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6 13:11

82년생 김지영 극장전 (신작)


출간 초기에 베스트셀러다 뭐다 하며 열풍 불었을 때 원작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래서 원작과의 비교라든지 원작이 불러온 사회적 열풍 또는 혼란에 대해서라든지 그런 건 내가 잘 못 읽어낼 것 같고. 그냥 영화로써만 봤다.

이 영화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남자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 또는 '남자 관객이라면 결코 감정이입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들을 좀 봤는데, 만약 영화가 진짜 그렇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인 거다. 영화라는 것, 예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혀 다른 상황과 전혀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놓는 일이다. 때문에 단순히 한국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30,40대 기혼 여성을 다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관객들은 이해할 수 없는 영화라고 자기 방어한다는 건 엄청 우스운 일인 거지. 막말로 우리가 꼭 흑인 노예로 살아봤어야만 <장고 - 분노의 추적자>에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거냐고. 우리가 꼭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태인들의 후손이었어야만 <쉰들러리스트>에 감동할 수 있는 거냐고. 그건 아니잖아.

그 점에서,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성인 내가 보았을 때도 이 영화는 그 점에서 그리 모나지 않다. 내내 죽상인 주인공을 두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지만 제일 힘든가'라고 억지로 까내려봤자, 영화라는 게 다 그렇잖아. 특정한 상황에 놓인 특정한 개인을 다루는 게 결국 영화인 건데 뭐. 보는내내 100% 공감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기만이겠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참담함과 삶에 짓눌린 그 처량함이 이해갔다. 사실 해보지 않았음에도 육아가 힘든 일이란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외의 측면들은 다시 생각해보게 되더라. 연이어 터지는 몰카 범죄 때문에 공중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그 불편함. 그리고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는 그 공포. 이런 측면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것은 분명한 강점이다.

허나 영화가 전체적으로 센스가 없다. 연출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던 것은 맞다. 애초 공간적 배경이 한정적인데다 인물들의 대사로만 진행되는 이야기라 감독이 연출자로서 엄청 고심했을 거다. 허나 이야기의 우직함과는 별개로 영화는 별 재미가 없다. 철저히 톤 다운되어 있는 영화인만큼 마냥 웃기려고 넣은 유머들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집어넣은 그 유머들이 죄다 불발탄. 심지어는 좀 촌스럽고 오그라드는 편이다. 더 재밌게 살릴 수 있었을 주변 인물들은 피상적으로만 그려지고, 특정 장면들은 그 의도와 빌드업이 노골적으로 보여 몰입을 깬다. 아니, 진짜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운 게 영화의 의미와 내용은 분명 의미 있는데 영화 자체의 맥락이 너무 재미없다. 주인공의 보편성에 집중한 것은 알겠지만 영화적인 면이 전무한 건 분명 아쉬운 부분.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자신의 사회적 경력이 단절 되었다고 느끼는 지영. 지영은 육아 휴직을 하겠다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복직하려 하지만, '네가 남편대신 일해봤자 버는 돈은 더 적을 것'이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이내 포기하고만다. 거기서 그런 생각을 했다. 분명 월급은 남편의 그것보다 적을 수도 있다. 어쩌면 분명히 적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줄어든 돈으로 살림을 꾸리며 살아가기란 현실적으로 굉장히 힘들 것이다. 허나. 허나...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자신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를 키워나가며 궁극적으로는 자기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그 '일'이라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돈 좀 적게 벌더라도, 아내가 일하는 게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지 않은가? 평생 그렇게 산다는 것도 아니고, 남편의 육아 휴직을 빌어 겨우 1,2년 정도인데! 

거기서 칸트 생각이 든 거다. 우리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보아야한다. 돈을 벌 수단으로 인간을 볼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그 인간의 자기애를 키워줄 수 있는 수단으로써 그 일을 보아야하지 않을까. 영화의 마지막 카페 장면에서 볼 수 있듯, 그렇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자는 것.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뱀발 - 중간에 나오는 홍보 회사의 이사. 배우 연기 쩐다. 개웃김.

덧글

  • 우물쭈물하지않으리 2019/10/27 18:23 # 답글

    남자 이사 말이신거죠?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전 웃기기보다 불쾌하더라고요 ㅋㅋㅋ 연기를 너무 잘한탓이겟죠
  • CINEKOON 2019/10/29 22:33 #

    불쾌해서 웃기고, 웃겨서 또 불쾌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