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유년에 일어났던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세조와 한명회는 기울어져가는 민심을 바로잡고 자신들의 정통성을 각인 시키고자 조선 팔도를 유랑하며 가짜 뉴스들을 만들어 뿌리고 다니는 광대들, 이른바 '공갈패'를 고용해 뭐가 고용이야 목에 칼 들이댔으면서 써먹으려고 한다는 이야기. 차태현이 주연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감독이 만든 신작. 전작의 톤이 그랬듯이, 이번 영화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하는 퓨전 사극 되시겠다.
퓨전 사극 자체에 대한 반감은 별로 없다. 오히려 전형적인 정통 사극들보다 이 방향이 좀 더 나을 수도 있다 생각한다. 일단 새롭고 키치하잖아. 누군가는 유치뽕짝이라 할지 몰라도, 최소한 나는 그런 거 좋아하거든. 비웃겠지만 <임금님의 사건 수첩>도 그럭저럭 즐기며 보았던 나다.
근데 시바 이 영화는 그냥 답이 없다. 아니, <임금님의 사건수첩>에 나왔던 로봇 물고기와 잠수함도 그럭저럭 웃어 넘기며 봤던 나야. 조선시대에 무슨 잠수함이 있어-라고 비웃다가도 영화니까 뭐 어떠냐는 마인드로 그냥 웃어넘긴 나라고. 근데 대체 이 영화는 왜 이러냐. 말도 안 되는 설정과 묘사를 하면서도 별 재미는 없고, 심지어 다 어디서 봤던 것들임.
그러니까 이런 거다. 조선 시대에 잠수함이나 런닝머신 비슷한 게 있는 건 괜찮다. 어차피 영화고 그 중에서도 특히 퓨전 사극이니까. 하지만 최소한 영화 속 인물들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쿠데타 일으켜 한 나라의 정권을 잡은 놈들이라면 최소한 온갖 권모술수를 다 부려봤을 놈들 아니야? 근데 이딴 거지같은 트릭들에 속아 싸그리 와해되고 동귀어진 한다고? 세조 그 새끼는 또 막판에 왜 지랄이야, 지랄이. 아무리 반쯤 미친 인간이라고 설정해도 그렇지 이 정도면 너무 결말 대충 쓴 거 아니냐?
무엇보다 공갈패의 사기 행각들이 별 재미가 없다. 트릭들도 죄다 뻔하고, 묘사 등도 창의성이 전무. 솔직히 까놓고 말해 막판 영사기 트릭은 <바스터즈>랑 <오즈 - 그레이트 앤 파워풀> 막판에 다 나왔던 것들이잖아. 조선 시대에 영사기가 있었던 건 정말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말이다... 공갈패의 구성원들이 각자 주는 재미도 그렇다. 영화 초반부에 한 명씩 소개한 것 치고는 서로의 케미스트리가 잘 안 살고, 무엇보다 각자의 주특기가 멋지게 묘사되지 못했다. 대충 특징과 주특기만 정해 던져주면 뭐하냐고, 그걸 살릴 수 있는 장면을 하나씩 부여 해줘야지.
묘사도 뻔한데 어차피 이야기도 뻔하다. 영화 초반부터 바로 알겠던데, 한명회가 중후반부쯤 얘네 다 토사구팽하겠구나- 하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됨. 내가 무슨 <기생충> 같은 특급 반전을 바란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과할 정도로 뻔하잖아, 영화가.
중간 중간 거대 미륵불로 사기 치는 장면에선 내가 다 실소 나오던데. 이쯤 되면 이 정도 트릭을 설계한 주인공놈들을 욕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이따위 허접한 트릭에 놀라 자빠지는 당시 조선 사람들을 욕해야하는 건지 갈피가 안 선다.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