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9 15:36

람보2, 1985 대여점 (구작)


딴 소리인데, 국내 개봉명의 우직함 하나만큼은 끝내준다. 주인공 이름 뒤에 넘버링 매기는 것만으로 제목을 완성한 국내와는 다르게, 원제는 통일성 따위 개나 줘-하는 인상이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원 국가에서도 해내지 못했던 프랜차이즈 표기 대통일 하나만큼은 알아줘야함.

이 시리즈 전체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이겠지만, 그럼에도 그 중 몇몇은 1편의 진가를 기억하고 있다. 허나 1편만은 인정받는 와중에도 2편부터 시작된 나머지 프랜차이즈들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다들 좋지 않은 듯. 실제로 나도 그랬다. 그거 그냥 별 고민없이 악당들 다 죽여가며 미국 군사력 뽕 오지게 넣는 영화 아니었나- 하는 기억이었지. 그런데 이번에 진짜 오랜만에 본 거였거든? 웃긴 게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더라.

어찌 되었든, 1편 결말부에서 범법자의 신세로 체포된 자수한 람보. 영혼없는 망치질로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던 그에게 그의 상관이자 스승, 그리고 어쩌면 아버지와도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을 트라우만 대령이 찾아온다. 당연히 딜 제시지, 뭐. 제시된 딜의 내용은, '너 월남에서 고생한 거 아는데, 한 번만 더 거기 가서 포로들 좀 구출하고 오면 안 되겠나?' 수용소에서 람보를 꺼내주고 싶었던 트라우만 대령의 마음은 알겠으나, 그래도 월남전 트라우마로 인생을 잃었던 사람에게 베트남 행 티켓 끊어주며 한 번 더 갔다오라니. 암만 봐도 악마 같다

전작에 비해 람보의 과거사가 조금 설명된다. 특히 그가 전쟁에서 성과들을 읊어주는 부분이 있는데, 설명에 따르면 59명의 적들을 사살한 전쟁 영웅이라고. 근데 어째 그를 전쟁 영웅으로 만들어 과거의 수치보다 영화에서 그가 죽인 숫자가 많은 같은 기분 인가?


전편의 악역이었던 티슬 보안관, 그리고 속편의 악역인 머독. 둘의 생김새가 비슷해도 너무 비슷하다. 둘 다 관료제의 정점에 선 인물인데다 람보 엿 먹이려는 것도 똑같고, 생김새도 백인 중년 남성에 머리도 백발. 스탤론은 중년의 백발 백인 남성을 싫어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그게 미국 관료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모습이라서? 굳이 따지자면 아무래도 후자 쪽이 더 신빙성 있겠지.


미국 입장에서는 명분도 없고, 심지어 승리와 실리 마저도 없었던 베트남 전쟁. 미국의 PTSD라 할 수 있을 베트남 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국인 주인공이 베트남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쏴죽인다? 당근 빠따루 반감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라는 이름 하에 이해할 수 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가 다 그런 것 아니겠나? 때에 따라서 영화 속 악당들의 국적과 인종이 바뀌는 거 뭐 하루 이틀 일이 아니잖아. 이런 영화가 2019년인 요즘 만들어졌다면 문제겠지만, 어쨌거나 이거 그냥 옛날 영화니까... 그냥 그러려니 봐줄 수 있다.

전편에서 생긴 시리즈의 전통을 제대로 계승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거다. 1편에서 재밌었던 악당 위주 묘사의 액션 시퀀스들. 이번 영화에선 더 많아지고 더 길어졌다. 1편만 봤을 땐, '람보는 악당들의 호러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2편까지 다시 보니 '람보는 악당들의 코즈믹 호러구나'라는 생각 밖에 안 들더라. 특히 활과 화살을 이용한 액션이 많아졌다는 데에서 좀 좋기도 했다. 내가 원체 그런 거 좋아하다보니. 일격필살 화살로 몸뚱아리 터뜨리는 거 재밌었음. 다만 중간 중간 멍청한 묘사들도 많다. 멍청한 악역들아, 헬기를 타고 있는데 왜 굳이 수면으로 그렇게까지 많이 내려가는 거니... 누가 봐도 람보가 헬기 탈취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걸로 밖에 안 보이잖니...

하여튼 드라마를 끌고 가는 감정이 전편만 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꽤 준수한 오락물이라 생각한다. 대신 재밌게 보려면 팍스 아메리카나 80년대 감성에 좀 면역 있어야함.

