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31 12:16

벌새 극장전 (신작)


1994년, 중학교 2학년생인 은희는 여러 일들을 겪게 된다. 대학 입시에 목메는 강압적인 교육 환경과 그 사이에서 꽃피우는 연애. 외삼촌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가족들의 분열. 남자친구의 양다리. 아버지의 외도. 같은 학교 여 후배의 고백. 절친했던 친구와의 절교. 재개발 지구 사람들의 절규. 귀 밑에 난 혹. 새로오신 한문 선생님과의 긴밀한 시간들. 친 오빠의 폭력. 찢어지는 고막. 그 사이에서 보는 환영. 그리고 그들을 잇는 1994년 미국 월드컵과 성수대교 붕괴 사건. 하여튼 온갖 파란만장한 일들을 압축 파일 마냥 일 년에 걸쳐 겪게 된 은희의 이야기.

유수의 해외 영화제들에서 스무 개 이상의 상을 받고 박찬욱 감독과 평론가들의 만장일치 호평까지 끌어내 올해 최고의 데뷔작으로 칭송 받았던 영화. 그래서 반쯤은 기대했고, 반쯤은 이를 갈았다. 대체 어떤 영화를 만들었기에 이런 성과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데뷔작에서! 약간의 질투심이 일었고, 행여 그 질투심에 눈 멀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될까 봐 은연 중에 경계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 영화는...... 희대의 과평가 아닌가- 하는 생각.

일단 앞서 이야기했듯 여러 가지의 이야기가 중첩되는 이야기다. 가장 큰 문제는 거기에서 온다. 여러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 아버지의 외도가 처음 엿보이는 장면에서, 나는 이후 이 설정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었었다. 결과론적으론 아무런 영향이 없는 설정이었음. 외삼촌의 자살 역시 단편적으로 다뤄지고, 남자친구와의 연애나 친구와의 절교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이 모두 너무나 얕다.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따라가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관객으로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여 후배가 주인공에게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아, 이거 퀴어 영화인가 보다' 싶다가도, 그 설정은 오래 가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다. 또 친구와 가족들이 엮여드는 장면에서는 '가족과 친구 사이의 분열에서 성장하는 성장 드라마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그 역시 옅어져 있다. 재개발 지구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또 왜 한 거야? 이것 때문에 난 또 당시 사회의 비정함이나 불합리를 고발하는 사회 드라마인 줄 알았잖아. 게다가 영화 곳곳에 덧바르는 듯한 월드컵, 성수대교 붕괴 등의 시대 묘사는 다소 광적으로 느껴진다. 그나마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니 차치한다해도, 94년 미국 월드컵이나 당시 유행했던 가요들, TV 예능 프로그램들이 직간접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은 너무 과하다. 영화의 시대 배경이 1994년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 거의 환장한 느낌이다.

여기에 이어져서 생기는 문제가 뭐냐면, 이야기 정리가 안 되어 있으니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 메시지가 불명확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불합리를 지켜만 보지 말고 그에 맞서라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십대 소녀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인가? 그도 아니면 <죽은 시인의 사회> 마냥 당시의 교권을 비판하고 참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일깨우는 이야기인가? 영화의 오프닝으로, 주인공 은희가 애먼 집에 찾아가 뻘쭘한 화를 내는 묘사가 있다. 이건 은희라는 인물의 내면에 켜켜이 쌓인 분노를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 꼭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내내 그런 분위기를 풍겼으니 어느 정도는 제시해야할 거 아냐.

