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9 15:13

람보, 1982 대여점 (구작)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의 시작. 스탤론은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찍은 이 영화가 이후 40여년 동안 회자되고 또 우려질 거란 사실을.

사실 영화의 내러티브 보다도 '람보'라는 캐릭터의 인상만이 요즘 세대들에겐 그것도 간간히 전해질 뿐. 실제 영향을 1도 안 받진 않았겠지만, 각종 게임과 만화에서 근육질의 남자가 따발총을 쏴대는 이미지가 나오면 우리는 십중팔구 람보라는 이름을 외쳤었다. 그러다보니 이게 또 이상한 게, 요즘 세대 치고 정작 이 영화를 제대로 본 사람은 손에 꼽는데 이미지만 엄청 나쁜 영화다. 대충 80년대의 촌스러운 반공주의 미국 프로파간다 액션 영화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현실. 허나 생각보다 이 시리즈 전체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고, 그 중 이 모든 프랜차이즈를 촉발시킨 1편에다 단순 반공주의 프로파간다물이라고 이름 붙여 분류 하기엔 너무 아까운 거지. 사실 1편은 반공주의랑도 별 상관없음. 그냥 철저히, 미국 내에서 각종 차별을 받았던 상이군인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영화가 품고 있는 주된 정서는 다름아닌 쓸쓸함. 저 멀리 산등성이 아래서부터 천천히 카메라 쪽으로 걸어들어오는 람보의 이미지로 영화가 시작된다. 옛 전우를 찾아온 람보.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옛 전우가 전쟁 후유증으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뿐. 마지막 남은 전우마저 보낸 람보는, 처량한 몰골에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갓길을 걷는다. 

그리고 거두절미하고 이어지는 쾌속 전개. 과거와 이어지는 마지막 끈마저 놓쳐버린 그에게, 작은 촌동네 보안관이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하고 이 별 것 아니었던 것처럼 보이는 사건은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근데 람보가 좀 웃긴 게... 방금 옛 전우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또 아무리 PTSD에 시달리고 있다지만 보안관에게 체포 되었을 때 '전산망에 내 이름 검색해보쇼' 이 한 마디만 했었다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람보의 정신 상태가 말이 아니었고, 또 그렇게 하면 영화가 진행 안 되겠지만...

이후 산 속에서 벌어지는 보안관 & 군대 VS 람보. 액션 영화치고 영화가 존나 특이한 게, 대부분의 액션 장면들이 모두 희생자 시점 중심으로 연출되어 있다는 것. 각종 함정과 매복으로 적들을 소탕하는 람보. 그런 람보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주기 보다, 람보에게 곧 희생될 단역들의 모습을 좀 더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액션 영화임에도 뭐랄까, 약간 호러 같은 요소가 들어있다고 해야하나? 보는 내내 생각했다. 악당들에겐 람보가 호러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맛을 주는 액션 시퀀스들이 휩쓸고 지나가면, 결국 남는 것은 람보의 울부짖음이다. 이 영화가 수작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장면 때문이겠지. 지금 시점에서 다시 보았을 때 대사가 다소 뻔하고 노골적이라 종종 느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PTSD에 시달리는 상이군인의 모습과 그 처우를 제대로 보여준 장면이라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진한 분노와 쓸쓸함의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 좋음. 

영화 중반, 주 방위군에게 포위 당한 상태에서 람보는 멧돼지를 잡아 구워 먹으며 밤을 보낸다. 그 와중에 그런 쇼트가 있다. 피어오르는 모닥불이, 젊은 스탤론의 눈동자에 벌겋게 비치는 쇼트. 아아-, 스탤론은 서른 여섯이었다. <람보>에 담긴 그의 모습은 서른 여섯이었다. 그리고 2019년이 되어 시리즈의 마지막편으로 5편을 개봉시킨 그는 지금 어느새 일흔 셋이 되었다. 종종, 그렇게 하나의 캐릭터가 자신의 삶과 연결되고 또 겹쳐진 배우들이 있다. 실베스타 스탤론은 '존 람보'라는 이름으로 40여년을 살았다. 스탤론은 아직도 그 때의 그 불꽃을 기억하고 있을까? 여전히 그 불꽃을 눈에 담고 있을까? 

핑백

  • DID U MISS ME ? : 람보2, 1985 2019-10-29 15:36:49 #

    ... 해내지 못했던 프랜차이즈 표기 대통일 하나만큼은 알아줘야함. 이 시리즈 전체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이겠지만, 그럼에도 그 중 몇몇은 1편의 진가를 기억하고 있다. 허나 1편만은 인정받는 와중에도 2편부터 시작된 나머지 프랜차이즈들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다들 좋지 않은 듯. 실제로 나도 그랬다. ... more

  • DID U MISS ME ? : 람보3, 1988 2019-10-29 15:58:07 #

    ... 1편이 미국 본토의 록키 산맥 근처 마을. 그리고 2편은 베트남. 그렇다면 3편은? 이전의 두 편 모두 녹음이 우거진 숲과 정글에서 벌어진 이야기라 그랬던 걸까? ... more

  • DID U MISS ME ? : 람보4 - 라스트 블러드, 2008 2019-10-29 16:12:08 #

    ... 야? 그게 이 영화엔 없다! 그게 가장 말이 안 되는 부분. 영화 중반부 적들의 소굴로 들어가 몇몇 놈들을 죽이긴 하지만, 우리가 기대한 건 그런 모양새가 아니잖아. 1편과 2편의 숲 속에서 했던 그런 것! 3편의 동굴에서 했던 그런 것! 그 그런 것이 이 영화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람보가 머신건을 들고 그것만 줄창 ... more

