름이 앞으로 해도, 거꾸로 해도 똑같이 읽히는 한나(Hannah)였던 것처럼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이 수미상관처럼 맞아 떨어진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게 그럴 듯한 선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외계 존재들과 조우하는 영화들은 많았지만, 이토록 조우 직전의 긴장감을 다룬 영화는 없었던 같다. 굳이 비교하자면 스필버그의 초기작인 <미지와의 조우> 정도? 아닌 아니라 영화 초반, 주인공인 루이스가 외계 우주선인 셸에 진입하는 장면에서의 긴장감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움푹 패인 바둑돌 같은 괴이한 형상의 우주선을 원거리에서부터 근거리로 이동해 보여주는 촬영과 시종일관 텐션을 업시키는 음악. 여기에 에이미 애덤스의 연기로 가득찬 클로즈업까지. 영화 극장에서 처음 봤을 주인공 따라 가쁜 몰아내쉬기 바빴던 모습이 떠오르네.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인간의 인지 능력이 달라진다는 사피어 워프 가설과 가볍게 언급되지만 단어만큼은 왠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제로섬 게임 어려워보이는 이론들과 단어들이 난무함에도, 루이스의 '캥거루' 예시나 칠판에 적어 보여주는 친절한 설명 등을 통해 결코 어렵게 느껴지게끔 하지 않는 영화적 연출이 능란하다. 이런 보면 주인공인 루이스가 정말 좋은 교수겠구나- 싶은 생각도 . 우리 나라로 치면 일타강사 느낌이랄까.


외계인 때문에 SF처럼 보이기도 하고 언어학을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는 지적인 문과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결국 영화가 삶을 순례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지구 곳곳에 착륙한 외계의 우주선들이 모두 합해 열두척이라는 점과 그들의 문자가 동그란 원형의 형태라는 등은 결국 영화가 '시간' 대한 영화임을 재인지 시켜준다. 그렇다. 시간. 시간은 인류가 거부할 없는 어떠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시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보통,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시간을 넘어 자신의 모습을 본다. 예지의 수준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 때문에 미래의 자신이 딸을 잃음으로써 얻을 고통의 무게 역시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걸 감내한다. 딸을 잃으며 느낄 고통도 있겠지만, 딸을 얻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느낄 행복이 중요하기에.


이별이 두려워 사랑하지 않으랴. 이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결혼하지 않아야할까. 실패하는 두려워 시도하지 않아야 하는가. 중간에 넘어지는 두려워 달음박질을 멈추어야 하나. 사고나는 두려워 운전 면허를 포기해야 할까. 강아지나 고양이가 나보다 먼저 생을 마감할 것이 분명해 그것이 두려워 집에 들이지를 말아야 하나. 돈을 펑펑 써버릴까봐 두렵다면 애초 벌지를 말아야 하나. 아니, 떠나서. 결국 찾아올 것이 분명한 죽음 때문에 지금 내쉬는 숨을 멈추어야 하는가.


나쁜 일도 있을 것이다. 지긋지긋하고 위험한 일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을 산다. 결국 죽을 것임을 앎에도 우리는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 나간다. 바로 점이, 루이스와 우리의 대단한 점이다. 미래를 알지만 그것을 바꾸려 들지 않고 묵묵히 살아나가는 바로 모습. 그게 순례자가 아니면 대체 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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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는 행동을 해야하는 순간에, 교차편집으로 과거의 주인공이 비집고 들어와 현재의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 그런 장면 편집. 그걸 가장 잘 썼던 건 드니 빌뇌브의 &lt;컨택트&gt;였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기억이긴 했지만. 하여튼 나도 그런 장면 연출을 굉장히 좋아한다. 근데 문제는, 유행처럼 트랜드가 돌고 있는 건지 뭔지 요 ... more

덧글

  • 로그온티어 2019/08/13 23:56 # 답글

    예전에 포스팅하신 숭고함에 대한 글이 떠오르네요. 부정적 미래를 알고도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도 숭고한 선택의 일환이겠죠. 글의 마지막에서는, 이런 삶의 태도에 대한 예찬이 느껴졌습니다. 시네쿤님의 생각이 보이는 것 같아요.
  • CINEKOON 2019/08/24 11:31 #

    제가 그렇게 살질 못해서 그래요,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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