핑백

  • DID U MISS ME ? : 람보3, 1988 2019-10-29 15:58:07 #

    ... 1편이 미국 본토의 록키 산맥 근처 마을. 그리고 2편은 베트남. 그렇다면 3편은? 이전의 두 편 모두 녹음이 우거진 숲과 정글에서 벌어진 이야기라 그랬던 걸까? 다소 뜬금 없게도 3편은 사막을 배경으로한 아프가니 ... more

  • DID U MISS ME ? : 람보4 - 라스트 블러드, 2008 2019-10-29 16:12:08 #

    ... 게 이 영화엔 없다! 그게 가장 말이 안 되는 부분. 영화 중반부 적들의 소굴로 들어가 몇몇 놈들을 죽이긴 하지만, 우리가 기대한 건 그런 모양새가 아니잖아. 1편과 2편의 숲 속에서 했던 그런 것! 3편의 동굴에서 했던 그런 것! 그 그런 것이 이 영화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람보가 머신건을 들고 그것만 줄창 쏴댄다 ... more

  • DID U MISS ME ? : 람보 - 라스트 워 2019-10-29 22:28:24 #

    ... 이 시리즈는 원래 대쪽같은 쾌속 전개가 일품인 영화들 아니었나? 내가 세어보기로는 이전 영화들 모두 람보가 작전지에 투입되기까지 15분을 안 넘겼던 것 같은데. 특히 2편은 영화 시작 후 거의 10분 만에 베트남 드랍할 걸? 허나 이 영화는 람보와 그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다지고 쌓는데 초반 시간을 할애한다. 때문에 액션 폭 ... more

덧글

  • 포스21 2019/10/29 17:37 # 답글

    뇌피셜이지만 람보의 이미지가 그렇게 된데는 ,,,람보2 와 비슷한 시기에 크게 흥행했던... 코만도의 영향 이랄까? 시너지 효과가 있었던거 같네요.
  • CINEKOON 2019/10/29 22:31 #

    분명 있었을 거라고 봐요. 서로 그런 식으로도 영향을 준...
  • 로그온티어 2019/10/29 20:57 # 답글

    영화리뷰와는 다른 얘기지만... [비욘드 더 블랙 레인보우]를 보고 감명받아서 감독인 파노스 코스마토스 프로필을 파다가 이 사람이 조지p코스마토스의 아들임을 발견하게 되었죠. 이렇게 대를 이어 영화 작업하는 상황이 참 재밌는 것 같아요. 니콜라스 케이지도 따지고 보면 영화인 2세니까요.

    허나 파노스 코스마토스의 작품은 아버지의 작품처럼 오락적이지 않다는 게 다른 점이죠. 애초에 영화를 만든 이유도 자신의 가까운 이가 떠나서 그 우울감을 떨쳐내기 위해 정신적 여정의 은유를 80년대 B급 컬쳐에 박아 낸 작품이 [비욘드 더 블랙 레인보우]와 [맨디]였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요즘 흥하는 베이퍼웨이브가 80년대의 심상들을 생각없이 따라한 작품도 있지만, 그 심상을 이용해서 어떤 의미를 파고드는 작품도 많이 나왔습니다. 정작 "80년대에 없던 80년대스러운 작품들"이 21세기에 등장하는 거죠.

    타란티노 영화 같지 않나요? 타란티노도 B급 영화의 오마주를 하지만, B급 영화보다 더 고급지고 의미있게 B급 영화 클리셰나 장면을 재활용하고 끼워넣으니까요. 이걸보면, 제 생각에 비디오 키드들은 3부류로 나뉘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마냥 이미지에 열광하는 아이, 평론하며 생각없는 장면을 까내리는 평론가 체질의 아이가 있는 반면에, 그 생각없어 보이는 장면을 살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아이도 있던 겁니다. 그 아이들이 지금의 베이퍼웨이브를 의미있게 만들어낸 장본인이고, 마지막에 속하는 부류들이 타란티노고 코스마토스겠죠. 로드리게즈요? 음... 어... 음...

    조지 P 코스마토스의 작품은 싫어하지만, 전 파노스 코스마토스의 작품은 좋아합니다. 역설적이죠. 정작 80년대에 나온 [람보2], [코브라], [레비아탄]은 심드렁하게 보는 사람이, 파노스 코스마토스의 80년대 이미지 사랑이 들어간 [비욘드 더 블랙 레인보우], [맨디]는 인상깊게 봤다니요. [람보1]과 [람보2]의 모순처럼 이 세상은 모순으로만 가득차 있는 겁니다. [람보2]를 보면서 늘 그런 모순의 세계에 빠지곤 해요.
  • CINEKOON 2019/10/29 22:31 #

    이반 라이트먼과 제이슨 라이트먼 부자도 있지요. 부녀로 넓히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소피아 코폴라도 있을 거고...
  • UnPerfect 2019/11/04 20:01 # 답글

    분노의 질주 시리즈도 원제는 엉망진창인데 한국 제목이 그나마 쪼끔 통일성을 준 케이스죠 외국 애들은 이런 쪽에 신경을 안 쓰는 듯...
댓글 입력 영역