  • DID U MISS ME ? : 람보 - 라스트 워 2019-10-29 22:28:24 #

    ... 1편으로부터 어느덧 4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바로 직전에 나왔던 4편 이후로도 어느새 11년. 그렇게 람보가 돌아왔다. 그것도 이것이 마지막임을 천명하며. 내용적 ... more

  • DID U MISS ME ? : 아메리칸 스나이퍼, 2014 2020-07-28 17:08:25 #

    ... 아. 그리고 적국의 테러리스트들을 딱히 인간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럼 완전히 반대로,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할리우드에서 많이 만들어졌던 미국 우월주의 영웅 서사인 건가?'라고 또 생각하게 되지. 근데 존나 웃긴 건 그것 역시 아니라는 거다. 주인공을 영웅으로 그려내고 있기는 해도 그가 겪는 실존적 고민과 트라우마 ... more

  • DID U MISS ME ? : 다이 하드, 1988 2021-01-04 23:23:18 #

    ... 불세출의 액션 걸작. 그리고 내 기준 최고의 크리스마스 영화. 같은 미국 액션 영화계의 80년대 동기이자 최강의 동명 3인방 존 패거리 '존 람보'와 '존 매트릭스'에 비해, &lt;다이 하드&gt;의 주인공 '존 맥클레인'이 갖는 특이점은 그가 이죽거리기 고수에다 깝죽거리기 쌉고수라는 점이다. 그러니 ... more

  • DID U MISS ME ? : 다이 하드 - 굿 데이 투 다이, 2013 2021-01-08 10:20:18 #

    ... 그렇게 따지면 이미 그 전통은 3편에서부터 갈렸지. 다만 이번엔 그 배경이 러시아라는 타국이기에 좀 거북하다. 목적이 암만 이상적이었다해도, 미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첫편 이후의 '람보'와 &lt;코만도&gt;의 '존 매트릭스'가 중동이나 남미 같은 다른 나라에 가서 깽판치는 거 지금이나 그 때나 다 거북했잖아. 옛날 영화 아니 ... more

  • DID U MISS ME ? : 맥클레인의 마성에 걸려든 남자들 2021-01-09 17:05:59 #

    ... 주기적으로 불운한 남자, 존 맥클레인. 존 람보나 존 매트릭스처럼 한 세대를 풍미했던 어나더 존씨들과 맥클레인이 다른 점은 자의/타의의 차이에 있다. 물론 존 람보도 첫편에선 그러고 싶지 않았겠지. 그러나 시리즈가 계속 되면서, 어쨌거나 그는 전쟁과 전장을 스스로 선택했다. 뭐, 딸 구하러 간 것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존 매트릭스 ... more

덧글

  • 포스21 2019/10/29 18:20 # 답글

    람보 1.. 유명하긴 한데... 듣자니 이거- 람보1은 원작소설을 영화화 한 걸로 거기선 람보가 마지막에 죽는 다네요. 그래서 람보도 주인공이라기 보단 호러영화의 악역필...나는 캐릭터가 된듯 합니다. 그게 영화 찍다가 람보 캐릭터에 공감하게 된 스탤론이 억지부려서 람보가 사는 결말로 갔다고 합니다. 뭐 그덕에 이후 2,3,4... 줄줄이 나올수 있었죠.


    ps. 80년대 초면... 미국도 전산화가 덜 되서... 지방 보안관 사무실이면 인터넷이 안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CINEKOON 2019/10/29 18:37 #

    제가 답답했던 이유는, 바로 얼마 뒤 장면에서 전산망 검색 때린 걸로 람보가 명예훈장 받은 전쟁 영웅인 걸 보안관들이 알게 되거든요... 하지만 이미 람보는 보안관들 다 줘패고 떠난 뒤..
  • 로그온티어 2019/10/29 20:14 # 답글

    그 눈에 담긴 불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려있을 겁니다. 만일 가난으로 인한 한이 담긴 불꽃이었다면 그 불꽃은 지금도 타오르고 있을 것이고, 단순 연기라면 이미 사라져 있겠죠.

    저는 배고플 때마다 눈이 광기로 번뜩이더군요. 어느날 거울 봤는데 [나이트크롤러]의 제이크 질렌할 눈빛을 거울 너머로 봐버려서 깜짝 놀랬습니다. 가뜩이나 제 얼굴이 프레디크루거와 마하트마 간디가 떡친 것 같이 생겼는데... 그러니까 저와 같이 사는 사람들이 제 얼굴 보고 깜짝깜짝 놀라는 걸 이제서야 이해하겠더군요.

    가난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배부르게 살아야 해요.
  • 포스21 2019/10/29 20:20 #

    영화 록키 관련 뒷 얘기를 보면 스탤론도 젋어서는 가난한 집안에서 꽤 고생하면서 성공한 케이스 더군요. 나름 개천에서 용이 난 케이스인데... 젊은 시절 함께 고생한 조강지처 버리고 이혼하고 헐리웃 미녀랑 재혼한 거 보면... 가난으로 인한 한은 돈벌면 다 잊는 듯 , 뭐 정확히는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 못하는 거겠지만요.
  • 로그온티어 2019/10/29 21:05 #

    맞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썬연료를 소비해야 합니다.
    조강지처가 좋거든요.
  • CINEKOON 2019/10/29 22:32 #

    ......네? 썬 연료요...? 이 의식의 흐름 무엇..?
  • 로그온티어 2019/10/29 23:06 #

  • KittyHawk 2019/10/29 21:17 # 답글

    결국 람보는 이번 라스트 블러드에서 마지막 머물 곳마저 잃었습니다...
  • CINEKOON 2019/10/29 22:32 #

    안락의자 하나는 남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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