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6 13:34

아수라, 2016 대여점 (구작)


개봉 했을 때 극장에서 놓친 이후로 매번 봐야지 봐야지 하다 이제서야 보게 된 영화. 개봉 당시 호불호도 엄청 갈렸던 걸로 기억하고, 흥행도 생각보다 뜨뜻미지근 했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별로 큰 기대 안 하고 본 거였는데, 어째 생각보다 영화가 괜찮다.

영화가 존나 뻔하다는 건 인정이다. 충무로의 남자 배우들은 주연이고 조연이고 싹 다 긁어모은 모양새에 사나이들끼리의 의리 놀이와 이권 다툼 악다구니를 다룬다는 점.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제작사 이름이 사나이 픽쳐스야. 아무리 커버치려고 해도 뻔한 건 뻔한 거다. 그냥 존나 남자들의 악독한 냄새나는 영화 만들고 싶었던 것일 뿐.

근데 그게 마냥 잘못이냐- 라고 되묻는다면 할 말이 없는 거다. 원래 기획 영화라는 게, 장르 영화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고. 그 중에 마냥 새롭기만 한 영화가 얼마나 되냐고. 대부분은 다 적당히 뻔한 거 적당히 재밌게 만들어 적당히 포장 때린 다음 팔아먹는 거 아니냐고. 장르 영화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 뻔한데 그 뻔한 게 너무 재밌어서 그 뻔한 것에 뻔한 기대를 하며 뻔질나게 극장 찾도록 만드는 거. 바로 그 점에서 다시 본다면, <아수라>는 꽤 괜찮은 영화인 것이다.

일단 김성수의 작가적 면모가 돋보인다. 작가적 면모라고 해서 시나리오를 겁나 잘 썼다는 건 아니지만, 감독이 영화 연출자로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밀어붙인 지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몇몇 장면들은 영화라기 보다 좀 연극적인 느낌이었다. 근데 그게 좋았다. 배우들은 연기하기에 아마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주변에서 다들 좋아했던 영화 중후반부의 그 자동차 추격전. 난 그거 생각보다 별로더라. 근데 그걸 담는 기술적 방식과 그 대담함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영화 속 인물들 말마따나, 감독이 다구빨이 좋다면 좋은 거다.

각각 정우성과 주지훈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관계는 다소 곽경택스러운데, 어차피 그걸 살릴 거였다면 이 둘의 사건 이전 관계가 좀 더 묘사 되어도 좋았을 것. 지금 버전도 충분히 콤팩트 해서 좋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 둘의 전사나 관계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씬 내지는 대사가 더 있었더라면 후반부 그 둘의 충돌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비극이 좀 더 맹렬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

정우성의 한도경이 존나 재밌는 게, 보통 이렇게 양쪽 편에 발 걸치고 이중첩자질 하도록 강요받는 캐릭터들은 막판에 빡쳐서 다 조지려고 들 거든. 물론 이 영화의 결말도 그렇긴 한데, 바로 그 직전 한도경의 묘사가 존나 웃긴다. 난 또 장례식장에서 시장 측이나 검사 측이나 다 조질라카는 줄 알았는데 적당히 둘이 붙여주고 혼자 튀려고 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아서 잘들 하십쇼~ 전 갑니다~'의 그 뉘앙스가 존나 웃겼다. 물론 판 다 깨져서 본의 아니게 다 조지게 되는 건 똑같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느낀 재미의 8할은 죄다 황정민의 박성배 덕이었던 것 같다. 이 놈이야말로 존나 악해서 존나 뻔한 악당인데, 황정민이 잘 살렸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인물. 병문안 와서 한도경 속마음 떠보기 하는데 거기서의 눈깔을 나 잊지 못해. 뭐 꼭 그 장면 아니여도 등장하는 모든 쇼트들에서 긴장감을 잘 새겨줬지마는. 아니, 근데 아무리 영화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 도시의 시장이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냐. 다른 건 몰라도 안남시 시민들의 정치 감수성은 꽝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는 위기에 몰린 박성배의 "도경이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떠올리기만해도 또 웃기네. 진짜 영화 속 김차인 검사 마냥 황정민에게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아수라>의 박성배한테 <베테랑>의 서도철 소개시켜주고 싶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19/10/26 13:50 # 답글

    악인들이 고유의 광기에 밀리다못해 스스로 벼랑 너머로 뛰어 버리는 영화죠. 이성적으로 보면 어이가 없어서 코미디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광기를 원했던 사람에겐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었어요. 스토리는 그 카타르시스를 위한 정당성만 갖추고요.

    카체이스는 테크닉보다 그 막가파 감성이 좋았어요. 배고파서 뭐라도 뜯어먹어야 직성이 풀릴 동물들이 서로를 뜯어먹으려고 들이받는 것 같죠. (생각해보면 한국영화에서 이런 야성울 진득히 묘사한 작품은 에로영화밖에 기억 안 나요.)

    한국적인 감성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보복운전 사건이나 분노조절 실패해서 사고치고 인터넷에 분노를 싸지르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래도 이 감성이 극히 한국적인 감성이다라는 생걱이 들었거든요. 논리보다는 감성과 직관으로 불타는 악다구니 정신 말입니다. 그 와중에 정은 끊을 수가 없어서 악다구니 와중에 흔들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도경을 지극히 한국적인 캐릭터로 보곤 합니다. 한국인이 벼랑끝에 몰리면 딱 저런 사람이 될 거에요.
  • CINEKOON 2019/10/29 22:33 #

    한국인의 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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