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5 14:50

광대들 - 풍문조작단 극장전 (신작)


계유년에 일어났던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세조와 한명회는 기울어져가는 민심을 바로잡고 자신들의 정통성을 각인 시키고자 조선 팔도를 유랑하며 가짜 뉴스들을 만들어 뿌리고 다니는 광대들, 이른바 '공갈패'를 고용해 뭐가 고용이야 목에 칼 들이댔으면서 써먹으려고 한다는 이야기. 차태현이 주연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감독이 만든 신작. 전작의 톤이 그랬듯이, 이번 영화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하는 퓨전 사극 되시겠다.

퓨전 사극 자체에 대한 반감은 별로 없다. 오히려 전형적인 정통 사극들보다 이 방향이 좀 더 나을 수도 있다 생각한다. 일단 새롭고 키치하잖아. 누군가는 유치뽕짝이라 할지 몰라도, 최소한 나는 그런 거 좋아하거든. 비웃겠지만 <임금님의 사건 수첩>도 그럭저럭 즐기며 보았던 나다. 

근데 시바 이 영화는 그냥 답이 없다. 아니, <임금님의 사건수첩>에 나왔던 로봇 물고기와 잠수함도 그럭저럭 웃어 넘기며 봤던 나야. 조선시대에 무슨 잠수함이 있어-라고 비웃다가도 영화니까 뭐 어떠냐는 마인드로 그냥 웃어넘긴 나라고. 근데 대체 이 영화는 왜 이러냐. 말도 안 되는 설정과 묘사를 하면서도 별 재미는 없고, 심지어 다 어디서 봤던 것들임.

그러니까 이런 거다. 조선 시대에 잠수함이나 런닝머신 비슷한 게 있는 건 괜찮다. 어차피 영화고 그 중에서도 특히 퓨전 사극이니까. 하지만 최소한 영화 속 인물들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쿠데타 일으켜 한 나라의 정권을 잡은 놈들이라면 최소한 온갖 권모술수를 다 부려봤을 놈들 아니야? 근데 이딴 거지같은 트릭들에 속아 싸그리 와해되고 동귀어진 한다고? 세조 그 새끼는 또 막판에 왜 지랄이야, 지랄이. 아무리 반쯤 미친 인간이라고 설정해도 그렇지 이 정도면 너무 결말 대충 쓴 거 아니냐?

무엇보다 공갈패의 사기 행각들이 별 재미가 없다. 트릭들도 죄다 뻔하고, 묘사 등도 창의성이 전무. 솔직히 까놓고 말해 막판 영사기 트릭은 <바스터즈>랑 <오즈 - 그레이트 앤 파워풀> 막판에 다 나왔던 것들이잖아. 조선 시대에 영사기가 있었던 건 정말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말이다... 공갈패의 구성원들이 각자 주는 재미도 그렇다. 영화 초반부에 한 명씩 소개한 것 치고는 서로의 케미스트리가 잘 안 살고, 무엇보다 각자의 주특기가 멋지게 묘사되지 못했다. 대충 특징과 주특기만 정해 던져주면 뭐하냐고, 그걸 살릴 수 있는 장면을 하나씩 부여 해줘야지.

묘사도 뻔한데 어차피 이야기도 뻔하다. 영화 초반부터 바로 알겠던데, 한명회가 중후반부쯤 얘네 다 토사구팽하겠구나- 하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됨. 내가 무슨 <기생충> 같은 특급 반전을 바란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과할 정도로 뻔하잖아, 영화가.

중간 중간 거대 미륵불로 사기 치는 장면에선 내가 다 실소 나오던데. 이쯤 되면 이 정도 트릭을 설계한 주인공놈들을 욕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이따위 허접한 트릭에 놀라 자빠지는 당시 조선 사람들을 욕해야하는 건지 갈피가 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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