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만 해도 벌써 세번째 타임루프 물이다. 물론 셋 다 올해 개봉한 신작들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모두 올해 리뷰하게 되네.
<사랑의 블랙홀>과 <소스 코드>도 그랬지만, 기본적으로 타임루프 물은 비디오 게임의 플롯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야기의 특정 지점들마다 세이브 포인트가 있고, 이후 게임 플레이 도중 사망할 경우 바로 그 세이브 포인트에서부터 다시 재시작 해야만하는 플롯. 다만 <사랑의 블랙홀>이 그것을 로맨틱 코미디의 낭만으로, <소스 코드>가 인간적인 감동 드라마로 푼 것과 다르게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그 설정을 극단적으로 밀고나간 케이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이 영화, 비디오 게임 같다.
타임루프 물로써 주는 재미가 일단 1차적으로 출중하다. 이 영화의 기초 설정은 모든 예비역들의 공포 아닐까? 소령으로 군 생활하다 눈 떠보니 이등병 약장을 달게된 꼴이라니. 바로 그 점에서 타임루프 물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편집이 유머로 산화하기 시작한다. 죽고 깼는데 이병이야. 또 죽고 또 깼는데 또 이병이야. 돌고 돌아도 어느새 훈련소 입소 첫 날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그 악몽. 그것을 이역만리 톰 크루즈가 실천할 줄이야. TMI지만 훈련소 입소 첫 날 이병 약장 받는 건 또 아니잖아? 그래도 소령이었으면 기초 군사 훈련은 했을 거 아니냐
존나 웃긴 건, 톰 크루즈의 연기가 거기서도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상륙 작전 1회차 플레이 때의 톰 크루즈 모습은 누가 봐도 얼 타는 이등병처럼 밖에 안 보인다. 이건 그냥 배우가 연기를 존나 잘 한 거다. 1회차 때는 분명 어리버리 답답한 이등병인데 이게 2회차, 3회차 이어질수록 표정과 그 테만은 병장급으로 바뀌어 간다. 에밀리 블런트의 연기도 출중 했지만, 누가 뭐라해도 이건 톰 크루즈가 잘 따먹은 것.
주인공의 이름이 빌 케이지인데, 그 중에서도 그의 성씨가 새장 또는 철창을 의미하는 'Cage'를 연상케 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사실 불교의 윤회 사상 모티프를 비슷하게 가져온 걸로도 보이는데, 바로 그 점에서 주인공이 철창에 갇힌 것 같거든. 자신의 운명이라는 철창. 남들의 죽음을 계속해서 봐야하고, 그 안에서 자신 역시 죽음의 고통을 끈질기게 받아야한다. 이게 무간지옥이 아니고 무어냔 말이다.
엑소 수트 등의 메카 디자인이 뛰어나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떠올리게 하는 상륙 작전의 묘사가 재미지다. 그럼에도 꼭 까야 하겠는 건, 외계인 디자인이 너무 구리다는 거. 이건 뭐... 알파니 뭐니 하는 것들은 그냥 크로키로 대충 그린 똥강아지들로 밖에 안 보이고 그 중 두목 대갈통이라는 오메가 역시 이거 그냥 저그 해처리 같은 느낌 아니야? 도대체 저 놈들을 어떻게 이길까 하는 의문이 딸려올 정도로 강캐들이지만 디자인은 죄다 좁밥들 같음.
뜬금 없지만 난 이 영화를 치매 섞인 멜로 드라마 메타포의 일종으로 본다. 남자와 여자가 추억을 계속 쌓아가는데 전쟁도 추억이라면.. 정작 여자는 그걸 기억 못 해내는 그 참담함. 영화 자체는 외계인들과 싸우는 SF 블록버스터의 형식이지만,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후반부 대화들은 가만 듣고 있자니 어째 치매 걸린 노부부 이야기 같아 좀 씁쓸하기도 하고.
잘 만든 영화다. 뻔한 소재도 요란하게 잘 만들면 뻑적지근 하게 재탄생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 제아무리 소령이었다한들 이등병 약장 달고 자대배치 받는 순간 그동안의 짬밥이 무색하게 다시 얼타게 된다는 교훈을 직접 보여주는 영화. 그리고 그걸 톰 크루즈가 존나 잘 소화해내는 영화. 쓰고보니 괴이하네.
덧글
포스21 2019/10/12 20:38 # 답글
그리고 치매.. 에 비유하셨는데 , 실은 타임루프에서 연애요소가 끼게 되면 어쩔수 없다고 봅니다. 한쪽은 기억을 갖고 있지만 다른 쪽은 기억 못하는 관계...라는게 딱 그걸 연상시키니까요.
그러고 보니 올해 영화는 아니지만 해피데스데이... 도 꽤 재밌었습니다. ^^ 전 좀 뒤늦게 봤어요.
CINEKOON 2019/10/26 13:40 #
sid 2019/10/12 21:33 # 삭제 답글
포스21 2019/10/26 16:08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