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안 감독은 장르를 넘나드는 재주꾼이자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였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쭉 펼쳐 찬찬히 뜯어보면 진짜 이게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인가- 싶어질 정도로 장르가 왔다 갔다 거든. 그는 가족 드라마도 찍었고, 서부 영화도 만들었으며, 무협과 수퍼히어로물을 오갔다. 나중엔 음악 영화 비스무리한 것도 찍고, 중간엔 치정 멜로와 에스피오나지 장르를 결합시킨 영화도 하나 연출 했었지. 아, 퀴어 영화도 있구나. 하여튼 그가 넘나든 건 국적 뿐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
반면, 주제적인 면에서는 항상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는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항상 집중 했으며, 그 중에서 특히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처럼 보였다. 근데 다 떠나서 그의 영화들은 항상 이런 느낌이었지. '가질 수 없는, 또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이었다고. 그러던 이안이 뜬금없이 <빌리 린의 롱 하프 타임 위크>부터 최신작 <제미니 맨>까지, 갑자기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줄창 하고 앉아있네?
이런 영화가 없었던 게 아니다. 복제인간 범주에서 액션을 놓고 보면 마이클 베이의 <아일랜드>와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6번째 날>이 있었고, 드라마적인 측면으로 기준점을 옮기면 <움>이나 <네버 렛 미 고>가 있었다. 그리고 꼭 복제인간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젊은 나'와 '나이든 나'가 맞서 싸우는 걸로는 라이언 존슨의 <루퍼>도 있었잖아.
그 영화들은 장르적 재미나 완성도에선 조금씩 달랐지만, 그럼에도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상투적으로 느껴지지만 그만큼 영원불멸한 주제이기도 한 '인간의 존엄성'. 그래, 복제인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존엄성 이야기하는 거 좋다. 애초 그거 이야기하려고 만든 틀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 뒤로 따라올 한 인간의 정체성 고민에 대한 이야기도 좋다고. 근데 최소한 이 정도 규모에 이 정도 기술력 들여 한철 장사 하고 싶었으면 좀 다른 것도 함께 끼워 팔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냥 기술력 전시하려고 만든 영화로 밖에 안 보인다. 핵심은 120FPS로 촬영된 HFR 영화라는 점과 윌 스미스에게 적용한 디에이징 기술이었을 것. 그 중 전자는 확인하지 못했다. 나 이거 그냥 일반관에서 봤거든. 근데 설사 HFR로 상영된 버전 봤어도 평가가 크게 달라졌을까 싶음. 나 <호빗 - 뜻밖의 여정>도 HFR 별로였거든. 애초 HFR 효과가 좋아봤자 이야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선에서는 이미 끝난 거기도 하고.
디에이징 기술은 애매하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젊어진 사무엘 L 잭슨 얼굴도 봤고, 젊다못해 어려진 얼굴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봤다. 좀 있으면 넷플릭스의 자본을 등에 업고 마틴 스콜세지가 왕년의 갱 삼인방 얼굴들을 전부 청춘 개조한 영화가 나오기도 하잖아? 하여튼 이제 디에이징 기술은 더이상 신기술이 아니다. 아니, 신기술이긴 하지. 허나 신기술이긴 신기술이되 아예 처음 보는 요지경이 아니라는 거다. 근데 이번 영화에서의 젊은 윌 스미스 얼굴은 뭔가 어색하다. 분명히 나쁘지는 않은데, 보는 내내 약간 신경 쓰이는 정도? 당연히 불쾌한 골짜기까지 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보는 내내 배우 윌 스미스의 연기가 아닌 컴퓨터 책상에 앉아 주름 제거한 윌 스미스 얼굴을 열심히 그렸을 CG 전문가들과 애니메이터들 손길이 더 보이는 것 같았음.
영화 보며 놀란 게 딱 세 가지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영화 시작 전에 뜬 제리 브룩하이머의 인장. 이 영화도 제리 브룩하이머가 손댄 작품이구나. 그걸 알고 봐서 그런지, 영화 중간 중간에 종종 8,90년대 액션 바이브가 터져 나온다. 좀 웃긴 게, 앞서 비판점들을 더 이야기하긴 했지만 난 콜롬비아에서 펼쳐진 오토바이 추격전 꽤 재밌게 봤다. 뭔가 쌈마이하면서도 고급진 연출이 좋았음. 오토바이 두 대가 요리조리 신명나게 달리는데 그걸 롱테이크로 담아낸 부분들이 굉장히 인상적. 근데 사실 그런 거 다 떠나서 내가 약간 이런 취향 있거든. 8,90년대 액션 영화의 말초적 쾌감 같은 거 있잖아. 적당히 쌈마이 같으면서. 하여튼 그래서 좋았던 것 같고...
두번째 놀란 건 클라이브 오웬 나오는 거 몰랐는데 나왔을 때. 근데 클라이브 오웬의 등장 자체에 놀랐다기 보다는 이제 이 배우도 왠지 니콜라스 케이지의 길을 걷는 것 같아 슬퍼서 놀랐다. 아저씨 왜 이렇게 요즘 쌈마이한 영화의 악당들로만 많이 나와요? 아저씨도 혹시 부채 많이 잡히셨나요?
마지막 세번째는 바로 젊어진 윌 스미스의 얼굴. 위에서 디에이징 기술 깠으면서 왜 놀랐냐고? 분명 어색하긴 한데... 그래도 젊은 윌 스미스가 너무 잘 생겨서... 너무 잘 생겼더라... 내가 윌 스미스였다면 이 영화 보고 아쉬웠을 것 같았다. 붙잡지 못했던 청춘을 다시 눈 앞에서 목도 했으니 뭔가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 아쉬웠을 것 같은 느낌... 영화 완성도가 절벽이라 아쉽진 않았을까?
하여튼 이미 이골이 날 때까지 사골로 끓였던 소재를 가지고 또 뻔한 이야기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수 밖에. 결국 부모, 특히 아버지가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히는데 그것 자체도 뻔해보이고. 액션은 얄궂고. 전개도 맥을 탁탁 끊는다. 아니, 세상에 어느 누가 정부 집단의 추격을 받으면서 그런 좋은 비행기 타고 다니며 도망가요. 나였으면 복제인간이고 뭐고 그거 타고 중국 가서 존버한다. 요즈음의 중국을 보면 미국에서 온 정부 변절자 웰컴해줄 것 같던데.
뱀발 - 여자 주인공이 존 맥클레인의 딸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 충공깽.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얼굴 왜 변한 것 같지? 나 왜 못 알아봤지?
덧글
로그온티어 2019/10/12 20:11 # 답글
CINEKOON 2019/10/26 13: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