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5 02:07

소스 코드, 2011 대여점 (구작)


분명 군인 신분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 중이었는데, 떠보니 기차 . 게다가 앞자리에 앉은 생판 처음 보는 여자는 내게 아는 체를 한다. 사태 파악이 끝나기도 전에 기차는 미련없다는 폭발해버리고, 주인공 콜터는 대체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채 죽음을 맞게 된다. 근데 웬걸, 여기서 끝난 알았는데 떠보니 이번엔 캡슐 안이잖아. 봐도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생긴 설명 담당 박사 , '자네는 소스 코드로 8분동안 과거에 사는 거야'


8분이라는 시간 제한 설정만 빼면 <엣지 오브 투모로우> <사랑의 블랙홀> 연상되는 영화다. 계속해서 같은 시간을 살아야하는 남자의 이야기니까. 다만 <엣지 오브 투모로우> 그걸 액션 장르의 외피를 두른채 하는 사랑 이야기였고 <사랑의 블랙홀> 코미디 장르로 포장된 일종의 교훈극이었다면, <소스 코드> 주인공 콜터 대위의 인간적인 면모와 인간애에 초점을 맞춘다.


콜터 자체는 존나 불쌍한 인물이다. 내가 지금까지 영화들 중에 이토록 기구한 팔자에 빠져있던 주인공은 별로 같다. 이런 봤던 벌써 잊었어? 아프가니스탄 전투에서 몸의 절반을 잃고 의식 불능에 빠진 것만으로도 이미 기구한 팔자의 정점을 찍는데,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들에겐 그가 그냥 전사 처리 되었으며, 육체의 기운은 사그라들었을지언정 정신만은 말끔하건만 그마저도 제대로 쉬지 못한채 영원불멸하게 굴려질 위기에 처한다. 이는 어쩌면 죽어서도 굴려지는 국가 공무원의 비애를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인 같아 웃기면서도 씁쓸하기도. 군인에 대한 예우를 이야기할 항상 거론 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인데, 어쨌거나 미국도 어쩔 없나 보다. 애초에 '군인'이라는 직업은 죽는 것이 상정되어 있는 일일테니까.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도 말했잖아. 군인들이 트럭째로 폭발해 죽어도 아무도 관심 가질 거라고. 애초에 그건 계획의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말이 계획이지 의역하면 죽는 당연한 존재들일 테니까- 라는 뜻이었겠지.


이야기가 전통적으로 갖는 기본적인 잔재미들이 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사랑의 블랙홀> 그렇잖아. 계속해서 도전하게 되는 게임 스테이지의 재미랄까. 어느 시점에 어느 부분에서 어떤 튀어나올지에 대해 점점 익숙해져가는 재미. 물론 계속 반복만 하면 재미도 얼마 못가지. 그래서 영화는 주인공에게 주어진 8분을 계속해서 변주해나간다. 그리고 그걸 재밌게 잘했다.


추리로 범인을 옥죄는 미스테리 장르로써는 심심한 감이 없지 않다. 악당의 정체는 쉽고 그의 동기는 단선적이다. 허나 이건 만든 각본의 결과물이 아니다. 내가 봤을 , 감독이나 제작진들이 부분에 관심 없었던 같음. 연쇄 폭탄 테러와 테러범을 잡기 위한 추리 과정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밑그림에 불과할 . 때문에 나는 영화가 결국 인본주의적 시각을 다루는 데에 신경을 쓰고 있다 생각한다. 


나는 이미 죽었지만, 그리고 그들 역시도 이미 죄다 죽었지만. 한마디로 이미 모든 끝난 게임이지만. 그렇게 가상 현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임 NPC 같은 사람들이라해도 어쨌거나 나와 번쯤 눈을 마주치고 말을 섞어본 그들을 구하고자 하는 콜터의 마음. 이미 연쇄 폭탄 테러범을 검거하는 임무는 성공했건만, 굳이 콜터는 마지막으로 소스코드 속으로 떠나고자 한다. 순전히 번이라도 그들을 구해보기 위해서. 또는 번의 소스코드 과정 속에서, 콜터는 그들이 모두 죽는 모습 밖에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번이라도 그들을 모두 구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콜터는 아버지에게 끝까지 전하지 못한 말들도 해야한다. 그리고 시종일관 나를 보며 웃어주었던 앞자리의 그녀에게 따뜻한 말도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는 그걸 한다. 세상도 구하고, 사람들도 구한다. 아니, 사람들을 구함으로 인해 세상이 구해진다. 그래서 영화 결말부에 나오는 시간이 멈춘 쇼트는 아름답다. 8분이라는 정말 짧은 시간 동안에, 그저 열차 칸을 같이 탔다는 외에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을 구해낸 콜터의 모습에 나도 기뻤다. 


여러모로 인본주의적인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연출도 존나 잘했고. 사실 그래서 <워크래프트> 영화를 보러 극장엘 갔던 거지. 게임 별로 해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지만, 오직 던컨 존스라는 이름 하나 믿고 표값 냈던 거지. 그렇게 뒷통수 세게 맞을 줄은 몰랐었지만. 하여튼 흑역사는 잠시 접어두고, <소스 코드> 정말 최고였다. 극장에서 처음 순간부터 지금까지 대략 다섯 번은 넘게 같은데, 때마다 좋아지는 아니라 그냥 한결같이 좋다. 언제나 나의 올타임 베스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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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09/25 03:52 # 답글

    소스코드를 봤을 때, 끝에 가서는 뇌 한켠이 열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정말 좋았어요. 근데 한편으로는 결말 개연성이 떨어져서, 영 찝찝한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정말 재밌고 좋은 영화지만... 그놈의 결말 개연성이... 특히 당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고 있던 지라, 컴퓨터로 다중차원이 열린다는 개념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죠. 아 물론 사이버스페이스는 만들어질거라 믿습니다.

    이거랑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생각나네요. 그건 결말이 갑자기 술술 풀려서 의문스러웠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거 결말해석을 [토탈리콜]처럼 '주인공의 꿈이다'에 맞춰보는 편입니다. 주인공이 거기 갇혀서 상황이 자기 뜻대로 술술 풀리는 꿈을 꾸는 거죠. 만일 이게 정설이라면 필립 K 딕이 늘 그리던 주제와 비슷해질 겁니다. 꿈을 꾸고 있다는 절망적 현실을 견딘다기 보다는, 꿈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거죠.
  • CINEKOON 2019/09/29 16:27 #

    그거 그... <매트릭스>도 당장 떠오르긴 하지만 얼마 전 봤던 넷플릭스의 <러브 데스 로봇> 중 한 에피소드가 또 떠오르네요. 독수리 자리 너머였던가.. 아- 다시 생각해도 끔찍해라
  • 포스21 2019/09/25 15:00 # 답글

    흠... 좋은 영화인 모양이네요. 나중에 케이블로라도 봐야겠습니다
  • CINEKOON 2019/09/29 16:26 #

    엉엉 제발 케이블로 보지 마시고 당장 제대로 구해 꼭 보세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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