성공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형식을 갖추고 만들어진 그야말로 새로운 영화. 아니면 그에 반대로 다소 전형적이긴 해도 관객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몰입감을 주어 그 뻔함을 잊게 하는 영화. 공개 시기를 기준으로 말해보면 전자는 타란티노나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일 것이고, 후자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같은 작품들일 것이다. 그럼 <벌새>는 어떠한가. 일단 존나 뻔한 이야기다. 독립 영화는 이제 이런 거 그만 해야한다. 십대 또는 이십대의 주인공이 사회적 약자처럼 묘사되며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게 되는 그런 영화. 물론 우리의 실제 삶에서 그런 모습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기에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나,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이런 영화들 너무 많이 나왔던 게 사실이잖아. 스타일이나 테크닉으로써도 새로울 게 없다. 얕은 심도의 촬영이나 빛을 직접 담는 방식, 초저녁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방식 등은 이른바 '감성적'이라는 핑계로 숱하게 만들어졌던 방식이다. 한 마디로 감독 고유의 스타일이란 게 없다. 이제 첫 작품을 만든 감독에게 고유의 스타일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 자체가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너무 많이 봤던 방식인 건 사실이잖아.

그럼 새롭고 신선한 영화는 아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몰입감을 주는 이른바 '재미있는 영화'인가? 그것도 영 아니올시다. 애초 모든 이야기들이 방만하게 늘어져있다보니 연출과 편집으로 살릴 수 있었을 리듬감이라는 것이 별로 없고, 이 리듬감의 부재는 곧 영화적 몰입도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내가 오락 영화들만 보는 사람이 아니다. 사회 드라마도 즐겨 보고 이런 독립 영화들도 좋아한다. 애초 나부터가 독립 영화 경험으로 시작했으니까. 허나, 독립 영화들도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이런 식이면 안 된다.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힘들고 아프다고 징징 짜대는 영화들만 나오면 안 된다. 오락적으로 충만해야 한다. 여기서 '오락'이라는 표현은, 무조건적으로 스펙터클을 제공해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장르적으로 최소한 할 것을 하라는 것이다. 액션 영화면 화끈하게 파괴해주고, 공포 영화면 소름돋는 공포감을 주어야 하며, 이런 종류의 드라마는 인물의 감정을 통한 이야기 전개와 거기서 얻어지는 일종의 장르적 쾌감이 전제 되어야 한다. 근데 이 영화에 그런 거 없음. 그냥 감성적으로 보이는 화면에 감성적인 표정 짓는 아이들 얼굴 담는다고 능사가 아니란 말이다.

작가주의 영화라면 고유의 스타일과 테크닉이 있어야 한다. 타란티노나 웨스 앤더슨이 그러한 것처럼. 아니면 하다못해 마이클 베이처럼. 그도 자신만의 스타일과 테크닉이 있지 않나. 어떻게 보면 마이클 베이야말로 작가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감독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자신만의 인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 애초 그 작가주의를 제창한 누벨바그의 영화인들이 가장 중요시 여겼던 게 바로 그것 아니었나. 근데 <벌새>엔 그런 게 없다. 스타일이 빈 자리에, 오직 작가 본인의 회한만을 가득 채워넣은 영화. 그 자체로 나쁜 영화라고 만은 할 수 없겠지만, 걸작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만큼은 동의하기가 대단히 어렵겠다. 소신 발언이라면 소신 발언이다.

핑백

  • DID U MISS ME ? : 버티고 2019-11-04 14:56:28 #

    ... 기획된 영화라는 거지. 근데 시발 설정과 제목만 좋으면 뭐하냐고. 영화는 결국 밑도 끝도 없이 슬픈 일기장 같다. 끝없는 자기연민의 늪 같은 영화. 얼마 전에 &lt;벌새&gt;를 보곤 비슷한 감상을 남겼었지. 테크닉과 스타일이 뻔한데, 거기에 내용을 작가의 회한만으로 꾹꾹 눌러담아 보는내내 지치는 느낌 같았다고. 나름 소신 발 ... more

덧글

  • 로그온티어 2019/08/31 20:29 # 답글

    제목부터 고전 순문학의 아우라가 느껴지네요
    제목보자마자 상을 퍼다주고 싶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니 제목을 잘 지어야 합니다
  • CINEKOON 2019/09/17 08:10 #

    맞습니다. 막말로 영화 본지 2주가 지났는데도 왜 제목이 벌새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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