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드가 라이트의 코네토 트릴로지 중 첫 챕터에 해당하는 영화. 각각 두번째와 세번째 영화인 <뜨거운 녀석들>과 <지구가 끝장나는 날>은 다 리뷰 했었고 이 영화 역시 거의 나온 해에 봤던 기억이 나는데 어쨌거나 리뷰는 가장 마지막에 하게 되었다. 예전에 봤던 기억으로 리뷰하는 건 좀 그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느껴져서. 하여튼 꽤 오랜만에 다시 본 기념으로 쓰는 리뷰.
에드가 라이트는 첫 작품부터 빛났다- 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이후 나온 <뜨거운 녀석들>이나 가장 최근작인 <베이비 드라이버> 역시 뛰어난 작품들이었지만, 어쨌거나 에드가 라이트의 모든 정수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가 이미 품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바깥의 각종 대중 문화들을 영화 안쪽으로 끌고 들어와 인용 또는 패러디하는 방식. 생략할 때는 과감하게 생략해버리고 그 와중에 리듬감을 풍부하게 살리는 편집. 스코어와 삽입곡을 적절히 사용하는 패기. 여기에 지극히 영국스러운 장르 로컬라이징과 정치적 함의. 그리고 유머의 8할을 책임지는 캐릭터들의 향연. 누가 뭐래도,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에드가 라이트의 자랑스러운 장자(長子)다.
에드가 라이트 그를 가이 리치, 쿠엔틴 타란티노, 매튜 본과 같은 분류로 묶게 만든 편집이 재치있다. 주인공이 엄마 구하고 계부는 죽이고 헤어진 전 여자친구까지 구해야한다며 자기 계획 브리핑하는 장면은 볼 때마다 재미있다. 이미 다른 감독들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많이 보았던 건데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처럼 재미있진 않다. 다른 영화들이었다면 계획 수정될 때마다 다시 브리핑하는 장면에서 계속 같은 쇼트들을 반복했을 텐데, 이 영화는 그 쇼트들이 죄다 다른 테이크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보다보면 좀비 연기를 점점 대충하고 있는 빌 나이의 모습이 눈에 띄는데, 그게 너무 웃김. 빌 나이 대가리 빠개는 주인공들 리액션도 너무 성의 없어져서 웃기고. 그야말로 B급의 정수를 살린 연출. B급의 포인트는 그냥 대충 만드는 게 아니라 대충 만든 척을 겁나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그리고 잘 하는 거다
캐릭터들도 존나 잘 짬. 주인공 콤비 숀과 에드는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그 중 에드는 볼 때마다 빡치면서 정든다. 친구로서는 꽤 괜찮은 놈인데, 같이 사는 사이면 안 괜찮을 것 같은 놈. 좀비들 몰려와서 별 지랄날 때마다 '2초만 기다려'라고 하는 것도 백미면서 개빡침. 아, 그리고 주인공 파티원 중 해리 포터 닮은 새끼. 그 새끼는 볼 때마다 쥰내 패버리고 싶음. 배우가 연기 잘 한거지, 뭐.
영화 속 좀비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도시의 사람들은 삶에 의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서비스직인데도 시종일관 멍한 표정으로 손님들의 물건을 계산하는 마트 카운터 직원부터,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서도 영혼 없는 동태눈깔로 어딘가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인 사람들. 여기에 'Dawn of the dead'를 패러디한 것이 분명한 이 영화의 원제 'Shaun of the dead'라는 타이틀이 나올 때 마치 좀비처럼 느적느적 걷는 사람들. 이 그냥 지나가는 인물들처럼 보이는 배우들이 모두 좀비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영화 내내 나온다는 점도 굉장히 재미있다. 뭐, 하여튼 이미 이렇게 살고 있는데 저렇게 좀비로 사는 거랑 뭐가 다르냐-라고 묻는 듯한 감독의 미적지근 뜨거운 태도가 좋으면서도 존나 웃기고.
에드가 라이트가 이런 영화 하나 더 해줬으면 좋겠다. <베이비 드라이버>도 좋았지만, 그럼에도 이런 B급 영화적 패기는 없었거든. 지금 찍고 있는 차기작도 이 영화보다는 <베이비 드라이버>의 세련된 느낌에 더 가까운 영화 같던데. 어째 거대 제작사들은 존나 나사 빠지고 풀려있어서 매력적이었던 사람들의 그 나사를 다시 조이는 데에만 열중 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최근에 가이 리치도 제정신으로 돌아왔잖아. 좀 븅신 같이 돌아오라고, 이 양반들아!
덧글
로그온티어 2019/10/06 19:27 # 답글
에드가 작품은 아니지만 '비슷'합니다
CINEKOON 2019/10/12 1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