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반 이야기는 심플하다. 이제 막 유망한 정치인으로 기지개를 켜려고 하는 국회의원 남자가 있고, 그 옆에는 그를 성실히 보좌하며 내조하는 아내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딸 하나. 남편의 중요한 선거를 불과 며칠 남기지 않고 있던 어느 날, 바로 그 딸이 실종된다. 한창 유세 운동에 올인해도 모자랄 판에 딸까지 실종되자 여러모로 정신이 없는 부부. 그러면서 꽃피우는 갈등과 분노. 뭐... 딱 여기까지는 심플하다. 여타의 스릴러 영화들 도입부가 다 이런 식이니까. 문제는 그 뒤가......
복잡해진다. 아니, 복잡해지는 건 괜찮다. 교통 정리만 잘 해낼 수 있다면. 근데 그게 안 됐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정확히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애매해진다. 이건 남편에게 배신당한 아내의 분노와 복수 스토리인가. 아내와 정치 사이 노선에서 흔들리는 중년 남성의 위기를 그린 영화인가. 아니면 딸과 딸의 동성 친구 간 벌어지는 우정 이야기? 그도 아니면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동성 연애 스토리? 불륜 이야기? 범인에게 습격 당하기까지하니 일반적인 범죄 영화?
게다가 영화 전개 졸라 빨라. 제시되는 감정과 이야기들도 많은데 속도까지 빠르니 뒷감당이 안 된다. 아, 어려운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나 인물들의 감정이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되기는 한다. 문제는 다시 이야기하지만 너무 전달하고자 하려는 게 많다는 거지.
딱 그 생각은 들었다. 난 아직 자녀도 없고, 미혼이지만. 나의 아이를 기른다는 것. 그리고 내가 길러낸 그 아이에 대해서 내가 부모랍시고 전부를 알 수는 없다는 것. 말이 자식이지, 그냥 하나의 다른 '인간'인 거잖아. 한 길 물 속은 알아도 열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했다. 그게 자식이나 부모처럼 핏줄로 이어져있다해서 훤히 보일만한 건 아니라는 거지. 때문에 손예진이 연기한 영화 속 주인공이 딸에 대해 알아갈수록 정신적 데미지 받는 거, 이해 됨.
타이틀 롤은 어쨌거나 손예진의 것이지만, 그럼에도 김주혁이 자꾸 생각난다. 생전에도 막 좋아했던 배우는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의 죽음 이후 그를 볼 때면 참 마음이 벌겋다. 하긴, 또 그럴만도 한 것이... 사망 직전에 찍었던 영화들 중에 달달한 영화가 별로 없었잖아. <방자전>이나 <광식이 동생 광태> 같은 영화들이 아니라, <공조>나 <독전> 속 독기 어린 모습들로 더 남게 되어서. 이상하게도 영화 속 그를 볼 때면 마음이 참 그렇다.
결론. 영화는 그냥 투박한 그리스 비극이다. 투박한 게 문제임. 그리스 신화들이 다 옛날 이야기라서 무시할 수도 있는데, 그 자체로 존나 세련된 구성인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니까 현대까지 그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넘어오고 있는 거겠지. 근데 이 영화는 그냥 거칠고 투박함. 그래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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