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6 15:59

힘을 내요, 미스터 리 극장전 (신작)


<7번방의 선물>의 연장선 상에 있는 영화다. 일단 우리가 흔히 아는 '영구'나 '맹구' 같은 노골적 바보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부녀 관계에 초점을 맞춰 끝내는 신파로 빠진다는 점까지. 다만 <7번방의 선물>이 여러 실제 사건들을 재구성 하되 영화 자체로는 철저히 허구였다면,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2003년 우리에게 벌어졌던 또다른 인재(人災)를 끌어와 영화에 그대로 녹여냈다는 점이 다르겠네.

'원조 코미디 맛집'이라고 홍보했던 것치고는 코미디가 너무 허약하다. 과거 <선생 김봉두>나 <이장과 군수> 같은 차승원 표 코미디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를 보며 정말이지 진심으로 웃고 싶었다. 근데 영화가 하나도 안 웃긴다. 공포 영화에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라는 비평이 공포라면, 코미디 영화에겐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라는 비평이 제일 쓰라리리라. 근데 이 영화엔 진짜 그 한마디를 꼭 해야되겠다. 정말로 안 웃기더라. 최근 이병헌 감독의 작품들로 대표되는, 이른바 말맛을 중요시 여기는 코미디에 끼는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찰리 채플린 영화들처럼 슬랩스틱을 주력으로 깔고 있지도 않다. 아니면 하다못해 전통적인 코미디 방식인 '타이밍'으로 웃기는 재주라도 가졌던지.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바보 주인공을 학대하는 것만으로 코미디를 빼내려고 한다.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웃으라는 건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공포. 이계벽 감독의 전작인 <럭키>를 보면서는 적어도 즐거웠었다. 정확히 어떤 장면이 재밌었는지는 금세 휘발되어 기억에서 잊히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보면서 몇 번인가는 웃었던 기억이 난다. 허나 이 영화 보면서는 도저히 웃기가 힘들더라. 우리의 바보 몸짱 주인공이 조무래기 깡패 삼총사 멱살 잡을 때 웃어야 하는 건가.

지적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바보 취급하며 코미디를 만들더니, 이제는 백혈병에 걸린 소녀를 주인공으로 데려다가 각종 동정심 유발로 눈물을 유도한다. 투병 생활 때문에 머리를 빡빡 밀은 소녀에게 빡빡 대머리라고 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쳐도, 이후 이 소녀가 등판할 때마다 그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눈물 짓는 조단역 캐릭터들을 보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아니... 소녀가 갑자기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민머리를 드러낼 때마다, 주위에 있는 모든 단역 캐릭터들이 그들에게 갑자기 잘해준다. 심지어 그들을 체포했던 경찰마저도! 모자 벗고 사랑 넘치는 부녀 코스프레 한 번 때려주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 측은하게 바라보며 밥도 사준다니까 글쎄!

안다. 코미디라는 것, 그러니까 농담이라는 것의 기본 속성에는 특정 집단에 대한 무지 또는 조롱이 내포되어 있다고. 허나 그게 언제나 코미디의 주 재료였다고 해서 언제나 우리가 그걸 용인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내키는 농담이 있고 내키지 않는 농담이 있다. 보통 내키는 농담은, 그 조롱의 범주에 있는 사람이 보았을 때 그 코미디가 스스로도 느끼는 다른 사람들의 차별 어린 시선을 함께 깔 때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내키지 않는 농담은, 그런 거 없이 그냥 그 조롱의 범주에 있는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롱하기만 하는 거지. 근데 이 영화가 그런 느낌.

중간에 린치 당하는 여고생 캐릭터도 나오고, 카메오로 이승엽 선수도 나온다. 뭘 하고 싶었던 건지는 알겠다. 감독은 연대의 힘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거든. 약한 자들이 똘똘 뭉치고 서로에게 힘을 주며 함께 상승하는 바로 그런 것. 하지만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거기서 나온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 소녀가 탄 구급차를 도로 위 많은 차들이 막고 서 있을 때. 여기서 연대의 힘을 보여주려 했다면, 그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의 트라우마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대구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면 그 도로 위 수많은 자동차들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구급차를 위해 길을 터줬어야 했다. 그게 맞는 거잖아. 누가 시켜서 억지로 열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인식하고 열어줘야 그게 연대고 그게 치유인 거잖아. 근데 영화에서 그 역할을 하는 건 대구를 나와바리로 둔 조직 폭력배들이다. 심지어 영화 막판에 뉴스 기사로 그 조폭들을 치하 하기도 한다고! 그 장면 보면서는 멍- 하더라. 순간 조폭들을 미화했던 조폭 코미디의 시대가 다시금 도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 때문에.

영화의 반전 아닌 반전이라 할 수 있을,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라는 카드. 효과적으로 사용되기는 커녕 너무 억지로 사용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여기에 관객 눈에서 뭔가를 계속 짜내려는 듯한 영화의 설계도가 보이는 것 같아 거북한 건 덤.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여전히, 이런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구나. 진짜 보는 내내 힘들어서 몸 베베 꼬았던 기억 밖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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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미스터 주 - 사라진 VIP 2020-04-17 01:4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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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10/06 19:11 # 답글

    대구지하철 참사라. 10년뒤면 세월호 사건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겠군요. 그때는 트라우마 걸린 어른이 발작하는 걸 보고 코미디라 할 겁니다.
  • CINEKOON 2019/10/12 19:23 #

    이미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생일>로 나왔지요. 다만 이 영화처럼 코미디는 아니었지만... 또 모르죠. 코미디 장르로써 웃음을 주는 동시에 감동까지 전할 수 있는 세월호 영화가 나올지도. 하지만 그러기엔 그 문제가 아직도 온전히 채 해결되지 않았고, 대구 지하철 참사와는 조금 그 재난의 결이 다르다는 점에서 안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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