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3 16:21

킥애스 - 영웅의 탄생, 2010 대여점 (구작)


나는 수퍼히어로 장르를 좋아한다. 사실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블이니 DC니 뭐니 하지만 그걸 다 떠나서 그냥 이 장르를 사랑한다. 근데, 웃기는 말이지만 그 중에서도 이 영화를 제일 좋아한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엔드 게임> 마냥 격돌하는 것도 아니고, <저스티스 리그> 속 캐릭터들처럼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수퍼히어로들이 주인공인 영화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킥애스>를 좋아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가 수퍼히어로 장르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툭하고 떨어진 외계종자 메시아도 아니고, 방사능 거미에 물린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가진 돈만으로 질식할 것 같은 수퍼 리치도 아니다. 영화 중간 벌어진 굴욕적인 패배 때문에 온몸에 철심 좀 박은 것 빼면 그리고 그 철심도 아다만티움 아니고 정말로 주인공은 아무런 초능력이 없다. 배트맨이나 아이언맨도 그렇지 않냐라고 하면 할 말 없긴 한데 걔네는 어쨌거나 천재적인 구상력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자본력이 있었잖아. 그거 다 떠나서도 인간 초월급 무술 유단자이기도 했고. 거기에 비하면 정말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무런 능력이 없다. 심지어 직업도 아직 고등학생이야.

주인공이 아무런 수퍼 파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수퍼히어로 장르의 본질이 드러나는 경우다. 수퍼히어로 장르의 본질은 여러 초능력자들의 스펙터클 파티 아니냐고?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정서를 이야기하는 거다. 수퍼히어로 장르의 정서. 뭐냐고 묻는다면, 착하고 약한 이들을 돕고 나쁜 불량배들에게 한 방 먹여주는 것. 남을 돕고 무뢰배들을 무찌르르 쾌감. 나는 그게 수퍼히어로 장르의 본질이라고 보는 거거든.

영화 중반부에 펼쳐지는 갱단원 셋과 주인공의 대결이 그래서 의미있다. 데이브는 아니, 킥애스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웬 남자 하나가 떡대 세 명한테 죽도록 두들겨 맞고 있는 광경. 그 떡대 중 하나가 킥애스에게 소리친다. "네 일이 아니니 빠져!" 그리고 거기에 대한 킥애스의 대답은, "이제 내 일이야!"

주인공은 정말 처절하게 쳐맞는다. 간혹 불량배들에게 유효타를 먹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때린 횟수보다 맞은 횟수가 더 많다. 주위의 구경꾼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 여기서 미친 개처럼 싸우는 킥애스. 그에게 떡대 대장처럼 보이는 이가 칼을 꺼내며 묻는다. "아무도 모르는 남자 하나 때문에 길거리에서 개죽음 당하겠다고? 너 미친 거 아니냐?" 그리고 여기에 이어지는 주인공의 대답이 걸작이다. "셋이 한 명을 패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잖아. 여기서 말리는 내가 미친 거야?" 아- 나는 이 장면이 정말로 좋다. 이 장면은 그냥,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 전체를 대변하는 말처럼 느껴지거든.

그 밖에도 영화가 그냥 존나 내 취향이다. 유치뽕짝인데 키치한 맛이 있는 게 좋고, 처절한 루저 정서가 그 밑바탕이라 더 좋다. 여기에 무늬만 수퍼히어로 장르 같았던 이 영화에 그나마의 수퍼히어로 장르적 쾌감을 보충해주는 빅 대디 + 힛 걸 콤비의 무쌍도 좋아함. 다들 힛 걸 액션씬을 좋아하던데, 나는 그 못지 않게 빅 대디의 창고 털이 액션씬도 좋아함.

속편도 나쁘게 보진 않았지만, 역시 1편 만한 게 없다. 음악도 좋고 유머도 좋고 그냥 다 좋음. 언제나 사랑해, 나의 수퍼히어로.

덧글

  • 로그온티어 2019/10/13 20:07 # 답글

    킥애스 영화는 데드풀 순한맛이고, 진짜는 코믹스 오리지널이죠. 저는 그거보고 하드해서 깜짝놀랐습니다. 고어나 폭력의 묘사 뿐 아니라 찌질함과 어리석음도 배로 증가하거든요. 팩트폭력의 연속이라고 해야 하나. 코믹스 보고 나서는, 저는 오히려 영화판을 안 좋아합니다. 아직도 킥애스 영화판은 슈퍼히어로 계의... 스콜세지 작품이 될 수 있었다고 봐요.
  • CINEKOON 2019/10/26 13:40 #

    전 오히려 적당히 순한 영화판이 더 좋더라고요. 그나저나 요즘 스콜세지 영감님 수퍼히어로 영화에 치를 떠시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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