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내 영화 특집 5.
비행기에서 볼 영화를 고르는 기준에 대해서는 이미 여기서 설명했다. 근데 그 기준에 따르면 이 영화는 현재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작품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내 개봉을 안 한 작품도 아니거든. 근데 왜 택했냐면... 진짜 그냥 단순한 이유다. 보고 싶은 영화였다. 근데 극장에서 놓친 영화였지. 테리 길리엄이 25년동안 벼르고 별러 찍은 영화면 최소한 한 번은 봐줘야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보게된 영화는...... 안 그래도 반쯤 미쳐있던 테리 길리엄의 영화들 중 가장 미쳐버린 영화인 듯. 거의 무슨 회한에 절여져 미쳐버린 느낌인데. 영화가 두서 없다가도 질서 정연하고, 그러다가도 무슨 미쳐버려 굴러다니는 것처럼 변속 기어 괴랄하게 넣는 영화다.
예술과 자기 존엄성을 위한 광기가 일종의 필요악처럼 묘사된다. 때문에 영화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미쳐버려 스스로를 진짜 돈키호테로 착각하는 늙은 노인에게서 테리 길리엄의 모습을 찾았다. 거의 뭐 감독 오너캐 같았거든. 근데 어째 영화가 점점 진행되면서,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하는 자칭타칭 연출 천재 CF 감독도 점점 맛탱이가 가더라. 바로 그 돈키호테 영감탱이의 영향을 받아서. 그래서 어쩌면, 늙은 노인이 아닌 이 젊은 감독이 테리 길리엄의 초상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쳐버린 노인네는 바로 이 영화 그 자체인 거지.
테리 길리엄 필생의 프로젝트였으나 갖가지 일들로 인해 엎어졌었고, 그러다 또 시작하는가 하면 다른 일들로 또다시 무산되었던 그런 영화. 그리고 그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다가 미쳐버리는 테리 길리엄의 초상이 어째 이 영화 속 주인공들과 너무 잘 맞는다. 문제는 미치려면 곱게 미치든가, 아니면 미친만큼 존나 걸작을 만들어놓고 아득해지든가 했어야하는데 둘 다 못했다는 것. 영화가 너무 너저분하고 때로는 좀 덜 미쳤단 생각마저 든다.
결국엔 자신의 과거에 붙잡혀 미쳐버린 느낌도 드는 작품. 영화의 주인공도 지금 시점에선 천재 소리 듣는 감독이었지만, 과거의 자신이 만들었던 작품에 얽메여 결국엔 파국의 길을 걷는다. 테리 길리엄은 대체 과거 어느 시점의 자신에게 매혹되어 있는 걸까. 유머 감각만 보면 아직도 <몬티 파이튼의 성배> 시절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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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인 怪人 2019/09/21 12:12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