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8 15:21

가장 보통의 연애 극장전 (신작)


"너 남자한테 꼬리치고 다니는 걸레잖아."
"넌 바람난 여자 잊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꼬리 흔들며 불쌍하게 찌질대는 병신이잖아."

우리에겐 언제나 과거가 있고, 우리는 언제나 상대방의 그것을 확인하려 든다. 내가 저 남자의 몇번째 여자친구인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키스가 저 여자에겐 몇번째일지를 항상 궁금해하고 확인하려 든다. 허나 그런 질문들은 모두 관계에 있어 결국 화만 부를 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오히려 바꿔말하면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내가 상대의 마지막 결과물, 마지막 도착지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과거의 그것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바로 지금의 이것 아닌가.

사랑은 항상 추억을 동반하고, 우리는 그 추억을 뜯어먹으며 산다. 그 과정의 아름다움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지금의 것이어야 한다. 내 연인의 과거 연애와 예전 그 때에 상대가 내게 던진 말들. 그것들에 메여있다면 현재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칠 수 밖에. 또 반대로, 너무 찬란했던 과거에만 묶여 있다보면 현재의 솔직한 싫증과 피로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밖에. 때문에 사랑이란 언제나 과거의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이 자리에 놓여있는 것이다.

결혼식 날짜 잡고 청첩장까지 돌린 상태에서 느닷없이 예비 신부의 외도를 목격한 재훈. 그런 재훈은 하루하루를 술김에, 혹은 술덕에 살아간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집 거실에 엎드려 누워 술에 무친 잠에서 깬 재훈. 그 앞에 웬 고양이가 태연히 지나간다. 고양이를 분양받은 적도, 키운 적도 없는데! 재훈은 처음엔 고양이를 무시하다가, 나중엔 잡으려 온 집안을 누비다 실패한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그냥 그 고양이의 존재를 인정해버리는 재훈. 그는 고양이의 출처엔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고양이를 기른다. 아니, 냅둔다. 고양이 사료를 사고 장난감을 산다. 그냥 그렇게 냅둔다.

고양이는 재훈의 과거다. 재훈은 그걸 애써 무시하다가, 이내 집착했고, 나중엔 그냥 받아들여버렸다. 그리고 그냥 냅둔다. 이후, 결국 그 고양이는 재훈의 옛사랑 수정과 함께 떠난다. 인간이기에 집착할 수 있다. 붙잡고 엉엉 울지도 모른다. 허나 어느 순간 그걸 그냥 냅두게 되면 과거는 흘러가기 마련이다. 다소 늦었지만, 어쨌거나 재훈은 그걸 알게 된다.

그리고 집안에 들이닥친 고양이처럼, 선영이 재훈의 삶에 들이닥친다. 녹록치 않은 관계에 둘의 성격 역시 엇갈렸지만, 그럼에도 결국 사랑하게 되지 않나. 맞아, 사랑은 결국 결과론적인 것이다. 성격이 잘 안 맞는 둘이 만나 사랑하게 되면, '오히려 서로 달라서 잘 맞아요'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반대로 성격이 너무 똑같은 둘이 만나 사랑하게 되면, 그 결과는 '성격까지 너무 잘 맞아서 만나요'가 될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서로를 서로의 마지막이자 결과로 생각하는 것. 비록 이후 이별이 오게 될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를 기착지가 아닌 도착지로 여기는 것.

영화의 제목은 <가장 보통의 연애>인데, 영어 제목은 'Crazy Romance'다. 미친 연애. 혹은 미친 사랑. 어쩌면 이쪽이 더 원제 같이 느껴지는 영화인데, 어떻게 보면 또 세상만사 모든 연애 중 이런 연애가 또 없겠는가- 하는 입장에선 이 역시도 보통의 연애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정도면 장르사의 도약까지는 아니여도, 한국 로맨스 영화의 느낌표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핑백

  • DID U MISS ME ? : 2019년 영화 결산 2019-12-30 14:23:27 #

    ... &lt;가장 보통의 연애&gt;</a> (김한결)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드라마들은 모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신한다. 저 남자는 저 여자와 결혼하게 될 거야. 아이도 몇 명 낳고 행복하게 잘 살겠지. 우리가 지금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상관 없어, 어차피 우리 둘은 운명으로 엮인 관계이니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될 거야. 나는 그게 다 감상적인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미래가 어떻고, 결말이 어떻고.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